함께 만들어가는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후기 (하편)
컨퍼런스 필드
여러분이 생각하는 다양성과 포용은 무엇인가요?
K-POP은 지속 가능성을 위해 어떻게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을까
장애인 고용을 넘어 진정으로 함께 하는 일터를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기 위한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올해로 4회를 맞은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는 ‘다양한 나 포용하는 우리’라는 주제 아래 우리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성은 어떤 모습인지, 이를 포용하는 일터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이뤄졌습니다. 실제로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하는 체인지메이커들의 사례를 통해서, 더불어 함께 일하는 일터를 조성하기 위한 영감을 다양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연사 발표 2] 다양한 정체성, 포용하는 문화 – 탈북 소년들의 K팝 보이그룹 도전기
- 조미쉘 씽잉비틀 대표
BTS가 메가 히트를 거두면서 K-POP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음악 시장이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음반 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반 시장이에요. 그리고 팬데믹 동안 음악 시장이 하향세를 보였거든요? 그런데 한국 음악 시장은 그동안 홀로 유일하게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고, 작년에는 한국 음악 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음악 시장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외 팬이 많아지고 글로벌한 음악 장르가 되어가는 와중에, K-POP은 상당히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당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K-POP은 이미 피크를 쳤느냐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기획사가 K-POP이 어떻게 보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한국이라는 지역적,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가장 좋았던 케이스는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 셀프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신 건강이라든가 지속 가능성 같은 주요 ESG 지표들이 외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그러한 가치로 인식되는 캠페인이 전 세계에서 큰 히트를 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거죠. 그래서 인종과 문화, 종교와 상관없이 멤버들이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이뤄지는지 테스트해 보고, 지속 가능하게 퀄리티 있는 K-POP 콘텐츠를 제작하는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발돋움을 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환으로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팀이 바로 탈북 소년들이 포함된 보이그룹입니다.
사실 탈북민이나 북한이라고 하면 지금까지 매체에서 많이 보여졌던 가난과 굶주림, 독재 등의 키워드를 먼저 떠올릴 텐데요. 저희는 이 친구들 개인의 스토리, 휴머니티에 포커스를 두고자 합니다. 사람이 어디서 왔고, 어떤 나라나 문화권에서 살았든 우리에게는 인간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고, 이런 스토리를 녹여내는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세상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먼 곳에 살고 있는, 우리와 가장 접점이 가장 없을 것 같은 탈북민들과 함께 K-POP 보이그룹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경험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 내부에서도 여러 부침과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소하지만 언어 차이부터 있었죠.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자신을 지칭할 때 무조건 나라고 표현한다고 해요. 그래서 이 친구들이 “대표님, 나는 그렇게 한 적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는데 기분이 묘한 거예요. 물론 저한테는 설명해 줬으니까 이해했는데, 외부 선생님에게 “선생님, 나는 그렇게 연습 안 했습니다.”라고 하면 자칫 버릇없는 아이들로 비추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들께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북한 언어에는 이런 다른 점이 있고, 아이들이 무례하게 굴려고 그렇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호 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또 북에서 온 친구들이기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이 있었어요. 우리는 보통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잖아요? 카페에 가면 아이스아메리카노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메뉴가 영어인데, 이 친구들에게는 영어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정말 A, B, C를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4~ 5학년 수준으로 쓰고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K-POP 밴드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K-POP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성장하려면 극복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성과 진정성이 포함된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각 개인이 가지고 아이덴티티를 셀러브레이트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들과 진정성을 가지고 교감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두 번째는 아티스트의 정신 건강 문제입니다. 안타깝게도 K-POP 아티스트들이 정신 건강 이슈 때문에 힘들어하고 안 좋은 선택을 하는 걸 많이 봐왔어요. 그래서 저희는 기획 전부터 아티스트를 존중하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계속 회사와 일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기조를 세웠어요. 회사 내부에서도 정신건강 코칭뿐만 아니라 성숙한 멘토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선보이려는 이 친구들로 대표되는 것은, 결국 K-POP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성공도 너무 중요하지만, 이 친구들이 사회에서 음악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해줄 때, 아주 파워풀한 변화의 물결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의 우당탕탕 탈북 소년들이 포함된 K-POP 보이그룹은 내년 중순쯤 소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일단 미국에서 먼저 데뷔를 하고, 한국으로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한국으로 진출한다니 말이 재미있죠?
[패널 토크 2] 다양한 조건, 포용하는 일터 –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도록
- 조은영 피플라 대표
- 김헌용 신명중학교 교사 /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 김진영 재단법인 동천 상근변호사
- 홍윤희 ‘장애를 무의미하게’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나의 일터 이야기, 나는 어떻게 이 일을 선택했나
홍윤희 안녕하세요, 세션 진행을 맡은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홍윤희입니다. 저희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취지 아래 교통 약자 접근성 데이터를 모으고 다양한 교통 약자 지도를 만들고 있는 협동조합입니다. 작년까지는 이베이코리아라는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요. 2017년에 스타트업들을 모아서 장애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업 박람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장애 학생분들과 청년분들을 만난 경험이 있어요. 당시에도 어떻게 하면 IT나 스타트업 업계까지 장애인 채용을 확대시킬 수 있나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고요. 제 딸이 장애 당사자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우리의 일터가 어떻게 개인의 다양성, 특히 장애라는 다양성을 잘 포용해야 하는지 사례를 위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각자 하시는 일과 어떻게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은영 주식회사 피플라를 운영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사업가 조은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친환경, 오염에 대해서 리서치를 하는 일이 많았고, 다양한 의제를 전파하면서 파타고니아 같은 환경 친화적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겨서 처음으로 창업을 고민했습니다. 당시에는 뉴욕에 살고 있었는데요. 미국 내에 아시아 소비자들을 위한 미국 시장은 거의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찾아보니 미국과 유럽에는 친환경 아이웨어 브랜드가 많은데, 일본과 한국에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친환경 아이웨어가 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 피플라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페트병으로 안경, 선글라스를 만들고 있고요. 자연환경을 구축해 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헌용 강동구 길동의 신명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김헌용이라고 합니다. 저는 2010년도에 서울에서 영어 교사가 되었고요. 당시에 사례가 드물다 보니, 시각장애 1급 최초의 영어 교사라는 타이틀을 받게 됐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영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포용성과 다양성을 함께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직업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국가 계획에 따라서 양성됐습니다. (웃음)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정보, 재능을 살리기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점도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에 따라서 처음으로 교사가 된 1세대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반에 의무고용제도가 도입이 됐는데, 15년간은 의무고용 제외 직종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 안에 교사가 포함되어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대학교를 가던 2007년 무렵에 교사가 다시 제외가 아닌 것으로 법률이 개정되면서 교사가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편의 지원을 받으면서 임용 시험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2010년도에 교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니 제품으로써 생산은 됐는데 유지 보수가 잘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하자가 있는 제품으로 나왔는데, 이 하자를 보완해서 특등품으로 만들어주는 체제까지는 안 갖춰져 있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교사가 되고 10여 년 정도 지나고 나니 내가 제품으로 소모만 되다가 끝나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유 의지를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 국가의 제품이기를 거부하는 장애인 교사들끼리 모여서 장애인교원노동조합을 만들게 됐고요. 현재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내부의 결속을 다지면서 동시에 교육부를 상대로 교섭을 계속 끌어 왔습니다. 올해 6월 2일에 드디어 단체협약이 체결이 되었고요. 덕분에 장애인교원노동조합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노동조합이거니와, 세계적으로 최초의 단체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김진영 저는 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 전담 변호사로 일하는 김진영 변호사라고 합니다. 제가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 주변에 성폭력에 시달린다든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보면서 나도 뭔가 도움을 많이 받고 사는 사람이니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에는 돌고 돌아서 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재단에서는 주로 장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재단법인 동천은 장애인이나 여성 청소년, 탈북민, 이주 난민 등 사회 약자들을 법률 지원하는 일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일한 지 지금 4개월밖에 안 된 병아리 변호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갑게 만나게 돼서 굉장히 영광이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소한을 넘어 참여와 보장의 일터로 나기 위해 필요한 인식과 제도
홍윤희 열악한 시스템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세 분 모두 자기 영역에서 노력을 하고 계세요. 헌용 선생님의 경우 교직 준비하실 때도 애로사항 많으셨을 것 같고, 근무 중에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요. 학생들의 행동에 의해 개선이 이뤄졌던 일화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헌용 학생들이 저에게 줬던 감동 에피소드를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5월 중순쯤 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구룡중학교에서 근무를 하느데요. 구룡역 출구 밖으로 발을 내딛는데 지난주까지만 해도 없었던 점자 보도블록이 있는 거예요. 궁금해하면서 출근을 했고, 처음에는 교장선생님이나 동료 교사가 제안을 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제 머리를 스쳐 가는 게 있었는데, 바로 학기 초에 저를 인터뷰를 하고 간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학생들이 직접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고 하는 거예요. 구청 직원들이 주말 사이에 공사를 한 거죠. 제가 교사가 되고 나서 언론에 많이 노출이 되었거든요. 많은 사람이 저를 인터뷰를 하고 갔지만 실제로 제 삶에 변화를 일으킨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짧게 와서 물어보고 간 학생들이 제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교사는 학생들에게 주기 위해 있는 존재이고 일방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는데요. 학생들도 줄 수 있구나, 그간 너무나 이기적으로 생각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 장애에 대해서 불쌍하다, 안타깝다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생각을 학생들이 먼저 한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오히려 제가 학생들에게 배운 거죠.
그러고 나서 많은 문의와 고민을 통해서 2019년에 함께하는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장교조를 발촉을 했고 이때는 시각장애인 교사만이 아닌 청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교사들을 모았습니다. 50여 명이 시작을 했고 현재는 200여 명이 있는 노동조합이 되었습니다. 전국에 장애를 갖고 있는 교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시나요? 참고로 교사는 40만 명이 넘어요. 그중에 5000여 명 이상이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제는 가르치는 교단을 넘어서 학교 자체를 바꾸는 일을 시작한 것이죠.
홍윤희 헌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등과 포용을 구현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김진영 변호사님의 경우 직업적으로 법 제도를 많이 들여다보시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편의증진법도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일터 안에서 다양성과 포용성, 특히 장애인 직원들을 위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하기 위해서 뭔가 제도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있을까요?
김진영 일단 다양성을 높이는 부분에 있어서는 차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우리가 제재할 것인가, 그다음에 참여를 확보하고 보장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 할 거냐는 건데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차별이라고 인정이 되더라도 예외적으로 과도한 부담이 된다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다거나 하면 차별이라고 인정을 안 하거든요. 사실 차별이라고 하더라도 강제할 만한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강제 수단을 넣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리고 사회참여의 확보 및 보장은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는 굉장히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얼핏 보면 차별하지 않음과 사회참여가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저는 양자 사이에 문을 잠그지 않는 것과 활짝 열어놓는 것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책과 제도를 디자인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차별하지 않는다는 건 “네가 우리 집에 오더라도 내가 너를 때리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참여를 보장한다는 건 “우리 집에 와, 초대할게”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기존의 법 제도들의 관점은 “때리지는 않을게, 열심히 노력해 봐”예요. 참여를 보장하지는 않죠. 그래서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 같아요.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장애인들도 참여시켜야 해요. 특히 시험 제도 같은 경우, 응시생 편의 제공을 마련함에 있어서 장애학생이 직접 들어가서 논의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의 및 설계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주체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홍윤희 말씀하신 바 같은 제도적인 개선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중요한 게 일터에서의 개개인의 태도일 텐데요. 세 분이 생각하는 일터에서의 포용, 그러니까 동료로서 또는 파트너로서의 포용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고 그런 포용이 되었거나 반대로 되지 않았던 사례가 있는지 들어 보고 싶습니다.
조은영 제가 비장애인 분들하고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요.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장애인과 똑같은 수준의 스킬을 기대하는 것을 경험했었어요. 사실 존중하는 것과 똑같은 기술과 기대를 가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저는 다른 비장애인 분들과 동등하게 일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자통역은 저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식인데, 창업가 지원사업이나 프로그램을 통해서 문자통역을 요청해도 금전상의 이유로 지원받지 못한 경우가 많고요. 보통 창업가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하잖아요. 개인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너무 비장애인 위주의 문화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포용성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제가 회사 생활할 때는 직장 동료들이나 상사 그리고 인사부에 제 장애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오히려 창업을 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제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는데요. 제가 다양성, 포용성을 생각했을 때 그나마 비장애인 분들이 장애인 분들이 겪는 어려움, 필요한 지원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 주는 것. 특히 문자통역 같은 건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지원을 해주시는 것이 수용적인 태도라고 느낍니다.
홍윤희 학교의 경우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김헌용 학교는 공공기관이죠, 대표적인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편의증진법 같은 법률을 아주 잘 준수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설치율이 높고, 경사로도 있죠. 그런데 여러분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 수업 같은 거 하잖아요? 이때 휠체어를 탄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자녀의 수업을 보는 모습이 상상이 잘 되시나요? 또는 청각장애인인 학부모가 담임 교사하고 상담할 때 학교에서 통역을 지원해 주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나요?
학교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모든 법률을 준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아직 있다는 거예요.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데도 휠체어를 타는 부모가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게 있다는 거죠.
사실 제도든 사람이든 시선이든 결국 다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데요.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인식이 틀에 갇혀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장애인이 일자리를 갖게 되면 장애인 고용이라고 부르지, 장애인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비장애인들은 취업을 하고 퇴사를 합니다. 장애인은 고용이 됐다가 고용이 종료됩니다. 장애인의 관점이 아니라 사용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실을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왜 우리는 고용된 사람이지? 우리 모두 자발적으로 노동하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자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의 인식은 언어를 통해서 나타나는 법인데,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뿐만 아니라 가볍게 주고받는 말속에서도 장애인을 무시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안 됩니다. 실수도 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하고, 우리가 어디에서 인식이 멈춰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일터의 포용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부터 점검하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 예를 들면 학교 안 공간이 포용적인 공간이라는 편견부터 깨야 합니다.
일터 안에서 교차하는 소수성을 포용하고 나아가기 위한 고민
홍윤희 각자의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소수성’을 의미하기도 할 텐데요. 일터에서도 이러한 소수성이 교차하면서 연대했던 경험이나 반대로 고민을 하게 했던 일화가 있을까요?
김헌용 장애인교원노조이기 때문에, 공식 행사에서는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한 AUD 문자통역을 배치해오고 있어요. 그런데 하루는 교육부와의 교섭을 앞두고 회의를 했는데,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거예요. 서울역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청각장애 선생님이 사라진 걸 발견한 거예요.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청각장애인 선생님께서 문자통역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 뒷자리에서 소외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희도 뒤통수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하면서 교육부에게 무엇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싶었고요. 그날로 바로 장교조의 모든 행사에는 100% 통역을 지원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뒤풀이 장소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술자리에서도 동시에 두 명이 이야기하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하고, 누구랑 이야기하더라도 청각장애인 선생님 계신 쪽을 보면서 이야기하기 등의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먼저 모델을 만들고 그것들을 외부에 보여주려고요.
김진영 일터 내부는 아니지만 공익변호사의 업무가 법률지원, 법제도개선, 연구활동, 입법지원 등으로 구성되고 대개는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다 보니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투입할 것인지가 늘 고민입니다. 장애로 좁혀 보자면,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은 같은 이동권 이슈라 하더라도 요구사항이 다릅니다. 각자가 갖는 불편함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때로는 이러한 서로의 요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점자유도블록의 경우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얼마간의 불편함을 줄 수 있어요. 얼핏 양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는 더 큰 방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길을 걷는데 속도가 다를 수 있고, 다른 가게 들렀다 올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걸 충돌의 이미지로 보게 되면 사실 언론에서 이용하기 굉장히 좋거든요. 구성원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소수자 간의 이해 충돌로 바라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홍윤희 조은영 선생님께는 앞에 주로 정책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이번에는 장애 당사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적인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조은영 장애 당사자분들이 회복 탄력성, 공동체에 대한 부분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다름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사람들에게 장애나 어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오히려 더 이해해 주고 커뮤니케이션도 수월해지더라고요. 특히 창업가들은 정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잖아요. 저와 비슷한 초기 창업자분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건, 다들 우울증이나 번아웃 등을 겪고 계시는데 외부에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취약성, 회복 탄력성,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주기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서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윤희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세 분의 커리어 목표가 있으시면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은영 우선 피플라 사업이 더 잘 되는 게 목표예요. 지금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10년 이상은 버티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 창업가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고요. 제가 창업가로서 일하면서 다른 장애인 사업가분들을 많이 보지 못했고, 제가 아는 몇 분도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기 때문에 장애인 창업가들이 겪는 소통의 어려움과 정보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헌용 저는 우리 사회가 장애를 부정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장애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는데요.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장애를 긍정하는 시대로 갔으면 좋겠고요. 부정에서 긍정으로, 긍정에서 인정으로 가는 게 다음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교가 사회적 가치를 전수하는 기관이라고 많이 생각하시는데, 그러한 학교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바꾸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김진영 저는 공익변호사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제 일을 잘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고요. 나아가 장애와 비장애를 잇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돌아다니는 게 목표입니다.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고, 그러면서 발견한 문제를 제기하고, 많이 투닥거리고, 많은 응원을 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홍윤희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세 분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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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스튜디오 비선형
글 | 박은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