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보유여성을 통해 미리 보는 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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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린 DEI 랩 세미나에서 이보라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와 선종헌 DEI 이니셔티브팀 팀장이 발표한 공동 연구 “포용하며 배우다: 경력보유여성의 삶을 통해 미리 보는 일의 미래”가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 연구는 2024년 4월부터 5월까지 재취업한 경력보유여성 10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사례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연구를 통해 경력보유여성들이 가진 중요한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경력의 정의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했죠. 경력보유여성들의 특별한 강점과 그들의 커리어 여정을 통해 일의 미래를 어떻게 미리 볼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 바로 연구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
기존의 경력보유여성 관련 연구나 정책들은 그들을 배려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가로막는 요인, 그들이 경제 활동을 재시작 할 때 사회에 주는 경제적 효과 등을 논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많이 논하고 있습니다 (1). 이렇게 배려의 대상이란 인식은 차별을 만들기도 하고, 실제로 그들의 자존감이나 효능감을 많이 낮추기도 합니다 (2).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보면 그들은 다수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경력을 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4월에서 5월 사이, 10명의 재취업한 경력보유 여성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재취업한 경력보유여성의 강점
유급노동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력보유여성들은 다양한 상황과 의견들에 상당히 열린 자세를 보입니다. 다른 문화권에서의 생활, 여러가지 역할 수행, 이직이나 업무 변경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을 보유한 덕에 유연성이 확보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일과 삶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잠시 유급노동시장에서 떠나있었던 경험 덕분에 직장 생활에 과하게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쉬이 여기지도 않게 되었다고 해석이 됩니다.
“경력 단절 때문에 일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게 업무나 사회적으로도 강한 책임감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요” -수지(3) 님, 비서업무, 30대 후반
육아와 가사노동 경력으로 개발한 역량
먼저, 사람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이 개발됩니다. 아이를 돌보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돌보는 과정은 끝없는 조율과 타협을 요구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원하는 게 뭐지?’ ‘이건 안 되는데 떼를 쓰네. 어디까지 되고 안 된다고 하지?’ 등을 지난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과정에서 ‘나는 뭘 원하고 있지?’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이 아이와 소통하고 있지?’ 와 같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키워야 되니까 사람 심리를 분석하게 되고 왜 이런 행동들을 하게 되는지 분석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은 내 주변 사람을 다 분석하게 되요”- 혜수 님, 교육관련업무, 41세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ment) 능력도 개발 됩니다. 돌봄이나 가사노동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해야되는 일과 조금 포기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여 빠른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투입 가능한 시간, 재원, 체력 등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거나, 필요한 도움을 정의하고 요청하여 아웃소싱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원 관리와 위임의 능력이 상당히 개발 되는데, 이것은 조직에서 일과 사람을 관리하는 역량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유연성과 적응력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발생하거든요. 처음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도, 결국은 대처를 해야하기 때문에 순발력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고 내 예상대로 되지 않아도 결국은 솔루션을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지요.
돌보는 능력도 개발됩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 돌봄의 대상에 타인은 물론 본인도 포함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생명과 안전이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책임감은 잠시도 회피할 수 없는 무게일텐데요. 그 책임감 때문에 너무나 지치지만, 결국 그 책임감 때문에 그 지친 본인의 상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쉬려면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누구한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독여야 하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궁리하면서 더 넓은 의미의 돌봄 능력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력보유여성의 경력과 일의 미래
직업의 세계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지내는 시대도 끝나갑니다. 진로(career)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선형적진로패턴”이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권위 있는 기관들은 이런 변화 속에 잘 살아가려면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가를 연구합니다. 유네스코는 미래의 교육이 협동, 협력, 연대, 상호 의존, 포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 OECD는 ① 새로운 가치 창출하기 ② 긴장과 딜레마 조정하기: ③ 책임감 갖기 가 미래에 필요한 변혁적 역량이라고 합니다 (5). 진로 연구자들 역시 적응력, 유연성과 같이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타인과 협업하고 연대하는 능력들을 강조합니다 (6,7,8). 이 역량들은 경력보유여성들이 돌봄이나 가사노동 중에 개발한 역량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과거 우리 논의의 많은 부분은 젠더와 일의 종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림1). 어떤 젠더가 어떤 종류의 일을 더 많이 혹은 적게 하느냐 같은 것이죠. 하지만 이 논의에 ‘시대 변화’라는 중요한 요인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로 관점을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 2). 일하는 방식, 직무의 설계, 근무 제도, 일과 삶의 조화 등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일문화를 원하고 있고,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조직과 사회는 어떻게 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일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그래야만 사회가 지속가능해집니다. “경력”의 의미를 확장해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경력보유여성들의 “경력”에 마땅한 존중이 시작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홉 가지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직업인으로의 역할은 물론 부모, 자녀, 시민, 여가인으로서 등 다양한 역할을 전생애에 걸쳐 수행하게 되고 이는 다양한 패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각자의 고유한 패턴을 바로 경력 또는 커리어라고 합니다. 때문에 경력을 직장 경험 단 한가지로만 좁게 해석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서 배제됩니다. 우리 국어사전에 ‘경력’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경험”이라고 정의되어있습니다. 꼭 ‘직업’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요. 모두의 모든 경험이 존경받는 일터, 다양성과 포용이 있는 일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정형옥, 정수연 (2023). ‘경력단절여성’에서 ‘경력보유여성’으로 개념 변화: 의의와 한계. 경기여성가족재단.
- Lenhardt, R. A. (2004). Understanding the mark: Race, stigma, and equality in context. New York University Law Review, 79, 803-931
- 본고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함
-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2021).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 계약 (Reimagining Our Futures Together: A New Social Contract for Education). 국제미래교육위원회 보고서 https://www.unesco.or.kr/assets/data/report/FbPza0sfWN5ryMZPIDJHypwDKRfUQ4_1649298093_2.pdf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0). OECD Learning Compass 2030. OECD. https://www.oecd.org/education/2030-project/teaching-and-learning/learning/
- Bright, J. E., & Pryor, R. G. (2019). The chaos theory of careers: Emerging from simplification to complexity, certainty to uncertainty. Asia Pacific Career Development Journal, 2(1), 1-15.
- Krumboltz, J. D. (2015). Practical career counseling applications of the happenstance learning theory. In P. J. Hartung, M. L. Savickas, & W. B. Walsh (Eds.), APA handbook of career intervention, Vol. 2. Applications (pp. 283–292).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https://doi.org/10.1037/14439-021
- Savickas, M. L. (2013). Career construction theory and practice. Career development and counseling: Putting theory and research to work, 2nd edition (pp. 14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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