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경력보유여성의 경험에서 배우는 미래 일의 역량
지난 9월 24일, 서울 잠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호텔에서 유엔여성기구(UN Women) 성평등센터가 주최한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여성과 함께하는 포용적 일터의 미래’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서는 여성의 경력개발과 지속가능한 리더십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미셀 원스롭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축사를 통해 여성 인재들이 중도에 이탈하는 ‘파이프라인’ 문제를 지적하며, 특히 완경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경력과 육아 사이에서 겪는 어려움을 언급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루트임팩트 DEI 이니셔티브 팀은 ‘재취업 경력보유여성의 경험에서 배우는 미래 일의 역량’을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경력보유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미래 일터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포용적 일터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이번 발표 내용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루트임팩트 DEI 이니셔티브 팀 선종헌입니다. 뜻깊은 자리에 서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저희 팀을 간단히 소개하고, 최근 저희가 수행한 연구 한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 연구를 통해 저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기관입니다.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중 저희 DEI 이니셔티브 팀이 하고 있는 사업은 세 가지 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조직과 같이 임팩트 지향 조직의 임직원들을 위한 직장어린이집 모두의숲, 임신과 출산 등으로 유급노동을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리어 지원 프로그램 Impact Career W, 조직의 다양성 포용에 관련된 실험을 지원하고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는 DEI Lab 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업들의 목적을 요약하면 포용적인 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좋은 직원’의 틀을 넘어 포용적인 일터로
포용적인 일터란 어떤 모습일까요?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정의했듯이, 저희도 저희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형’을 벗어나도 환영받는 일터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전형적인 좋은 직원”이 아니더라도 환영받는 일터입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은 직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정의하고 유지해왔습니다. 지각하지 않고, 야근에 어려움이 없으며, 약속한 시간에 회사가 요구하는 장소에 물리적으로 있기에 아무 제약이 없는 사람이어야 하죠. 팀 분위기를 망치지 않아야 하니까 서로 나이, 성별, 배경 같은 것들이 비슷해서 튀지 않는 사람이 선호되는 것도 강합니다. 또한, 너무 어린 팀장이나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도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직책이 높고, 나이가 어리면 직책이 낮아야 업무 소통이 수월하다고 합니다. 이런 ‘전형성’이, 강한 경계선을 만들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강력한 ‘원’ 안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전형’에 부합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들은, ‘원’ 밖을 서성이게 됩니다. 유치원에 등하원해야 하는 아이가 있어서 Nine to Six 출퇴근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이 원 밖에 있습니다. 직종이나 업을 바꾸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과 이력이 많이 다른 사람도 원 밖에 있습니다. 휴직기간이 길어서 나이는 많지만 관리자는 아닌 경력자들도 원 밖에 있습니다. 전형성이 없기 때문에 원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 비용을 치뤄야 다시 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마 그 비용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일터 밖의 선택들을 포기한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책임이 생길 무렵, 그러니까 전형적인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무렵에, 유급노동시장을 떠났다가, 시장을 떠났다는 사실이 또 다른 비전형성이 되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이름까지 붙어있죠. “경력단절여성”이 그것이고, 그들을 지원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력단절여성, 경단녀라는 이름은 누구도 달고 싶어하지 않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되었습니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경력보유여성의 역량
그렇다면 이렇게 달리 보면 어떨까요? 경력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경력을 보유한 여성들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경력이요. 단절 이전의 유급노동경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아나 돌봄에 전념해본 경력, 직무나 조직을 변경해서 도전해본 경력, 사회적 편견이나 다양한 책임 부담을 견뎌내고 유급노동 시장에 다시 정착한 경력까지 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경력보유여성은 지원하고 도와야하는 대상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보고, 배우고, 이겨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일의 미래를 준비해보자는 취지의 연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루트임팩트 DEI 이니셔티브 팀과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이보라 교수님이 공동으로 진행하였고, 크게 두 가지 연구 질문에 답하고자 했습니다. 첫째, 경력보유여성들이 유급노동시장을 떠나 육아와 가사에 집중하는 동안 어떤 경력 개발이 이루어졌는지 탐색하고자 했습니다. 둘째, 그러한 경력을 가진 이 여성들이 직장에서 보이는 강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재취업하여 일하고 있는 경력보유여성 10명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진행했고, 녹취록을 바탕으로 범주화와 연구자간 상호 분석을 거듭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한 결과,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여성들이 육아와 가사에 집중하는 기간 동안에 개발된 8가지 역량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여덟 가지의 능력 중 일부를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개발됨을 발견하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여성들은 유급노동을 멈춘 기간 동안 대부분 육아 책임을 맡게되는데, 아이들은 보통 자기의 욕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육아를 통해 상대의 숨겨진 욕구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심리에 대한 탐구심까지 생기게 되었다는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혜수님은,
“사람을 키워야 되니까 그 아이를 알아야 하고, 뭔가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게 되고, 왜 이런 행동들을 하게 되는지 고민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은 내 주변 사람을 다 분석하게 되는거죠.” 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자기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어쩔 수 없이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의 여러가지 감정을 꾹참고 받아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견디는 일종의 인내심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타인의 실수에 관대해지기도 하고, 타인의 다양한 감정을 인정하되, 그 감정에 의해 판단이 흐려지거나 타인과의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능력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역량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다른 사람을 파악하고, 자신을 조절하여,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소통의 방식들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직장에서라면 팀으로 일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깐 만난 사람과 유쾌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인내하고, 과업을 명확히 이해하며,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멀티태스킹 능력이 길러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돌봄 노동의 어려운 점 한가지는 단 한가지도 충분한 시간동안 진득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슬라이드에서 보시는 것 처럼 희진님을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의 인터뷰 참가자들이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해야 하는” 일상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조건 덕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시간관리를 하고 자신의 체력을 기르며, 계획을 세우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길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책임져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에 적응하기 위해 업무관리 능력이 길러지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일을 분배하여 적절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하여 계획을 세우는 일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경미님은 이를 “외주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 주어진 상황 아래서 가용한 자원을 파악하는 것, 적절한 위임을 하는 것 등은 조직의 매니저들에게 요구되는 업무관리 능력과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직장에서라면 관리자로서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역량이 개발된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예를들어 지선님이 “그때 그때 거기에 맞춰서 또 생활을 하게 되요” 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환경을 수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에 맞춰 대처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자기의 기준치를 조정하는 등의 유연성과 적응력이 많이 개발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와 세상에 대한 성찰력도 길러집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겪지 못했던 다양한 변수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들은 몰랐던 자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희진님께서,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본인이 얼마나 많은 주변의 도움을 받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좋은 예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자기와 세상에 대한 성찰을 깊게 할 수 있는 능력은, 특히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미래 사회의 성숙한 시민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역량입니다.
유네스코, OECD, 맥킨지 등 유수의 기관들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변화가 점점 빨라지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에 대비한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연구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를 살펴보면 협동이나 연대와 같이 더불어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힘, 유연성과 수용성 같이 모호함을 견뎌낼 수 있는 힘, 자기조절이나 갈등관리처럼 타인을 포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저희가 이번 연구를 통해 발견한 여성들의 역량이, 이 미래의 역량들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유용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직장에서 발휘하고 있는 독특한 강점들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경험 덕분에 더 능숙한 업무처리가 가능하다는 점, 난이도가 높은 대인 관계에도 잘 대응한다는 점, 주어진 업무 시간이 짧기 때문에 오히려 높은 집중력을 보인다는 점, 뚜렷한 진로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남다른 강점을 보였습니다. 물론 기술 개발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거나 다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 같이, 분명한 약점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경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환영을 바라며
이런면에서, 저희의 연구가 가지는 첫번째 함의를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유급노동자로서 경력보유여성이 가지는 특성을 설명할 “언어”를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직장에서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는 고유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 가득하고, 불안정하며, 이른바 N-job이 요구되는 미래의 일을 누구보다 앞서 경험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가치로운 커리어 패턴을 보유한 집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 함의는 돌봄의 가치에 대한 재고찰을 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돌봄은 유의미한 역량 개발을 동반하는 경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돌봄의 의미도 자녀를 키우는 것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없더라도 배우자, 부모, 친구, 혹은 자기 자신까지 이르러 다양한 돌봄의 책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돌봄은 사회구성원 누구나 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하게 되는 일, 즉 우리 모두의 일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발표 서두에 언급한 일터의 전형이라는 것을, 이 연구를 통해 다시 짚어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가진 Good Worker 에 대한 전형을 좀 벗어나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것이 이처럼 변화된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전형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채용, 평가, 보상, 일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혹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유의미한 커리어 성숙에 대해서 너무 전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커리어를 선형적인 패스로만 보는 관점을 탈피하고, 다양한 각도의 커리어 패턴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루트임팩트 DEI 이니셔티브 팀이 만들고 싶은 포용적인 일터가 더 가까이 올 것입니다.
이 연구는 저희 루트임팩트가 올해 막 시작한 DEI Lab의 연구 프로젝트이자, 지난 7년간 수행해온 경력보유여성 커리어 지원 프로젝트의 마무리입니다. 앞으로 연구대상자의 범위와 규모를 더 확대하여 더 다채로운 연구가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이 연구 덕분에 저희는 저희가 희망하는 포용적인 일터와 사회에 대한 그림을 더 선명하게 그리게 되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명확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희망을 정리한 문장으로 발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의 책임을 다한 누군가의 치열한 경력이 응당한 인정과 환영을 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