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1 기금, 한국 필란트로피의 미래를 묻다
IP1 기금
‘비영리 성장 실험의 기록, 변화의 시작’ 성장공유회 1편

이 시대의 가장 필요한 화두를 끌어내는 담론의 장인 성동구 문화창조산업축제 ‘크리에이티브×성수’. 루트임팩트는 행사의 일환으로 9월 17일부터 3일 동안 ‘2025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를 선보였는데요. 여정의 마지막날인 9월 19일 금요일 오후, 루트임팩트가 3년간 진행한 IP1 기금 사업의 성장을 톺아보는 의미있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비영리 성장 실험의 기록, 변화의 시작- IP1 기금의 벤처 필란트로피 아카이브’는 지난 3년간의 ‘벤처 필란트로피’ 실험을 아카이빙하고, 그 성과와 과제를 공유하며 생태계 전체의 도약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성장공유회] 비영리 성장 실험의 기록, 변화의 시작 일시: 2025.9.19(금) 14:00-17:00장소: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브릭스홀 타임라인: 1부 실험의 시작과 과정 – 키노트 (WHY): 벤처 필란트로피 실험은 왜 시작되었나? – 패널 토크 1 (HOW): IP1 기금은 비영리 조직과 어떻게 동행했나? 2부 실험의 결과와 미래 – 피칭 (WITH WHO): 함께한 비영리 조직들은 어떻게 성장했나? – 패널 토크 2 (FOR WHAT): 더 많은 실험을 위해 생태계는 무엇을 해야 하나? |
키노트 스피치. WHY – 벤처 필란트로피 실험의 시작, 루트임팩트는 왜

“루트임팩트의 정체성은 체인지메이커를 위한 더 나은 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년 뒤, 우리가 바라는 임팩트 생태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IP1 기금의 시작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임팩트 생태계는 하나의 분야로 골격을 형성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할 시점이기도 했죠. 하지만 수많은 임팩트 조직들이 여전히 재무적, 인적, 사회적 자본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리 조직에 비해 비영리 조직은 기회와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낮았고, 이는 생태계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22년, 루트임팩트는 김강석 블루홀(현 크래프톤) 공동창업자와 함께 비영리 단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기금 IP1을 시작했습니다. IP1 기금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조직의 필요에 맞는 방식으로 제약없이 유연하게 비용을 쓸 수 있게 하며, 최대 3년간 재정적/비재정적 지원을 제공합니다. 졸업 이후에도 2년간 비재정적 지원을 이어가면서, 최대 5년이라는 긴 호흡의 지원을 설계했습니다. 조직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IP1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정 단체의 성장 너머에 있었습니다. 허재형 대표는 “IP1 기금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맞는 좋은 필란트로피 설계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개별 조직의 성공을 넘어 생태계 전체에 기여하고자 했던 기금의 비전을 밝혔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과감하고 새로운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계에 유입된다면, 한국 사회도 더 모험적인 사회 문제 솔루션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안고 말이죠. IP1의 실험은 이러한 바람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씨앗을 심는 여정이었습니다.
패널 토크 1. HOW – IP1 기금은 비영리 조직과 어떻게 동행했나?
키노트가 IP1 실험의 ‘WHY’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면, 이어진 패널 토크는 ‘HOW’, 즉 그 실험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소셜밸류랩 이은희 대표가 진행을 맡은 가운데, 에이유디 박원진 이사와 피치마켓 함의영 대표, 그리고 루트임팩트 조원빈 기금 매니저가 대화의 장을 열었습니다.
베이크 액션 부스터(VAB) by 소셜밸류랩 소규모 비영리 조직들이 소셜 액션을 기반으로 조직 미션과 연결된 참여형 활동을 진행하고, 지속가능한 후원자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입니다. *IP1 기금은 비영리 생태계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선정해 비영리 조직들의 성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원합니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농·난청인의 의사소통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며,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불평등을 개선합니다. 피치마켓 느린학습자에게 쉬운 글 콘텐츠와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느린학습자의 주도적인 삶과 일상의 자립을 돕습니다. |
‘튼튼한 조직’이란 무엇인가? 나침반을 재설정하다
IP1이 지향하는 ‘튼튼한 비영리 조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첫 번째 패널토크는 이에 대한 조원빈 매니저의 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돈도 잘 벌고 성과도 잘 내는 조직’입니다. 여기서 ‘성과’란 조직이 추구하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의미한 변화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액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목표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돈을 필요한 만큼 조달하고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잘 버는 일과 성과를 잘 내는 일이 서로 유리되지 않고, 선순환 구조를 이뤘을 때 튼튼한 비영리 조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파트너십이었나?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되다
건강한 조직 성장을 위해 IP1은 장기적이고 유연한 지원을 제공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IP1의 파트너십은 조직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고,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원 기간과 예산 사용 방식도 새로웠지만,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저희를 깊이 이해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기금 매니저님들이 ‘루트임팩트 소속이 아니라 에이유디 직원 아닌가?’ 헷갈릴 정도로 헌신적으로 함께해주셨습니다. 이런 파트너십은 처음이었습니다.” -에이유디 박원진 이사
루트임팩트 조원빈 매니저는 IP1의 역할을 ‘디스커션 파트너’이자 ‘페이스 메이커’라고 설명했는데요. IP1이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조직 관리 역량이 조직 안에 온전히 자리 잡아 스스로 지속되고 고도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재화를 돕기 위해, 정답이나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소통해왔죠.
무엇이 변했나? 전략에서 문화까지, 조직을 새롭게 세팅하다
이처럼 긴밀한 동행은 임팩트 전략과 조직의 변화 두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에이유디 박원진 이사는 IP1과 함께하며 ‘임팩트 측면’에서 중장기 목표와 성과 지표를 구체적으로 수립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에이유디는 어떤 유의미한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고민하며, 조직의 더욱 방향성을 튼튼하게 설정할 수 있었죠.

피치마켓 역시 IP1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IP1에서 저희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질문하시더군요. 팀원들과 우리가 쓰는 단어들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초장기에 별 생각없이 쓴 단어들을 팀원들이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조직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리더가 비전을 얼마나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피치마켓 함의영 대표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조원빈 매니저는 조직의 장기적인 성장과 대표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어려움 사이에서 적절한 속도를 찾는 것이 큰 숙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결국 “서로의 상황을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었다”라며 ‘신뢰’를 강조했어요.
마지막으로 패널들은 ‘앞으로 IP1과 함께 그려나가고 싶은 성장의 모습’에 대한 각자의 비전을 공유하며 대담을 마무리했습니다.

피칭. WITH WHO – 함께한 비영리 조직들은 어떻게 성장했나?
이어 진행된 피칭 세션은 IP1 실험이 만들어낸 변화를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IP1 기금의 졸업을 앞둔 뉴웨이즈와 온기가 무대에 올라, ‘신뢰 기반의 장기적이고 유연한 지원’이 어떤 성장을 만들어냈는지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뉴웨이즈: ‘정치 스타트업’의 문법을 새로 쓰다
첫 번째 주자는 ‘뽑고 싶은 정치인을 우리가 직접 키운다’는 대담한 미션을 내건 정치 스타트업, 뉴웨이즈였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에 부재한 ‘인재 성장 시스템’을 정당 밖에서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곳인데요. IP1 기금의 첫 번째 선정은 당시 작은 프로젝트였던 뉴웨이즈에게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2명이었던 팀은 8명으로 늘었고, 사업 모델은 ‘젊치인 인재풀’을 만드는 것을 넘어 ‘정치 생태계’를 구축하는 역할로 확장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0만 명을 바라보게 되었고, 월 정기 후원금은 1,400만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는, 약 100만 달러 규모의 해외 펀딩 유치에 성공하며 더 큰 가능성을 증명해냈습니다.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는 이 폭발적인 성장의 비결로 IP1 기금이 지닌 독특한 지원의 속성을 꼽았습니다.

“첫째는 ‘돈의 속성’입니다. IP1의 돈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유롭고 유연한 돈이었습니다. 덕분에 정해진 사업 계획을 완수하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더 임팩트 있는 방법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차별점은 바로 ‘언어의 속성’에 있었습니다.
“IP1은 저희에게 끊임없이 ‘왜, 어떻게, 어디까지 성장하고 싶은지’를 묻는 파트너였습니다. 이 질문들은 저희가 단순히 눈앞의 성장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가고 싶은 최종 목적지와 그 과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그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저희의 성장 스토리를 설득력 있는 IR 자료로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신뢰 기반의 유연한 ‘돈’이 마음껏 실험하고 뉴웨이즈다운 방식을 찾을 수 있는 운동장이 되었다면, 본질을 묻는 ‘언어’는 그라운드 위에서 어디로 달려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준 셈이죠. 3년간의 지원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는, IP1 졸업을 앞둔 소회를 나누면서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저희는 정말로 진심으로 이 생태계가 키웠습니다. IP1과 같은 신뢰와 자원이 없었다면, 레퍼런스 하나 없는 이 길 위에서 이만큼의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거예요. 생태계의 자원으로 여기까지 온 만큼, 튼튼한 비영리 조직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뉴웨이즈를 잘 만들어가보겠습니다”
온기: 지속가능한 위로의 시스템을 설계하다
다음으로는 온기우편함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사단법인 온기의 조현식 대표가 무대에 섰습니다. 온기는 익명의 고민 편지에 손편지로 답장하는 온기우편함을 운영하는 비영리 조직인데요. 조현식 대표는 ‘임팩트’와 ‘지속가능성’이라는, 많은 비영리 조직들이 마주하는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IP1와 함께 어떻게 풀어왔는지 여정을 공유했어요.
해답의 실마리는 IP1과 함께한 ‘임팩트 최소기능체계’ 설계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조직의 비전과 미션, 그리고 솔루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촘촘하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온기는 사업 모델 안에 숨겨진 강력한 성장 엔진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후원 플라이휠(Flywheel)’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온기우편함 사업이 확장되면,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수혜자와 자원봉사자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커집니다. 이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인 개인 후원과 기업 파트너십이 확장되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이 다시 사업 확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전략적 성장은 IP1의 유연한 지원을 통해 현실이 되었습니다. 온기는 IP1 기금을 활용해 초기 레퍼런스를 빠르게 확보하는 과감한 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CGV 영화관, 서울시설공단 추모공원 등 상징적인 공간에 우편함을 설치해 성공 사례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료 설치 모델을 개발해 지속가능성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죠. 더 나아가, 온기는 파트너십을 위해 ‘신뢰’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데도 IP1 기금을 활용했습니다.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위해서는 정량적인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IP1 기금을 통해 임팩트 가치를 화폐 단위로 산출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파트너사에 ‘함께한 사업이 이만큼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었다’는 보고서를 제공하고, 파트너사는 이를 ESG 보고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 3년간 온기우편함은 전국 25곳에서 110곳으로, 기업 파트너는 5곳에서 50곳으로, 답장을 작성하는 온기 우체부는 200명에서 80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뉴웨이즈와 온기의 피칭은, 1부에서 논의되었던 IP1의 철학과 방법론이 조직의 성장을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두 조직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지지와 신뢰가 주어질 때 체인지메이커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IP1의 시작(WHY)와 과정(HOW), 그리고 눈부신 성장 사례(WITH WHO)까지. IP1 기금의 이야기는 곧 한국 필란트로피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였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지원과 신뢰를 기반한 파트너십이 있을 때, 비영리 조직 역시 더욱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성장하고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었습니다. 필란트로피가 더 많은 변화를 이뤄낸다면, 비영리 생태계 역시 더 새롭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IP1가 심은 새로운 가능성을 토대로, 우리는 무엇을 시도해야 할까요? 그리고 어떠한 한국 필란트로피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어진 두 번째 패널토크에서는, 한국 필란트로피의 미래를 향한 더 큰 질문을 던지며 비영리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길(FOR WHAT)을 모색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