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여성 칼럼

루트임팩트가 그리는 돌봄의 시스템 체인지

2026년 07월 10일
선종헌 DEI 프로젝트 리드

루트임팩트 허재형 이사장은 최근 칼럼 ‘댄스 플로어에서 발코니로‘에서 임팩트 생태계에 시야 전환을 제안했습니다. 치열한 음악과 몸짓이 가득한 사회 문제의 ‘댄스 플로어’에서 벗어나 거대한 흐름과 맥락이 보이는 ‘발코니’에 올라, 그동안 그토록 치열하게 매달려 온 사회 문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10여 년 넘게 임팩트 생태계에 몸담아 온 이사장이 발코니에서 던진 질문을 곱씹으며, 돌봄이라는 거대한 사회 문제 위에서 ‘춤을 추어 온’ 우리의 노력을 돌아보았습니다. 돌봄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돌봄을 논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무엇보다 관련 솔루션이 많아진 이 플로어에서 정말로 유효한 해결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 솔루션이 함께 추는 춤의 패턴이 실제로 바뀌고 있는지 냉정하게 자문하기 위하여 우리의 실험을 먼저 돌아보았습니다.

DEI Lab의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한 실험들

DEI Lab은 각 실험을 하나의 가설에서 출발시켰습니다. 첫째, 안정적인 돌봄 인프라가 조직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가설. 이를 검증하려 컨소시엄형 ‘공동직장어린이집’ 모두의숲을 세우고 확산 가능성을 실험했습니다. 둘째, 돌봄으로 커리어를 멈춘 여성 중 일부는 새로운 일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는 가설. 임팩트 커리어 W·리부트캠프에서 커뮤니티와 프로젝트 기반의 일 경험으로 경력단절을 풀 수 있는지 실험했습니다. 셋째, 일터가 품는 돌봄을 ‘어머니의 자녀 돌봄’ 너머로 넓히면 돌봄에 대한 인정이 커지고 일터에서 지워지는 일이 줄어든다는 가설. 지금은 조직에 맞춘 단기 행사와 기업 교육으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실험들이 지향하는 패턴의 변화

이제 우리는 발코니에서 돌봄을 향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개별적인 시도들을 합쳐 우리가 만들어 내려는 변화의 패턴은 무엇일까요?

모두의숲 어린이집으로 퇴사나 이직을 막을 수 있는 양육자의 수는 어린이집 정원만큼입니다. 돌봄기의 고립을 덜고 커리어 자신감을 회복한 경력보유여성의 수, 돌봄에 더 책임감을 갖게 된 아버지의 수도 매 프로그램 정원만큼입니다. 정원은 늘릴 수 있지만, 그 방식으로는 문제의 규모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고단한 돌봄을 응원하고 일부 나누어 지는 것만으로는 흐름이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난 수많은 사례가 보여준 것은, 돌봄의 범위가 그만큼 넓고 그 맥락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변화의 무게중심은 돌봄 당사자의 고단함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조직과 생태계에 있습니다. 모두의숲 어린이집을 7년간 운영하며 확인한 것은 조직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연대의 방식으로 함께 안정적인 돌봄 인프라를 세우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직이 어린이집을 계기로 구성원의 삶에 얽힌 다양한 돌봄을 살피고, 다른 조직과 연대해 더 넓고 장기적인 돌봄 책임을 함께 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리는 방향입니다. 하이페츠의 표현으로 돌아가면, 이는 관련된 모두가 자신의 가치와 역할을 바꾸어야 풀리는 ‘적응적 도전’입니다(1).

최근 수년간 ‘돌봄 경제(care economy)’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를 유급 노동에 투입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렛대로 좁혀 해석합니다. 이렇게 읽는 순간 돌봄 지원은 누군가 떠안은 부담의 일부를 잠시 대신 메워 주는 임시처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국제 사회가 가리키는 방향과도 어긋납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돌봄 서비스를, 건강한 인구를 유지하고 사람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떠받치는 ‘사회 인프라’로 규정하고, 그 품질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직접적인 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명시합니다(2). 돌봄 지원은 개인의 고단함을 잠시 더는 복지가 아니라, 사회를 떠받치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입니다.

그러므로 돌봄은 단순하거나 희생적인 봉사가 아닙니다. 유능하고 사회적이며, 관련된 모두를 행복에 가깝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에 대한 지원 또한 한쪽의 너그러운 결정으로 편성되는 특별예산이 아니라, 사회를 존속시키는 상시 인프라여야 합니다.

돌봄을 인프라로 다루는 일터와 생태계는 구체적인 모습은 두 가지 위에 섭니다. 누가 돌봄의 당사자인가, 그리고 돌봄과 일은 어떤 관계인가.

규칙을 다시 쓰기 — 모두가 돌봄 생태계의 이해관계자

첫 번째 전환은 ‘돌봄은 사적인 일’이라는 규칙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2025년 헤이그라운드 입주사를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 당시 자녀가 없는 응답자의 30% 가 돌봄 포용이 더 잘되는 조직으로 옮길 수 있다면 급여를 5% 이상 감수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응답자 300명). 돌봄 책임이 없는 응답자의 93%가 동료의 돌봄 책임을 함께 지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루트임팩트가 지원했던 한 조직 실험에서는 이런 반응도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 돌봄 책임이 없지만, 회사가 구성원의 돌봄을 적극 포용하는 것을 보며 이곳이 공정하고 계속 다닐 만한 회사라고 느꼈다.”

돌봄 포용적 조직 문화는 특정 시점에 해당 사항이 있는 일부 대상자만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신뢰와 공정성을 높이는 신호로 작동합니다. 돌봄이 개인의 몫이어야 한다는 내러티브에서 벗어날 여지가 이미 충분해 보입니다.

관계를 다시 놓기 — 돌봄이 커리어의 상생어가 되게

두 번째 전환은 돌봄과 일의 관계입니다. 지금까지 돌봄은 커리어의 반대편에 놓였습니다. 돌보는 만큼 일에서 멀어진다는 전제입니다.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키노트 연사로 서기도 했던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지은 교수가 제안한 ‘관계적 역량’ 개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3). 돌봄은 대상자의 필요를 메워 주는 일방향의 행위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과 대상자 양쪽의 잠재력을 함께 끌어내고 확장하는 상호작용입니다. 그렇다면 관계의 방향도 달라져야 합니다. 리더 혹은 권력 기관이 재원을 나누어 주고 구성원이 받는 시혜의 구조가 아니라, 돌봄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사람과 조직, 커뮤니티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일터는 돌봄을 비용으로 감당하는 곳이 아니라, 돌봄에서 역량을 길어 올리는 곳입니다.

다음 10년, 시스템 체인지를 향한 루트임팩트의 다짐

다만 한 가지를 경계합니다.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말이 또 하나의 기술적 처방으로 굳는 일입니다. 어린이집을 하나 더 짓고, 프로그램을 하나 더 열고, 지표를 하나 더 채우는 방식으로는—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플로어의 패턴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그램을 늘리는 대신 판을 바꾸는 자리에 서려 합니다. 이사장의 표현대로, 중간지원조직은 “프로그램 운영자를 넘어 판 전체의 변화를 촉매하고 조율하는 역할”로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그동안 쌓아 온 어린이집 인프라와 커리어 프로그램, 조직 실험 데이터는 그 판을 짜는 재료입니다. 돌봄을 사적인 짐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로, 당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생태계의 과제로 다시 놓는 일. 루트임팩트는 그 전환을 조율하는 중추 조직(Backbone)이 되겠습니다.


참고문헌

(1) Heifetz, R. A. (1994). Leadership Without Easy Answer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2018). Care Work and Care Jobs for the Future of Decent Work. Geneva: International Labour Office.
(3) 이지은. (2025). 관계적 역량 확장의 실천으로서의 돌봄. 한국여성학, 41(2), 35–69.

※ 본문의 큰따옴표 인용(발코니·댄스 플로어, 중간지원조직의 재정의)은 허재형 루트임팩트 이사장의 칼럼 ‘댄스 플로어에서 발코니로'(2026)에서 가져왔습니다.

※ 헤이그라운드 수치는 2025년 입주사 대상 설문(N=300)입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