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벤처 필란트로피 칼럼

거대 기관을 움직인 지렛대: 협력으로 도모하는 내일 [담을 넘는 자본 ③]

2026년 10월 29일
소셜임팩트뉴스 염지현 기자

자선 자본의 진짜 가치: 공백을 채워 거대 자원을 레버리지하다

우리는 흔히 ‘자선 자본(Philanthropy)’을 떠올릴 때,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수혜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이번 3개 대학 연합 프로젝트가 우리 사회에 증명한 자선 자본의 핵심 가치는 철저하게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 효과)’에 있다.

국립대와 사립대를 아우르는 대학이라는 거대한 제도권 기관은 수많은 인재와 뛰어난 교수진, 훌륭한 연구 인프라를 이미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예산의 칸막이와 행정적 장벽 탓에 이 훌륭한 자원들을 하나로 묶어 지역 문제 해결에 온전히 투입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 

루트임팩트가 연결한 구글닷오알지의 기금은 이 복잡한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 책임지려 들지 않았다. 대신 대학과 대학 사이, 학교와 현장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자원의 공백’을 정교하게 찾아내 채워 넣었다.

‘AI 활용 대학생 로컬임팩트 포럼’ 행사를 마친 대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뜻깊은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다. /소셜임팩트뉴스

기금의 규모는 세 대학의 연합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규모에 비해 크지 않았다. 2025년 11월 첫 캠프 공동 개최, 전문가 특강 및 온라인 멘토링, 그리고 5월 합동 발표회 당시 타 지역 학생들의 왕복 교통비와 식비 등 기금이 직접 비용을 댄 항목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존 대학 예산 체계가 결코 커버할 수 없는 핵심 고리만을 이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움직임은 더 큰 자원을 움직이는 출발점이 됐다. 이 사례가 말하는 레버리지의 실체가 드러났다. 

첫째는 새로운 정규 교과가 편성됐다. 세 대학 모두 기존에 없던 새로운 교과목을 새롭게 개설하기로 뜻을 모았다. 한 학기 커리큘럼을 함께 설계해 나간 교수진의 노력과 학교의 결단이 고스란히 더해진 결과였다.

둘째는 대학의 예산이 움직였다. 한림대는 두 차례의 캠프 운영에 학교 예산을 매칭했다. 합동 발표회가 열린 스테이션C 코어는 한림대가 글로컬대학 사업으로 만든 창업 거점이었다.

‘AI 활용 로컬임팩트 포럼’에 참가한 3개 대학 학생들이 한림대학교 ‘스테이지 C’ 공간에 전시된 프로젝트 성과물을 둘러보며 각 팀의 활동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소셜임팩트뉴스

셋째는 규모는 작지만 지역의 자본이 태워졌다. 한림대 인근 춘천시 후평동 상인회는 견학으로 잡아두었던 사업의 방향을 교육으로 바꿨고, 강원도 마을 지원 사업비로 여름방학 상인 AI 교육을 열었다. 학생들은 그 교육의 강사가 됐다.

넷째는 학생들의 변화다. 세 대학 학생 63명이 한 학기 동안 각자의 도시에서 문제를 찾았고 저마다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국립순천대 이재은 교수는 이 기금의 성격을 두고 “대학 예산의 지역적·행정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협력 모델을 시도할 수 있게 해 준 진정한 ‘초기 위험 자본’이자 마중물이었다”고 평했다.

‘AI 활용 로컬임팩트 포럼’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국립순천대학교 이재은 교수(왼쪽)와 경북대학교 이새롬 교수가 참가자들의 발표에 대한 심사평을 전하고 있다. /소셜임팩트뉴스

경북대학교 이새롬 교수는 “국립대의 경직된 구조 속에서, 외부 자본 덕분에 학생들이 교실 밖의 전문성을 만나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자원이 획기적으로 유연해졌다”고 기금의 의미를 짚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었음에도 3개 대학의 인프라와 150명에 달하는 학생 및 교수진의 에너지가 ‘로컬 임팩트 창출’이라는 거대한 동력으로 폭발적으로 묶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자선 자본이 거대 제도권 기관을 움직여 문제 해결의 규모와 지속성을 키워낸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자산화’다.

학교 밖으로 나아갈 시간: 실증(PoC)과 지자체 연계의 필요성

한 학기 동안 다듬어진 학생들의 솔루션이 교실 안의 모형이나 발표 자료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는 ‘학교 밖 협력’이라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교수진이 공통으로 꼽은 조건은 지자체와 현장 관계자의 참여였다. 

이새롬 교수는 “학생들이 구상한 솔루션이 실제로 현장에 닿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별로 실제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과 운영을 담당하는 지자체 기관이 반드시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빗물받이 문제라면 지자체와 시설 관리 관계자, 주변 상인의 의견을 살펴야 하고, 로드킬 예방 문제는 도로 관리 관계자와의 논의가 필수적입니다. 또한, 학생들이 특허 출원을 준비할 정도로 기술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만큼, 대학의 산학협력 조직과 관련 전문가의 체계적인 연결이 덧붙여져야 합니다.”

‘AI 활용 로컬임팩트 포럼’에 참가한 3개 대학 학생들이 AI를 활용한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의 추진 과정과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소셜임팩트뉴스

이재은 교수 역시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한 필수 조건을 제시했다. 

“학생들의 제안이 현장에 닿으려면 지자체 담당자나 농업기술센터, 복지기관 등 현장 관계자가 아이디어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공식적인 창구가 절실합니다. 또한, 학생들의 가상 데이터로 세운 기대 효과를 현장의 특정 정류장이나 특정 농가에 짧은 기간 시범 적용해 보는 ‘소규모 실증(PoC)’을 지원할 예산과 현장 데이터 협조 체계가 수반되어야만 아이디어가 지역 사회에서 논의 가능한 수준으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춘천에서도 일부 어려움이 확인됐다. 2편에 등장한 경유준 학생의 팀은 후평동 골목의 문제가 가게 안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피크 시간에는 주차할 곳이 없었는데, 인근 은하수 주차장이 두 시간 무료라는 사실을 손님도 사장님도 몰랐다. 학생들은 춘천시장을 만나 이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그해에는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이 문제를 찾아내도 그것을 받아 처리할 창구가 없으면 제안은 제안으로 남는다.

상인회도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 여름 교육에 참여 의사를 밝힌 상인은 더 많았지만, 끝까지 온 사람은 20명 남짓이었다. 혼자 가게를 보는 상인은 문을 닫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인회는 내년에는 온라인 녹화 강의를 함께 열고, 수료한 상인 가운데 일대일 컨설팅 대상을 정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남겨진 질문과 기록의 힘: 기금 너머의 관계와 넥스트 스텝

이 기록의 끝에는 아직 답하지 못한 세 가지 질문과 한계가 남아 있다.

첫째는 재원과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2026년 6월 30일 과제 기간이 종료된 이후, 순천과 대구 학생들이 춘천을 오가는 교통비와 식비를 누가 감당할 것인지, 세 대학이 2학기 이후에도 이 교과를 이어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둘째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캠프 참가자들은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과 촉박한 발표 일정 탓에 아이디어를 깊이 발전시키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이 상인들에게 신뢰를 얻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 학기 수업은 이제 막 문이 열릴 즈음 끝나버리는 한계가 있다.

셋째는 확장성의 조건이다. 김용근 교수가 평창과 인제에서의 시도 끝에 후평동을 가장 성공적인 곳으로 꼽은 결정적 이유는 ‘지리적 접근성’이었다. 도보로 이동 가능하거나 학생들이 실제 거주하는 동네여야 한다는 현실적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전혀 다른 설계가 필요하며, 순천과 대구 학생들이 각자의 도시에서 마주한 조건들 역시 아직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를 함께 적는 이유는, 조건이 명시된 기록만이 다른 지역에서 온전히 재참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향한 2027년의 새로운 도모, 그리고 교육자들의 고백

이들의 유쾌한 도모는 멈추지 않는다. 내년인 2027년, 3개 대학은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 기후 적응 문제 해결’을 위한 대규모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과제가 일회성 교육에 그치지 않고 지역 대학 간의 지속적인 협력 모델로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재은 교수는 그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기후 문제는 폭염, 산불, 농업 피해 등 각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문제를 발굴하고, 1박 2일 솔버톤 형태로 모여 프로토타입을 완성하며 깊이 있게 배우는 지속 가능한 교육 모델로 진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편(관련 기사☞누르면 연결)에서 본 순천대 학생들의 ‘D-3 수확 준비’ 알림이 이미 기후 변화로 흔들리는 농가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이 계획은 학생들이 먼저 찾아낸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이 사례는 바다 건너에서도 소개됐다. 한림대는 보스턴칼리지가 주관한 2026 국제 기업시민 콘퍼런스(ICCC)에서 스테이션C와 로컬브랜딩 캠프 사례를 소개했다. 한림대 학생들이 강원도 꿀, 사과, 팥 등을 활용한 키트를 답례품으로 제안한 이야기도 함께였다. 스탠퍼드대가 주관한 2026 지속가능성 포럼에서는 한림대 창업 교육에 지속가능성 관점을 접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한림대는 앞으로 실리콘밸리 산호세주립대와의 솔버톤 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림대학교 김용근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미국 보스턴칼리지 주관 ‘2026 국제 기업시민 콘퍼런스(ICCC)’에서 관계자들에게 강원도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기념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소셜임팩트뉴스

단순한 도구로 여겨졌던 AI가 세상을 돕는 따뜻한 무기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본 교육자들의 소회는 남다르다. 이새롬 교수는 “학생들이 낯선 문제를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지식을 주도적으로 배우며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든든한 바탕을 마련했다”며 성장에 박수를 보냈다. 이재은 교수 또한 “학생들에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 청년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껏 뛰어놀 ‘기회’였다”는 묵직한 고백을 남겼다.

루트임팩트 최근형 팀장이 ‘AI 활용 로컬임팩트 포럼’에서 참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격려사를 전하고 있다. /소셜임팩트뉴

루트임팩트 최근형 팀장은 “이번 사례가 자금을 제공하는 주체들에게 자선자본의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자본이 대학처럼 풍부한 자원과 역량을 가진 기관의 참여와 협력을 이끄는 마중물로 쓰여, 문제 해결의 규모와 지속성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소셜임팩트뉴스에서 시리즈로 연재한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은 소셜임팩트뉴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