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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터뷰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찾아준 내 일

내일의 내:일

2020년 05월 26일
Root Impact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찾아준 내 일

Intro
소위 ‘경력단절’여성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경력’ 보다는 ‘단절’과 그 주된 원인인 ‘육아’에 초점을 두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저 ‘일’ 자체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경력보유’여성 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경력보유남성’도 ‘경력단절남성’도 전혀 통용되지 않는 단어임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여성에게만 씌워진 굴레처럼 느껴진다. 누구든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그 모습에 행복을 느낀다면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마영진 ‘루트임팩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그렇게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프리랜서를 거쳐 끈질기게 일하는 감각을 유지하려 애쓰던 그는 지난 해 소셜벤처 중간지원기관 ‘루트임팩트’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라이프점프와 루트임팩트가 공동 기획한 ‘내일의 내:일’ 두번째 인터뷰를 통해 육아 말고 일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영진님은 사실 퇴사하기는 하셨지만, 완전히 일을 그만두신 건 아니었는데요. 육아를 하면서도 그렇게 계속해서 일하실 수 있던 비결이 있을까요?

“육아와 함께 이런저런 일이 겹쳐 퇴사를 고민하긴 했지만 일을 아예 접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이직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만두는 것 자체에 커다란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주변에서는 결혼 전일때와 결혼 하고 나서 그만두는 것이 천지차이다,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을거다 등 만류가 심했어요. 하지만 제가 너무 지친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다시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무모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죠. 그리고 실천에 옮겼는데, 일단 너무 좋았어요. 스스로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요.

그런데 퇴사 후 3-4개월쯤 됐을까, 예전 팀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제가 하던 일이 해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였는데, 마침 관련해서 파트타임 프리랜서로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조금은 다른 성격의 일이었지만 그 동안의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프리랜서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면서 즐겁게 1년여의 시간을 보냈어요. 예전 직장에서 그래도 저를 떠올려서 연락주신 게 너무 고맙기도 했기에 더 열심히 임했던 것 같아요. 성향인지, 집에만 있는 것도 오래는 못하겠더라고요. 덕분에 이전에 쌓아둔 관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저도 계속해서 외부 연결의 ‘레이더망’을 세우려고 노력했어요.”

썸머 리트릿 행사 사진
매년 직원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루트임팩트의 여름 행사 ‘썸머 리트릿 (summer retreat)’ , 아랫줄 오른쪽에서 여섯번째가 마영진 팀장이다.

– 그렇게 좋은 직장에서 계속해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시다가, 아예 전혀 다른 업계의 작은 조직으로 이직을 하셨어요.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프리랜서로 일한 것도 거의 1년이 되어가던 상황이었고, 충분히 쉴 만큼 쉬었다고 느꼈어요. 아이도 조금씩 커 가니, ‘이제 다시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다시 조직에 속해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열심히 알아보기 시작한 와중에 경력보유여성의 소셜섹터공동채용을 지원하는 ‘임팩트커리어W’ 에 대한 블로그 글을 보게 됐어요. 새로운 세계가 열린거죠. 지금은 코로나 19 사태로 재택근무가 큰 화두로 떠올랐지만 불과 1년전만해도 쉽게 찾기 어려운 제도였어요. 그런데 이런 형태가 가능한 유연 근무 조직이 모인 곳이고 워킹맘의 연착륙을 위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등 세심한 배려가 불안감을 확실히 줄여줬던 것 같아요.

제가 다른 분들 대비 퇴사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다고 하긴 했지만, 어쨌든 결혼 전일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일거라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거든요. 또한 영리섹터에만 있었던 제게 소셜섹터는 너무나도 새로운 곳이었기에 결과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원하는 과정부터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입사하고도 마찬가지에요. 우선 일하는 사람에게 자율권을 보장해주는 곳이에요. 시간도 제가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소셜벤처를 포함한 관련 분야의 성장을 돕는 일도 보람있고요. 여전히 두려움이 있지만 임팩트커리어W를 통해 만난 분들을 입사 동기처럼 의지하면서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 이직하시면서 직무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언론홍보로 전환하셨어요. 적응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했기 때문에 언론홍보만을 깊게 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사회 초년생 때 아주 짧게 경험이 있긴 하지만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경력은 길지만 정작 지원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언론홍보 또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일부이고 큰 틀에서 직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가장 먼저 도서관에 가서 언론홍보에 관한 책을 싹 다 빌렸어요. 결국 책마다 강조하는 핵심은 비슷했기 때문에 맥이 잡히더라고요. 그리고 지인 중 홍보대행사 현직자를 만나서 실무 현황을 파악하는 기회를 만들었어요. 예전 사수도 만나보고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는 이런 식으로 준비하면 좋은 것 같아요. 우선 혼자서 충분히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어떻게든 연결고리가 있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요. 이런 활동을 종합해서 자신만의 틀을 그려보는거죠.”

루트임팩트 마영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팀장
루트임팩트 마영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팀장.

– 앞으로 이직하려면 영진님께 도움 받아야겠어요. 영진님은 ‘이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퇴사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 전에도 이직하는 중간에 휴식기를 가진 적이 있는데요, 그 공백에 대해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어떤 분들의 눈에는 그 비어 있는 시간이 납득이 안 되는거죠. 그런데 저는 길게 보면 좀 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내 인생에서 내가 좀 쉬겠다는데!(웃음)” 이런 마음이긴 해요. 저는 휴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경우도 제가 휴식의 시간을 거쳤기에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도전해 볼 수 있었던것 같고요. 이력서에서 그런 공백의 시기를 촘촘하게 재단하려는 사회 통념이 이제 조금 바뀔 때도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다소 전형적이지만 진심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더라’고 말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뭔가 찾아보면 어떻게든 답이 나오거든요. 설령 그것이 당장 백퍼센트 만족할 만한 답이 아니더라도 차선이 될 수 있어요. 그 차선이 최선과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일단 질러봐야 알아요. 저도 사실은 대학 졸업 후 첫 취업할 때 고생 좀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도 ‘이렇게 원하는 곳만 찾지말고 어디서든 나를 받아주는 곳에서 시작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첫 시작을 했고, 그 때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계속 나아가다보니 결국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더라고요. 그런 과정 자체가 스스로 내공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멋지네요. 일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영진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이제 입사한지 1년인데, 그 사이에 조직이 개편되면서 제가 팀을 리드하게 되었어요. 언론홍보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관리하게 되어서 오히려 원래 쌓아오던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게 된 셈이에요. 우선 하반기까지 팀을 잘 꾸려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시 조직에 속하면서 일해보니, 저는 외부와 연결되기를 원하고, 제가 기획한 것을 실현하면서 느끼는 행복이 작지 않은 유형인 것 같아요. 지금 다시 찾은 제 일을 통해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요. 일을 통해 얻는 ‘확실한 행복’을 알게 됐거든요.

Outro
육아는 일을 이어가는데 있어 큰 고민을 더해 주는 것이 사실이고, 지속가능한 일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변화하듯, 일의 형태에 정해진 답은 없다. ‘단절’을 부르는 이유가 육아이든 출산이든 또는 나름의 이유이든,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다면, 지나온 점들이 모여 선을 잇게 되지 않을까. 누구든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추어 다시 내 일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정리=김형진 루트임팩트 팀장

▶ 본 콘텐츠는 서울경제 라이프점프에 격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lifejump.co.kr/NewsView/1Z2W0EAV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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