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 공동 어린이집 만든 ‘엄마 이야기’
매거진 루트임팩트
주목받은 도시는?
성수동 소셜벤처밸리
코로나19로 길어진 물리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적어진 요즘, 이번에는 어떤 혁신적인 기업과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참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매거진 루트임팩트의 세번째 주제가 ‘가족’이라는 점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루트임팩트와 여러 소셜벤처들이 모여 만든 가장 가족적인 프로젝트가 지난달 드디어 만들어졌거든요.
어린이날 전날, 성수 소셜벤처밸리에는 11개 기업이 합심하여 만든 공동 직장어린이집 ‘모두의 숲 어린이집’이 개원했습니다. 왜 어린이집을 만들게 되었는지, 만났던 많은 파트너들의 이야기를 담당자였던 정다현이 들려드릴게요.
1. 왜 어린이집을 만들게 되었나
평균 15개월의 육아 휴직 이후, 돌봄 인프라에는 1) 어린이집 2) 아이돌보미 3) 조부모님으로 크게 세 가지 옵션이 존재합니다. 이 세가지 옵션에는 모두 어려움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많은 여성 체인지메이커들이 경력 단절의 위기에 쉽게 처합니다.
뉴스에서 봤던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출퇴근이 제법 유연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검색해보니 집 주변에 어린이집도 많았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막달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여성의 일과 삶에 대한 컨퍼런스였고 그래서 수많은 ‘일하는 엄마 선배’들을 만나와서 일 좋아하는 내가 일을 관둘 수도 있겠단 생각은 안했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쉽게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어린이집 대기 순위는 50번째 였고(반 정원은 3~6명), 저나 남편의 부모님은 육아 지원이 어려웠습니다. 갓 엄마가 된 후 접한 뉴스들에는 어린이집이나 육아 도우미의 학대가 너무 많았고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상대적으로 남편보다 수입이 적은 내가 결국 포기하게 되겠구나.’란 생각에 미쳤고,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조직이어도 이 사회문제는 별수 없이 오롯이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할 ‘내 문제’란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길어졌습니다.
대안으로 언급되는 유연근무제 역시 과연 이 제도가 여성에게 좋은 것인가란 물음을 가져옵니다. 기업의 리더 중 누가 유연근무제를 쓰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들이 모여 만든 벤처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더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모든 직원이 유연 근무를 하지 않는 이상 시간제/유연제 근무는 오히려 고위직 여성 리더로 가는 길에 유리천장인 셈입니다.
운이 좋게도(?) 3개월 차이로 아이를 출산한 선배가 있었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문제는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고 수많은 엄마들이 겪는 문제이며 우리 회사 이외의 다른 체인지메이커 조직들도 성장하며 겪을 문제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실제 루트임팩트에서 런칭했던 경력보유여성 소셜섹터 재취업 프로젝트 임팩트커리어W에서 만난 여성들이 들려줬던 이야기도 아이를 길게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경력단절의 원인이었고요. 그날 저녁 남편과 함께 협동조합형 어린이집, 직장 어린이집 국가 지원 예산에 대해 샅샅이 뒤졌습니다. 저희 대표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가 8개월이 되는 2019년 1월 2일, 육아휴직을 홀드하고 소셜벤처를 위한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해 복귀했습니다.
2. 헤이킨더 프로젝트의 연대기
프로젝트 명은 헤이킨더. 목표는 2020년 3월 개원.
루트임팩트의 첫번째 회계사이자 Learn팀을 총괄하는 김형진 매니저와 루트임팩트의 공간을 설계하는 SPX 김은영 디렉터와 제가 파트타임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마리몬드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젊은 직원이 주를 이루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적은 수요, 우선순위에서 밀려 프로젝트는 홀드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설립에 긍정적으로 답한 기업 리스트를 시작으로 새롭게 설문조사를 시작했습니다. 7개 기업을 모아도 최소 49인 어린이집을 만들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수요라 다른 방도를 고민하고 있을때 불현듯 헤이그라운드 옆 건물의 쏘카가 떠올랐습니다. 큰 규모의 기업인만큼 많은 수요를 가지고 있었고 쏘카의 합류로 드디어 컨소시엄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용노동부 산하 직장보육지원센터는 매 해 몇 개의 기업을 선정하여 직장 어린이집 설치비를 지원합니다. 대규모 기업, 우선지원대상 기업에 따라 설치비 지원 비율이 달라집니다. 헤이킨더 컨소시엄 같은 경우, 우선지원대상 기업 5개 이상이 모인 공동형으로 최대 20억원 설치비의 90%를 지원받습니다.
설립의 기초적인 것만 알고 있었기에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었던 소규모 기업들을 만났습니다. 우아한 형제들, 텔스타 등을 만나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어린이집의 철학과 과정을 리서치했습니다. 직장 어린이집 운영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재단 한 곳을 선정하여 기본적인 컨설팅을 받아 어린이집의 설립을 구체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성수동.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낡은 공장과 카센터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힙을 뽐내지만 어린이집을 설립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의 도시였습니다. 어린이집은 반경 50미터 이내에 주유소 혹은 공장이 있으면 안됩니다. 힙의 도시에서 접근성, 안정성, 안전성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어린이집이 설립되기 적합한 건물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 였습니다. 좋은 건물을 찾았다 싶으면 카페 입주와 경쟁을 벌여야 했고요.(졌어요.) 더 장기 프로젝트로 가져가야 하나 좌절하고 있을때 놀랍게도 새 입지가 등장했습니다. 매매로 밖에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던 건물이 임차로 돌린겁니다. 임대차 계약을 완료하고, 직장보육지원센터 공모전에 지원했습니다. 5월, 설치비를 90% 지원하는 공모전에 선정되었습니다.
한가지 큰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운영비로는 감당이 전혀 되지 않는 높은 운영비였습니다. 한 아이당 들어가는 운영비 부담은 작은 소셜벤처가 내기에는 굉장히 큰 금액이었습니다. 작은 신생 소셜벤처가 추가로 들어오기 어려운 금액이었고 그로 인해 소셜섹터의 인재유입까지 장기적으로 논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컨소시엄사 MYSC의 연결로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운영비 지원 및 후원사로 함께 진행하였고 하나금융그룹의 아이들도 함께 다닐 수 있는 공동 직장어린이집으로 더 다채로운 부모가 모인 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모두의 숲’의 철학
헤이그라운드를 처음 세울 때 입주사가 될 기업들과 함께 우리가 공유할 문화,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 갖고 싶은 공간과 철학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논의하고 만들었습니다. 헤이킨더도 루트임팩트를 비롯한 다른 기업 모두와 함께 논의하는 프로세스를 거쳤습니다. 어린이집은 어떤 아이를 키울 것인가,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 부모들이 공유하는 철학은 무엇이 될까부터 실제적인 예산 계획까지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타인에 공감하고 불의에 맞설 의지를 가진 어른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체인지메이커 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공감력과 의지를 보여주는 체인지메이커가 옆에 존재한다면 아이들이 자연스레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결론 내렸습니다. 원장선생님도 선생님을 뽑을 때 체인지메이커의 자질을 검토했고 체인지메이커 교육도 진행합니다.
두번째로 모두의 숲은 아이들이 ‘나답게’ 클 수 있는 환경이길 바랬습니다. 딸 아이를 낳기 전 저는 ‘레이스 치마 공주놀이는 안시킬거야. 마음껏 뛰놀면서 크게 해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웬걸, 화장도 별로 안하는 엄마 옆에서 파우더를 바르는 시늉을 하고 반짝이는 목걸이를 사랑하지 뭐예요. 달리기를 종용(!)해도 가만히 앉아 책 읽기를 좋아하더군요. 그제서야 지난 컨퍼런스에서 만난 오찬호 교수님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어떤 행위도 성별이 구분이 없어야 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에게 젠더프리 교육이라하며 운동장에서 뛰어 놀게 하는 것도 잘못된 교육이다. 아이가 성별을 떠나 ‘나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젠더 교육이다.’
모두의 숲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성별의 제약에 갇히지 않고 나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자 합니다. 목걸이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있을 수 있고, 물론 여자아이도 있는거지요.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를 운영하는 기업 딱따구리를 만나 그림책을 넘어 올바르게 젠더 교육을 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함께 찾고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제 딸 아이 유하가 드레스를 입고 용감하게 악당을 물리치는 멋진 공주님이 될 수 있기를.
4. 성수소셜벤처밸리 하나금융그룹 공동직장어린이집 ‘모두의 숲’ 개원
어린이집이 되기 전 건물은 임시 동사무소로 쓰였고 그 전엔 공장이었습니다. 이 곳에 어린이집을 만드는 건 골조만 남기고 전기부터 보일러까지 모든 것을 새로 짓는 것과 같았습니다. 오히려 밑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더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2주전에 불가능했던 공정을 가능으로 만들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노력했습니다.
개원 후 한 달이 꼭 되는 오늘, 옹기종기 모여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뿌듯해집니다. (제 아이는 적응이 느려 아직도 ‘혼자’ 12시에 하원합니다. 허허 쉽지않은 부모의 길) 아이들이 우리의 바람처럼 ‘나답게’, 정의로운 체인지메이커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의 숲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전국에 더 많은 소셜벤처/스타트업 직장 어린이집이 생기길, 소셜벤처도 일 하기 좋은 곳의 옵션으로 당당히 자리하길 바랍니다.
*성수동 소재 소셜벤처 기업 중 모두의숲 입소에 관심 있는 분은 dh.jeong@rootimpact.org로 메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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