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보유여성의 삶을 통해 미리 보는 일의 미래
지난 5월 23일, 루트임팩트 DEI 랩(DEI LAB)의 세미나 <포용하는 일터는 무엇을 바꾸는가>가 열렸습니다. 세 개의 세미나 중 두 번째 세션에서는 이보라 교수님을 통해 루트임팩트가 고려대학교와 공동추진 중인 연구를 공유했습니다. 루트임팩트는 경력보유여성의 커리어 재시작을 돕는 ‘임팩트 커리어 W(Wome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0주간의 실전 일경험 프로젝트 ‘리부트캠프’를 운영했습니다. 경력 공백을 딛고 다양한 방식으로 커리어를 꾸려나가며 성장하는 경력보유여성의 사례 연구를 통해, 여성뿐 아니라 모두가 대상인 일의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DEI 랩의 세미나 <포용하는 일터는 무엇을 바꾸는가> 글로 읽기 세션 1. 포용성 있는 회사는 무엇이 다를까 (1) 다양성 포용은 HR 담당자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 임상빈, 베어베터 교육팀 팀장 (2) 다양한 구성원이 근속하는 힘: 지율근무를 보장하는 업무 소통의 기술 – 누구나데이터, 류강윤 고객성장팀 팀장 세션 2. (👀 지금 읽는 중!) 경력보유여성의 삶을 통해 미리 보는 일의 미래 – 이보라,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세션 3. 변화하는 일터: 루트임팩트의 DEI 랩 이야기 – 모두의연구소, 청소년기후행동, 진저티프로젝트, 사단법인호이, 헤이그라운드 |
경력보유여성의 역량과 강점
- 연사: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이보라 교수
2023년 경기여성가족재단에서 발행한 리포트에 따르면 ‘경력보유여성’이라는 용어는 (1)유급노동 경험 또는 돌봄 경험을 보유한 여성, (2)다양한 교육과 유급노동을 경험한 여성, (3)기존의 경력단절여성을 단순히 대체한 말로 쓰입니다. 오늘 저의 발표에도 경력보유여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 세 가지를 혼재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기존 경력보유여성 관련 연구 동향을 보면 주로 경력단절의 원인이나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 개발 등의 연구가 많았습니다. 기존 연구의 한계점은 경력보유여성을 ‘배려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틀린 건 아니지만 차별적 요소가 포함돼 있죠. 실제 연구에서도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분에 비해 자존감이나 효능감이 낮았음이 확인됐으니까요.
이런 흐름에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됐고, 경력보유여성만의 경험에서 비롯한 역량과 강점이 무엇인지 연구해보고자 루트임팩트와 함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재취업한 경력보유여성 10인과의 면담을 진행했어요. 그 면담 속에서 경력보유여성이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통해 발전시킨 네 가지 역량과 두 가지 강점을 파악했습니다.
첫 번째 역량은 사람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역량입니다. 아이를 돌보거나 다른 구성원을 돌보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하고 소통하며 타협한 경험이 이런 능력을 만들었죠.
두 번째로는 관리자 역량입니다. 돌봄과 가사노동을 할 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관리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요. 이를 통해 자원관리나 아웃소싱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유연성과 적응력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다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순발력이 늘었다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은 돌봄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능력이죠. 타인을 돌보는 능력을 개발하면서 자아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역량이 있었습니다.
이런 네 가지 역량과 함께 경력보유여성만의 두 가지 강점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다양한 삶을 경험했다는 점입니다. 잠시 유급노동시장에서 멀어졌던 시기에 새로운 문화권에서 살거나 파트타임근무를 한 분들이 많았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열린 자세를 가지게 됐고, 이런 자세가 직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하죠.
두 번째는 일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급노동시장에서 잠시 떠나 있었던 경험으로 오히려 현재의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지요. 이는 큰 동기부여가 되고 책임감으로도 이어집니다.
젠더를 떠나 미래에 우리가 더 잘 살려면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직업 세계도 달라지고 있죠.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더 잘 살려면 과연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요? 유네스코(UNESCO)의 ‘교육의 미래 보고서’와 OECD의 ‘OECD 교육 2030: 미래 교육과 역량’에 따르면 기본적인 문해력 외에 유연성, 자기주도성, 비판적사고, 소통능력, 협업능력 등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미래에 필요한 능력은 경력보유여성이 육아나 돌봄, 가사노동에서 개발한 능력과 중첩한 부분이 많습니다. 더 생각해볼 문제는 전통적으로 남성은 유급노동, 여성은 돌봄노동을 담당했지만, 현대에는 이러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급노동, 돌봄노동, 가사노동의 주체를 이제는 젠더로 나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는 어떻게하면 여성이 유급노동시장에서 이탈하지 않을지, 남성이 돌봄노동에 더 참여할 수 있을지 방안을 논의해왔습니다. 이런 논의를 멈추자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젠더를 떠나 새로운 시대에 맞춰 사람들이 유급노동과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논의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겁니다.
마지막으로 ‘경력’의 의미를 확장했으면 합니다. 경력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 유급노동 중심으로 답하는데, 돌봄노동과 가사노동도 경력으로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자 도널드 수퍼(Donald Super)에 따르면 경력은 ‘살아가면서 수행하는 9가지 역할이 생애에 걸쳐 자아내는 무늬’라고 정의합니다. 부모로서 역할, 자녀로서 역할, 시민으로서 역할, 여가인으로서 역할…. 다양한 역할을 생애에 걸쳐 경험하고 이것이 다 경력이라고요. 이 경력이라는 개념이 현재 사회에서 유급노동시장에만 한정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만들어내고요.
경력은 직업적인 경험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역할과 경험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청년들의 휴학이나 휴직기간도 모두 경력일 수 있죠. 이런 고민을 모두가 한다면 우리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