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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돌봄의 가치를 재정의하다

2024 Care Forum

2024년 12월 04일
루트임팩트 DEI 이니셔티브 선종헌 팀장

유엔여성기구 성평등 센터의 초대를 받아 태국 방콕에서 열린 2024 아시아태평양 케어 포럼(Asia-Pacific Care Forum, 이하 케어 포럼)에 참석하였습니다. 2024년 10월 22일부터 3일간 한국,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 19개 국의 200여명의 정부, 시민사회, 노동조합, 투자자, 기업인, 돌봄 분야 창업가들과 만나며 “돌봄”의 의미와 우리가 해결할 과제들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루트임팩트의 모두의숲 어린이집 사례를 세계에 소개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 후기를 공유합니다.


“왜 모든 시각자료가 보라색일까?”

케어 포럼의 브로셔부터 발표자료, 현수막까지 – 모든 곳에서 보라색이 눈에 띄었습니다. 포럼 참석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바로 돌봄 경제를 “Purple Economy(퍼플 이코노미)”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참고).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경제 영역에 접목한 이 명명은, 돌봄이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가치임을 드러냅니다. GDP로는 드러낼 수 없었던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더 공정하고 포용적인 경제를 만들자는 제안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 Transformcare

케어 포럼이 주문하는 액션은 #transformcare 였습니다. 돌봄을 개인의 허드렛일로 보는 시선을 돌려 온전한 일(decent work)로 인정하고 사회적인 인정과 지지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고찰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았고, 이는 돌봄 노동의 불균형한 부담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고령화, 남아시아의 청년 인구 증가 등 지역별로 상이한 인구 구조 변화는 돌봄 수요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포럼에서 다수의 연사들은 돌봄이 더 이상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사례를 공유한 발표자는 돌봄은 단수가 아닌 복수형(los cuidados)이라 설명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돌봄이 단일한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childcare, elderly care, healthcare 등)와 차원(정치, 리더십, 정책결정 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돌봄의 변환(transform)이 단순히 서비스 제공 방식의 변화가 아닌,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돌봄 “경제”의 중요성

돌봄을 “경제”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에 대한 주문 안에는, 돌봄 경제가 ‘친환경’ 이라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럼에서 공유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돌봄 부문에 대한 투자는 건설 부문 대비 3배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30%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돌봄 분야의 일자리는 자동화 가능성이 낮아 지속가능한 고용을 창출할 수 있고, 환경 영향이 적은 특성 덕에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핵심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각국을 대표하는 연사들은 돌봄과 관련된 투자 현황을 공유하며, 이 “경제”의 중요성에 대한 의견을 모았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1억 달러를 투자하여 케어 섹터의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전세계 GDP의 9%에 해당하는 11조 달러 규모의 케어 경제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전했습니다. 한국 여성가족부에서도 아이돌봄서비스를 소개하며 아이돌보미들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인증 시스템 및 적정 임금 수준 확보를 위한 노력과 성과를 공유하였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통가에서 노인돌봄을 위해 1,15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케어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2025년에는 쿡 아일랜드,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바누아투에서 아동돌봄 기술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케어(돌봄)를 위해 케어(개입)할 것

이번 포럼에서는 돌봄과 경제발전의 교차점에 있는 핵심 이슈들이 논의되었습니다. 인구구조 변화가 돌봄에 미치는 영향, 돌봄 분야 일자리 창출, 기후변화가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미치는 영향, 혁신적인 돌봄 서비스 제공 모델과 재원 조달 방안, 돌봄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강화, 돌봄 분야의 전문성 강화와 기술 개발들에 대한 폭넓은 대화와 주장들이 이어졌습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이번 포럼에서 ‘아시아 태평양 돌봄 전환 투자 이니셔티브(Transform Care Investment Initiative Asia-Pacific, TCII-AP)’를 발표했습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2035년까지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최소 1억 명의 여성과 소녀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 둘째, 돌봄 경제에서 1억 2,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셋째,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을 20억 시간 이상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닌,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위한 실천 과제도 함께 제시되었습니다. 우선 사회 규범의 변화(social norm change)가 여러 차례 촉구되었습니다. 돌봄이 여성만의 책임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남성과 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며, 이 변화가 가정, 직장, 그리고 지역사회 전반에서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정부, 민간 부문, 시민사회의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반복되었습니다. 특히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통한 돌봄 인프라 구축과 서비스 제공에 대한 촉구가 이어지며, ‘여성 역량강화와 포용적 성장 및 발전을 위한 돌봄경제 투자 확대에 관한 아세안 정상들의 선언(ASEAN Leaders Call for Increased Investment in Care Economy to Empower Women and Boost Inclusive Growth and Development)’의 주요 내용 중 일부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GDP를 넘어선 새로운 측정 지표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돌봄에 대한 시간 사용 데이터를 관리하여 무급 돌봄 노동의 가치를 경제 지표에 반영하고, 기업의 돌봄 친화도나 젠더 감수성을 측정 및 관리하여 포용성 지표를 개발해 가며, 금융 서비스나 주요 의사 결정에 대한 여성의 접근성 등을 지표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돌봄의 가치를 재측정하고 각종 투자와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증명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습니다.

글로벌 케어 연합을 비롯한 다양한 파트너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이번 케어 포럼은, 40개 이상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기관들이 새롭게 연합의 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특히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 30주년을 앞두고 개최되면서 ‘미래를 위한 협약’과 연계되어 여성의 경제적 역량강화, 돌봄 시스템, 지속가능한 발전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돌봄의 가치 인정과 책임 분담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확인하며, 루트임팩트가 꿈꾸는 포용적 일터에 대한 그림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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