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경험을 다른 지역에서도 이어가려면?
루트임팩트는 지난 14년 가까이 성수동에서 체인지메이커들이 모이고, 연결되고, 성장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시간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은 함께 성장할 동료와 소속될 수 있는 생태계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 이러한 장면은 어느 한 조직이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주체가 서로를 신뢰하며 쌓은 밀도에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배움은 우리에게 질문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누려온 이 기회는 왜 이토록 수도권에 몰려 있는가. 이 질문을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 주체가 함께 문제를 푸는 구조적 협력을 실험해 온 루트임팩트는, 올해 그 다음 걸음으로 지역을 향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파고들려는 것은, 지역에 좋은 청년 일자리가 왜 이토록 드문가라는 문제입니다.
왜 이 문제일까요. 지역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인구, 산업, 교육, 돌봄이 한꺼번에 얽혀 있는 가장 복합적인 의제이고, 그 매듭의 한가운데에 청년의 ‘일’이 있습니다. 일은 소득이면서 동시에 동료이고, 성장의 경로이고, 한 곳에 머무를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루트임팩트가 가장 오래 다뤄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창립 이래 줄곧 청년 체인지메이커가 좋은 동료와 좋은 일을 만나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인재를 잇고, 자선 자본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을 지역에 이어주는 일을 넘어, 지역이라는 큰 문제를 푸는 핵심 매듭으로서 ‘좋은 일자리’를 다루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역에 답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수동에서 쌓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지역이 이미 가진 강점과 자산이 더 잘 발휘되도록 함께 돕는 협력자가 되려 합니다.
그동안에도 비수도권을 향한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지역 청년의 성장을 돕는 AI 커리어 스쿨을 운영했고, 지방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지역 난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대안을 나누는 실천 지식 플랫폼 지방특별시포럼과 지역 기반 청년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 이음 펠로우십을 지원하며 지역의 여러 주체와 문제의식을 나눴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앞서의 질문이 씨앗처럼 자랐습니다.
물론 무엇이 맞는 접근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좋은 사업이 이렇게 많이 반복되어 왔는데도 문제가 제자리라면, 개별 사업을 하나 더 얹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최근 발행한 연구 보고서 『판을 바꾸는 협력』의 표현을 빌리면,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문제를 그 자리에 붙들어두는 조건을 바꿔야 하고, 그 일은 어떤 조직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일자리, 주거, 교육, 관계, 자금의 흐름, 그리고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통념까지 얽혀 있는 이 문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판을 정확히 읽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무엇이 이 문제를 제자리에 붙들어두는지, 누가 어디서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 어떤 자원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판을 읽고, 배우고, 연결하는 일부터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는 이미 오래 이 문제와 씨름해 온 분들이 있습니다. 떠났거나 남았거나 돌아온 청년들, 그들과 이웃으로 살아온 지역 주민들,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기업과 창업가들, 현장을 지켜온 중간지원조직과 활동가들, 정책과 행정으로 고민해 온 지자체와 공공기관, 그리고 이 문제에 자원을 연결해 온 재단과 투자자들. 이분들의 경험과 문헌, 데이터를 붙여가며 이 문제의 구조를 그린 지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루트임팩트는 여러 주체가 함께 움직이도록 협력의 판을 여는 역할을 하려 합니다.
여러 파트너와 함께 크고 작은 자리를 열며, 지역과 청년, 일자리라는 키워드에서 각자의 조각을 들고 계신 분들과 만나고 싶어 이 첫 글을 씁니다. 함께할 수 있는 일이든, 나눠주실 이야기든, 이어주실 연결이든 좋습니다. 앞으로 마련될 자리마다 언제든 함께해 주시고, 이 문제를 다루며 얻는 학습과 경험도 꾸준히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