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감사하게 만드는 내 일
내일의 내:일
일잘러 엄마의 경쟁력, “육아 중에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업무역량 ‘소프트 스킬’이죠”
내일의 내:일 13. 현재를 감사하게 만드는 내 일…라이프점프·루트임팩트 공동기획
조미현 공공공간 경영지원 부팀장
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있다고 치부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Intro
라이프점프와 루트임팩트의 공동기획 시리즈인 내일의 내 일, 열세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사람과 환경이 공존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실천하는 소셜벤처 ‘공공공간’의 살림을 담당하는 조미현 님이다. 공공공간의 일이 지속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이모저모까지 두루 살피는 미현님의 일 이야기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나 들어보았다.
-미현님은 7년 정도 일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셨잖아요. 엄마로 지낸 시간은 어떠셨어요?
“제가 취직을 빨리 한 편이라 출산 전에도 이런 저런 사람도 많이 겪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육아는 정말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이더라고요. 인내심과 책임감은 물론 공감 능력, 변화 적응력, 순간 상황 판단력 등 무수히 많은 역량들이 매일 새롭게 업그레이드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학부모회나 입주자 모임 같은 곳에서 생각치 못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요.
다만 그런 성장과 별개로 저 스스로가 육아와 가사에 소질과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죠. 너무 보람있는 시간인 건 맞지만 제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계속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어요.
저는 임팩트커리어 W를 통해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프로그램 과정 중에 알게 되었던 ‘MaaM(Maternity as a Master)’ 에 공감하는데요, 이곳은 이탈리아의 기업교육회사인데, 육아 중에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소프트스킬’을 보다 체계적인 조직 개발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게 커리큘럼을 개발해 비즈니스 역량으로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죠.“
-그래서 육아도 그렇게 (회사)일처럼 하셨던 거에요?
“한달 살기 프로젝트 말씀하시는 거죠? (웃음) 맞아요, 아이들과 해외에서 잠시 지내게 된 적이 있었는데 저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닌 만큼 이 시간을 더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어요. 기간과 예산에 대한 계획은 물론, 어떤 컨셉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남편과 상의했었죠. 비록 일터에서의 경험은 아니지만, 이런 순간들을 잘 정리했던 것이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저 낯설기만 했을 것 같은데, 잘 적응했나요?
“처음부터 일하는 엄마의 모습에 익숙했다면, 더 많은 시간을 본인들과 같이 보내주길 바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저희 아이들에게는 저의 모습이 새롭고 신나는 쪽이었던 것 같아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에 “엄마도 회사에 다녔었어?”라고 물은 적이 있었어요. 아마 제가 너를 낳으면서 그만 두게 되었다고 대답했던 모양이에요. 아이 탓을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어린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는지 “이제 엄마 다시 회사 다녀도 돼!”라고 종종 말하곤 했어요.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 일년 쯤 되었을 때, 마침 회사에 행사가 있어 아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좋아하더라고요. 엄마의 회사는 이런 모습이고, 엄마는 이 자리에서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설명해줬어요. 그 때, 엄마에게도 집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첫 월급을 타던 날,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생색도 내보고,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엄마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왔는지’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이 무뎌졌지만 여기에서 오는 안정감도 있고, 아이들 역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 얼마 전에는 둘째 아이가 퇴근하는 저를 반기며 “엄마 힘들었지, 배고프지?” 하며 먼저 간식을 챙겨주던걸요. (웃음)“
-미현님은 유연근무를 통해 일터와 가정에서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감사한다면 그것이 워라밸 아닌가 생각해요. 회사와 약속한 시간 동안 제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고,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시작되는 아이들의 방과 후 일상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희 회사만 해도 저를 제외하면, 자녀가 있는 분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유연근무제도 그 자체보다는 서로의 상황을 소통하고 배려하는 조직의 문화가 더 중요하겠죠. 그런데 서로의 상황이 되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돌이켜보면, 엄마가 되기 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단 한번도 임산부의 존재를 눈여겨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엄마가 되고 난 후에야, ‘저 사람은 지금 어떤 부분이 힘들겠구나!’ 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회사에서 저의 상황을 당장 이해 못 한다 해도 “오늘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하고, 이건 내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제가 속으로만 고민하지 않고 표현했을 때, 회사에서도 해결책을 찾으려고 함께 고민할 수 있고요. 저희 구성원들도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지금의 저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자발적으로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겠죠.“
-어느새 공공공간에서 일하신 지 2년 남짓 됐습니다. 요즘 미현님의 일은 어떠신가요?
“예전에 이력서를 쓸 때마다 ‘그저 그런 일이 아닌 함께 나누며 즐길 수 있는 보람찬 일을 찾고 싶다.’라는 문구를 넣었어요. 그리고 요즘 회사가 하는 일을 보며, 비로소 어떤 부분에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예술, 창작과는 워낙 거리가 먼 분야에서 일을 했던 터라, 지금의 일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아요. 조직의 부속품으로 일하기보다는, 제가 성장하면 회사도 더 성장할 수 있고, 그럼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란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각자의 삶을 꾸려갈 때, 보다 행복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 재무, 회계, 인사, 총무 등 경영관리 영역에 있는 모든 일들을 다루는 것인데요, 스스로 세무사나 회계사와 같은 전문가는 아니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반복적인 업무에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로 인해 대표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만큼 의미있는 일이 되는 것이죠. 워낙 넓은 스펙트럼의 업무를 경험하고 있기에, 작은 규모의 조직일수록 제가 도울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것 같아요. 언젠가 공공공간이 충분히 성장하고 난 후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으로 옮겨, 지금의 경험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재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Outro
공공공간 홈페이지 속에서 미현님은 ‘조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공부도 즐겁게, 일도 즐겁게, 육아도 즐겁게 받아들이며 평범한 일상의 기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현님의 모습이야말로 구성원들에게 기분 좋은 자극이 되는 멋진 근무환경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작은 일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더 큰 변화를 꿈꾸는 체인지메이커 미현님의 새로운 꿈, ‘시스템 빌더(system builder)’로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