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Above Midtown: 영리한 비영리로, 낯선 땅에 자리 잡기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 루트임팩트의 자매사이자 미국 뉴욕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대표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Just Above Midtown: 영리한 비영리로, 낯선 땅에 자리 잡기
미국에는 약 150만 개의 비영리 조직이 있다고 한다. 2024년을 계획하는 시기가 다가온 지금, 그 많은 비영리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궁금하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150만 개 중 아마도 조직 규모나 예산, 연혁 등을 따져보면 하위 10%쯤 속하는 초소형 조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후원자의 신뢰와 꾸준한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된 약 200명의 커뮤니티 중심 지역 창업가들의 활약으로 상대적으로 빨리 뉴욕시 창업 생태계에 잘 자리 잡았다.
‘잘’ 잡은 그 자리는 누구도 선뜻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던, 필요하지만 낯선 자리를 의미한다. 커뮤니타스는 새로운 그 자리에 들어간 첫 조직이 되는 모험을 했다. 그 결과 2023년 커뮤니타스는 민(민간)·관(공공)·학(학계)의 교차지점에 포지셔닝할 수 있었다. 뉴욕주의 지원을 받고, 유사한 일을 하는 민간 재단 지원 혹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주변 대학들과 협업하며 저소득층 하이퍼로컬 커뮤니티 출신의 창업가를 지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삼각관계의 중심에는 민·관·학 파트너 기관과 공유하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휴머니티향 커뮤니티를, 한 민간 파트너는 테크향 문제해결을, 다른 기관은 연구를 맡도록 역할이 자연스레 나눠지고 있다.
50년 전, 경계가 없는 커뮤니티를 만든 잼(JAM) (Just Above Midtown)
1974년 뉴욕시 맨해튼 미드타운, 50 West 57가에 잼(JAM, Just Above Midtown)이라는 이름의 갤러리가 생겼다. 린다 굿 브라이언트(Linda Goode Bryant)라는 흑인 여성 작가의 주도로, 주목받지 못한 유색인종 작가들의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1980년에는 트라이베카 178-80 Franklin Street로, 이어 1984년에는 소호 503 Broadway로 옮겨 Just Above Midtown/Downtown이라는 다소 모순적 타이틀로 공간을 1986년까지 운영했다. 이 정도면 이사가 잦은 편인데, 건물주 성화 혹은 월세를 내지 못하고 버티다 쫓겨난 경우일 것이다.
잼(JAM)에서 일하던 직원 호레이스 브로킹턴(Horace Brockington)은 “린다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예술계 밖의 사람들도 모두 함께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어냈다 (Linda created a forum and a dialogue among artists, but also with people outside the art world)”고 회고한다. 흑인 및 여성 작가들에게 잼(JAM)은 인종과 경계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공간 이상의 공간이었다. 잼(JAM)의 큐레이터였던 캐슬린 곤자로프(Kathleen Goncharov)는 “잼(JAM))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이었고, 노하우만 있다면 뭐든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나란히 80대에 들어선 중요한 흑인 작가인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나 센가 넨구디(Senga Nengudi)도 경력 초반에 잼(JAM)을 통해 협업자를 찾고, 퍼포먼스나 설치, 미디어 작품을 만들어냈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 스튜디오 뮤지엄 인 할렘과 함께 한, 뉴욕의 현대미술관 모마(MoMA)의 잼(JAM) 전시는 중요한 작가를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나로선 한쪽 큰 벽에 가득 채운 ‘독촉장 (FINAL NOTICE)’라는 빨간 도장이 찍힌, 각종 밀린 청구서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백인 작가 위주인 기존 체계에 순응하지 않았고 또 경계가 없었기에 좋은 작가를 발굴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속가능성을 놓쳐버린 운영 방식이 아쉽다. 어쩌면 이들은 COO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고 같이 간 일행에게 농을 건넸다.
다른 벽에 이런 말도 적혀 있었다. “공과금은 밀렸어도, 함께 한 커뮤니티는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잼(JAM)의 자원봉사자이자 작가 재닛 올리비아 헨리는 “내 전시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잼(JAM)이라는 공간의 존재 자체가 기뻤다.”라고 했다. 열린 공간이 활력을 갖고 커뮤니티와 함께 이 수준의 소속감을 가지려면, 그 기운이 오래 지속되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밀린 공과금 청구서는 50년이 지난 지금 모마의 벽을 채운 작품으로, 몇몇 작가의 기억으로 더 아름답게 남아있지 않은가? 그 전시를 본 누군가는 또 다른 분야에서 비슷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기도 말이다.
30년 전, 시카고 폭염 당시, 사망자를 6배 줄인 커뮤니티의 힘
사회학자 에릭 클리넨버그는 8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1995년 시카고 폭염 당시, 시카고 내 론데일 남부 (South Lawndale)과 론데일 북부 (North Lawndale)가 사회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이웃동네임에도 불구하고 6배 이상의 사망자 차이가 난 사실에 집중했다. 북부 론데일 지역은 사회적 연대의 부족으로 대부분 문과 창문이 닫힌 채, 친구나 가족, 커뮤니티 그룹 혹은 공무원과 교류가 없는 채 홀로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적은 사망자를 낸 남부 론데일은 건강한 사회적 활동, 커뮤니티 조직, 낮은 범죄율로 서로 연결된 삶을 살아온 터라, 사회적 연대감 내지는 강한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회적 혹은 커뮤니티 소속감은 서로를 기꺼이 돕고자 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이는 정책이나 리더십의 변화로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오랜 세월 함께 만들어 온 지역 주민들의 사회적 약속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정치권은 불안한 민심 내지는 표심을 공략해야 하므로, 커뮤니티 단위의 지역 기관에는 관심이 없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이나 자본 시장 모두, 사회적 혹은 커뮤니티의 연대감을 이끌어 내는 것에 불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불완전한 상황에서 체계적 변화를 만들고자 하면, ‘사회적 혹은 커뮤니티의 문제’를 고쳐야 하는 (cure) 원인이 아니라 어루만져야 하는 (care) 대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조직의 이기적 관심과 필요성에 의한 파트너 커뮤니티
에리히 프롬은 사회는 개인적 원자(atom)의 합이라고 하면서, “그 작은 입자들이 서로 흩어지기도 하고, 이기적 관심과 상호활용 필요성에 의해 뭉치기도 한다 (little particles estranged from each other but held together by selfish interests and by the necessity to make use of each other”고 했다.
가까이 일하는 파트너 조직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떠나도” 이 일은 계속돼야 하지 않겠냐. 그 필요성에 의해 내년엔 보다 적극적으로 뭉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물론, 각자 흩어져 있는 조직의 이기심은 존중하면서 말이다. 그 이기심은 커뮤니타스는 주로 브롱스, 할렘을 거점으로 한 지역 커뮤니티, 파트너 조직은 이슈를 중심으로 한 테크 중심 스타트업 육성 등이 될 것이다. 또한, 뉴욕시가 아닌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에서 유사한 미션으로 일하지만, 임팩트 투자 등 다른 조직적 스킬을 가진 조직과 적극적 협업이 예정돼 있다. 커뮤니타스 이기적으로 둘 다 필요하고, 또한 타조직의 이기심을 존중하면서 말이다.
만에 하나 잼(JAM)처럼 경영을 원활하게 하지 못해서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나 우리 파트너 조직들이 문을 닫거나 현재의 프로그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잼(JAM)이 중요한 흑인 작가를 남겼듯, 하이퍼로컬 커뮤니티향 창업가의 영향력은 지역에 남길 바란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기술적 자산은 남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커뮤니타스는 동료 기반(Peer-driven), 파이프라인 파트너십 기반(Pipeline Partnership-driven), 성과 기반(Evidence-driven)을 세 가지 전략축으로 재정립하여 본 생태계에 필요한 자산을 마련하고 또 보존하며 확대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필요성에 대응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문제가 있는 시스템은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영리하고 책임 있게 바꾸어야 한다. 작은 비영리 특히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직접 일하는 곳은 그런 큰 그림과 책임을 갖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모순이지만 바꾸고자 하는 시스템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그 시스템에 직접 들어가고 다른 시스템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조직이 제대로 경영하지 않은 결과는 생각보다 크다. 예전 2018년 잘 경영하는 비영리에 1달러를 쓰면 사회적 비용을 16달러 줄일 수 있다는 유엔/월드뱅크 보고서가 있었다. 만일 잼(JAM)이 살아남았다면 그래서 인종 간 커뮤니티를 자연스레 통합해 내고, 그 영향력을 존경받는 작가의 눈을 통해서 퍼뜨렸다면 50년 후 지금, 세상이 어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까? 그 고민을 우리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어서 하고 있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루트임팩트 자매사로서 2018년 미국에서 출발했다. 미국 뉴욕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성 및 BIPOC(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 주로 백인 인종을 제외한 유색 인종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로 구성된 포용적이고 공정한 지역 경제를 조성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3월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오픈했으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활동소식은 웹사이트 및 블로그, 뉴스레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필자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대표 (Communitas America Executive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