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 왜 비영리 조직인가
CP1 프로젝트

기후 비영리 조직들의 체계적 성장과 자립을 지원하는 CP1(Climate Philanthropy 1) 프로젝트가 힘찬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CP1은 선정 조직들이 지속가능한 조직 구조를 갖추고, 전략적 의사결정과 임팩트 측정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며, 장기적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자금과 맞춤형 역량 개발을 지원합니다.
폭염과 폭우, 폭설에 이르기까지 위기를 넘어 기후 재난을 겪고 있는 지금, 기후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게 된 배경과 CP1이 그리는 청사진에 대해 두 편의 글을 통해 전합니다.
‘오늘의 화석상’이라는 불명예
몇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 전에 없던 집중 폭우와 그로 인한 수해 소식이 연일 뉴스를 통해 전달됩니다. 고온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동반되며, 대규모 산불 피해가 해마다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진행된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극한 기후 현상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적 움직임에 발맞춰 우리나라는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했고, 이후 파리협정 이행과 2050 탄소중립 선언,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등 일련의 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4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기간 한국은 기후변화대응지수 비산유국 최하위, ‘오늘의 화석상’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부족하고,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되었으며, 사회적 합의 형성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정책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 방향을 크게 선회하며 목표가 조정되거나, 기존에 수립된 정책도 올바른 추진력을 얻지 못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기후 비영리 조직,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문제 해결자
기후 위기는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사회적 구조가 얽힌 복합 문제입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과 장기적 실행력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후 비영리 조직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정부 정책 목표 상향, 법제화 촉진, 정책 이행 감시, 시민 참여 확산, 과학적 근거 제공 등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 연결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글로벌에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약 1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독일 기후 비영리조직 ‘자연보호연합(NABU)’은 정부와 환경 보호를 함께 논의하는 공식 기관으로 지정되어 공익적 견해가 정책에 반영되도록 힘쓰는 등 민간-공공 거버넌스 모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의 벗 영국(Friends of the Earth UK)’은 20만 명이 참여한 캠페인을 통해 2008년 기후변화법 제정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정부의 기후 계획이 목표 달성에 미흡할 경우 소송을 통해 이행을 강제하는 등 법적 수단을 통해 정책 이행의 책임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처럼 기후 비영리 조직는 기후 관련 정책의 목표 상향을 견인하고, 정부가 정책을 이행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변동 속에서도 일관된 기후 정책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후 비영리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
한국의 기후 비영리 조직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조직이 제한된 인력과 재정으로 운영되며, 단기 프로젝트 중심의 활동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개별 조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 부족은 기후 정책의 연속성 확보, 전문 인력 양성, 장기적 전략 수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기후 정책 속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조직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기후 비영리 조직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갖출 때, 비로소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지하고 정책과 현장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단기 프로젝트 중심의 지원 구조로는 조직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나 장기 전략 수립에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 자체의 역량 강화에 투자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어느 한 주체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정책과 제도를 통해, 기업은 기술 혁신과 사업 모델 전환을 통해, 시민사회는 사회적 합의 형성과 실행력 확보를 통해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기후 비영리 조직은 사회 전체의 기후 인식을 높이고, 정책의 일관성을 견인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들이 더 강해질 때, 한국의 기후 대응 전체가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CP1은 바로 이런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의 길을 찾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