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다양성 인터뷰

손짓으로 비트를 전하는 금손댄서

매거진 루트임팩트

2021년 04월 26일
루트임팩트

이번 달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기업 내 구성원의 문화, 인종, 젠더 등 다양성의 정도가 기업 이익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살펴봤는데요, 새삼 ‘다양성’을 몇 가지 종류로 특정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성이란 하나의 단어에 가려져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도요. 
2016년 수어가 한국의 공식 언어로 지정됐다는 점, 혹시 알고 계신가요? 여기 낯설지만 가까운 언어, 수어로 아름다운 예술을 풀어내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매거진 루트임팩트는 핸드스피크 아티스트 지연님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헤이그라운드 1층 미디어월에는 지연님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요, 볼 때마다 저 ‘힙한 청년’은 누구일까 생각했었습니다. 이 멋진 아티스트가 걸어온 길, 바라는 미래에 대한 인터뷰를 소개해 드립니다.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핸드스피크의 아티스트 김지연입니다. 핸드스피크는 농인*의 문화 예술 활동을 위한 예비 사회적기업 이에요. 예술에 열정이 넘치는 약 20명의 농예술가들이 함께 문화 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활동하는 분야는 극단, 댄스팀, 영화팀, 디자인팀, 수어 노래와 핸디랩 등이 있고요. 저는 극단에서 단장과 연출을 겸하고 있으며, 수어로 랩을 하는 핸디랩도 하고 있어요.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을 ‘농인’이라 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을 ‘청인’이라 합니다.

어떻게 핸드스피크 아티스트가 되셨나요? 

저는 학창시절 장래희망에 항상 ‘댄서’라고 썼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춤을 좋아했어요. 선배 희화 언니가 농인 댄스동아리를 만들었고, 저도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청각장애인 댄서라는 걸 알면, 사회자나 관객들은 ‘놀랍다’ 혹은 ‘음악이 어떻게 들리냐’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어요. 제게 더 충격이었던 건 농인의 반응이었습니다. 농인에게는 제 공연이 비장애인 공연과 큰 차이가 없었던 거예요. 즉 ‘농문화’를 표현할 수 있는 특색이 없었던 거죠. 스스로 저를 돌아보아도 개성 없는 댄서로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나만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이를 계기로 아티스트로서 더 다양한 일에 도전하게 됐죠. 수어 뮤지컬 ‘미세먼지’ 연출을 맡게 되면서 활동 영역이 넓어졌고, 더 많은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일을 진행하다 보니 개인이 아닌 기업(단체)으로서 활동할 필요성을 느껴 ‘핸드스피크’라는 아름다운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청인의 입장에서는 음악이 들려야 그 음악에 맞춰 춤이 나온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이 들리지 않아도 몸의 움직임 자체를 좋아하고 계속 댄서를 꿈꿔 왔다는 게 놀라워요. 어떻게 춤을 접하고 좋아하게 되셨는지 계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사실 청각장애인이 모두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에요. 사람마다 들리는 데시벨이 다르고 고음이나 저음, 사물의 소리, 음성에 따라 들리는 정도가 달라요. 저는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으면 거의 안 들리고,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는 조금 큰 생활음이면 잘 들을 수 있는데, 저음과 사람들의 발음을 듣기 힘들어요. 그런데 유난히 음악 비트가 잘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비트와 멜로디, 목소리가 어우러진 음악이 좋아요. 하지만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가사의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춤을 춰요. 그래서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는 ‘니키 미나즈’의 곡이 좋아서 그 곡으로 공연을 하려 했는데, 주최자가 너무 야하다, 다른 곡으로 바꿔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제야 가사를 읽어보고 깜짝 놀랐어요.(웃음) 

2019년 프랑스 세계농예술축제인 ‘Festival Clin d’Oeil 2019’에 인터뷰 기자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런 광경을 봤어요. 스피커에서 아주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도, 댄서들이 음악과 박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더라고요.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왜 꼭 음악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케이팝이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에 딱딱 맞춰 춤을 춰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인가 싶기도 해요. 

춤을 배우신 과정이 궁금해요 

중학생 때는 예술고등학교에 너무나 입학하고 싶었어요. 댄스학원도 다니고 싶었고요. 하지만 모두 듣는 데 문제가 없는 청인 중심이었습니다. 수어 통역이나 음악 박자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 등을 농인한테 맞춰서 가르쳐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밟아야 하는 과정을 밟지 않고, 오로지 독학으로 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어요. 진학하고도 어려움은 계속 있었어요. 무용과 과목 중에 4-6시간을 내리 진행하는 댄스 과목이 있는데요. 2시간은 춤 수업을 하고, 남은 시간은 교수님과의 대담으로 구성된 과목이었어요. 당시 교수님들은 현직 댄서이다 보니 춤의 세계, 공연이나 춤에 관한 지식 등 댄서로서 탐낼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주셨죠. 하지만 저는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결국 수업이 끝난 이후에나 교수님께 여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도 2-4시간 얘기한 내용을 ‘춤을 열심히 추면 돼’라는 요약적인 한마디로만 전달해주실 수 밖에 없었어요. 저는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어요. 

댄스팀에서 더 나아가 창업까지 결심하신 이유가 뭘까요? 

전문 댄스팀으로 계속 활동을 하다가 홍콩 댄스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어 간 적이 있어요. 그때 해외 예술가, 예술팀들을 보니 놀라웠어요. 주변에 스태프들이 많아서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든든한 기업 후원이 붙어 있고 관련 사업 지원도 잘 되어 있더라고요. 예술에 대한 꿈을 이뤄갈 수 있는 시스템이나 복지가 정말 잘 갖춰진 덕분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크게 변한 게 없었어요. 여전히 사회와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게 다시 한번 느껴졌고 문화 예술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구나 싶었어요. 
그때, 창업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시작할 지 막막해하던 중, 기획 경력이 많은 정윤 언니가 창업할 수 있도록 함께 발을 내디뎌주었습니다. 저는 비록 느리더라도 하나하나 배워서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 마음을 현재 대표인 정윤 언니가 잘 알아주었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주었기에 더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핸드스피크의 목표는 뭔가요? 

2016년 수어도 언어라고 법이 지정했음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수어를 낯설어 합니다. 청인 사회에서 예술가나 유튜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처럼 농인 아티스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해요.

예전에는 예술가나 게이머, 유튜버라고 자기를 소개하면 먹고 살 수는 있는지, 성공할 수 있는지 하는 걱정들과 안 좋은 시선들이 많았잖아요. 지금은 그 직업을 존경할 정도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는데, 유독 농인만은 예술을 하려고 하면 옛날 인식으로 바라보더라고요. 저는 운 좋게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지만, 주변에 청소년과 청년들이 예술을 하려다가 그만두는 상황을 많이 봤어요. 저는 농인은 소통 수단만 다를 뿐 청인과 다를게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오히려 연극이나 뮤지컬, 수어랩 등 예술에 수어를 담으면 음성이 가지지 못하는 수어(손의 움직임)만의 역동성이 생기는데, 그런 새로운 차별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그 꿈을 위해서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 있답니다. 

어떤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하는 일이 새로운 장르의 예술이잖아요. 본받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꾸준히 활동하면서 유머감각도 갖춘 이효리 같은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어요. 핸디랩 활동면에서는 활발히 활동 중이신 개성 넘치는 래퍼분들과 함께 새롭고 다양한 콜라보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인터뷰를 읽어주신 여러분, 핸드스피크에 올해 많은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기고 핸드스피크 아티스트 김지연

편집 정지혜
기획 루트임팩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

매거진 루트임팩트를 구독하여 일주일 먼저 컨텐츠를 받아보세요
매거진 루트임팩트 구독하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