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공간을 고민합니다.
체인지메이커 in 루트임팩트
‘공간’이라는 단어는 늘 나의 커리어와 함께 붙어 다녔다. 과거에 나는 공간을 만들던 사람이었고 현재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헤이그라운드 스페이스 매니저로 일하며 하나의 경험과 또 다른 하나의 경험을 매일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경험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만드는 사람
지속가능건축이란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개발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대학교 연구실에서 지속가능건축을 공부했고, 좋은 기회로 방글라데시 한 마을에 지역 공동체 회관을 설계하게 되었다. 주민과 아이들을 위한 목욕 시설 및 교실이 포함된 건물이었다. 설계를 위한 현지 방문 전, 우리는 방글라데시의 기후와 수목을 조사하였는데, 이곳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서 현지에서 다양한 소재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대나무는 친환경적인데다 다른 목재에 비해 내구성이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대나무를 지속가능한 건축 재료라 판단, 현지 주민을 만나는 자리에서 대나무를 주요 건축 재료로 제안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건축은 콘크리트”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마을 연못에서 몸을 씻다가 성범죄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는 주민들에게, 지속가능한 건축이란 충분히 튼튼하고 안전해서 오래 쓸 수있는 건물이었다. 그들에게 대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은 튼튼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재료였다. 또한 대나무를 엮어 집의 벽면과 지붕을 만들고 해마다 그 벽과 지붕을 보수하는 생활을 해온 주민들에게 대나무라는 재료는 버거운 노동을 뜻했다. 현지의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섣부른 생각이 이상과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나무처럼 친환경적이면서도 안전하고 튼튼한 재료를 다시 찾아야 했다. 그리고 지구의 삶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도 ‘지속가능한’ 건축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우선 튼튼해야 했다. 구조체는 철근 콘크리트로, 벽체는 벽돌로 만들기로 했다. 방글라데시에는 구운 벽돌 공장이 많다. 하지만 구운 벽돌 공장은 아동 노동 착취가 빈번히 일어나는 현장이기도 했다. 구운 벽돌을 대체하는 친환경적인 벽돌이 필요했다. 마침 지역 NGO 단체에서 CIEB라는 흙벽돌을 제안해주었다. 흙벽돌은 재료 중 흙의 비중이 높고,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지역 사람들의 힘으로 현지에서 충분히 제작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사업비를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고,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구운 벽돌이라는 쉬운 선택지가 있었지만, 고민을 놓지 않으니 흙벽돌이라는 비교적 친환경적인 재료를 만날 수 있었다. 큰 성과였다.
구조와 외피를 튼튼하게 만든 후 창문과 가구에 한해 대나무 디자인을 다시 제안했다. 현지 답사에서 대나무 장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대나무로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장인들의 힘을 빌린다면 대나무가 충분히 훌륭한 건축·인테리어 재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우리가 디자인한 도면을 보고 지역 장인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보태주기도 했다. 그들의 손을 거치니 한그루 대나무가 차양 역할을 겸하는 환기 창문이 되었고, 조명 없이도 환한 내부 공간을 만들어주는 광창이 되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직접 엮은 대나무 매트는 지붕 면의 열기를 막는 단열재 역할을 했다. 대나무를 활용한 창문과 매트는 디자인 측면과 에너지 사용 측면 모두에서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건물 하나가 완성되었다. 다방면의 고민을 거듭하며 하나의 건물을 완성한 첫 경험이었다. 우리가 만든 건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 최선을 다했지만, 만들기로 결정된 순간부터 많은 자원이 투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또 많은 폐기물이 발생했다. 만들어진 후에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우리가 충분히 지속가능한 건물을 만든걸까. 충분한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자원을 다시 들여다보고 사용 에너지와 폐기물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 노력해 본 경험이 나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운영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 있다. 공간은 마련된다고 끝이 아니었다. 만드는 사람이 의도했던 대로 잘 사용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공간이 사용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이 헤이그라운드에 녹아 있다. 이러한 노력에는 물리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공간 사용자들이 이를 바르게 쓸 수 있도록 행동을 유도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 자원 순환 디자인 :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오픈을 준비할 당시 건물 내 자원 순환 서비스 디자인도 함께 계획되었다. 그중 현재 운영 중인 예가 8종의 분리배출함이다. 세부 분류를 하지 않으면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쓰레기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앞서 2017년에 오픈한 성수시작점의 쓰레기 종류를 근거로 일반적인 분류 항목보다 많은 8종의 항목을 선정하였다. 하지만 분리배출함의 세분화가 분리배출을 완벽히 도와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종이가 일반 쓰레기에 버려지거나 페트와 플라스틱은 구분되지 않은 채 버려지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 생각한다. 그래서 관련된 캠페인이나 이벤트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관련 활동처로부터 캠페인 포스터를 지원 받아 공간 내 게시하기도 한다.
- 적정 기술 도입 : 우리는 눈에 보이는 폐기물은 쉽게 의식하지만, 소비하는 에너지는 쉽게 의식하지 못한다. 특히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한사람의 책임감이 더 무뎌질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적정 기술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헤이그라운드에는 물과 에너지 절약을 위해 1) 내부에 사람이 있을 때만 켜지는 센서형 화장실 조명 2)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급수가 되는 센서형 수전 3) 조명과 냉난방기 작동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시스템 4) 절수형 양변기 등이 마련되어 있다. 다른 건물에도 많이 도입되어 있는 이 기술들은 많은 사람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 소모품 관리 :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용 공간에서는 소모품 사용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헤이그라운드는 유기농 원료 및 공적 무역 원료로 만드는 손세정제를 후원받아 사용하고 있으며, 공용 키친 싱크대에는 천연 수세미를 비치하고 있다. 또한 최근 1년간 공간 내 손소독제를 곳곳에 비치해두고 있는데, 이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소독제 내용물은 반드시 리필하여 사용하고 있다.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공간을 운영하는 일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어렵다. 자원순환은 사람들의 동참이 필수적이고 좋은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한다. 다회용 비품을 사용하는 일 또한 사람들의 수고를 요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최근 공용 키친에 다회용 행주 대신 일회용 티슈를 비치하기로 결정한 일이 있다. 다수가 같은 행주를 사용하다 보니 위생상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멤버들이 행주 사용을 기피하게 되었는데, 미화 매니저님이 행주 세탁을 더 자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객 만족감’, ‘운영 효율화’, ‘환경에 미치는 영향’, ‘적정 비용’ 등 복합적 요인을 따져 공간 서비스를 결정한다. 예시와 같이 모든 순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고려 요인의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운영팀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다회용 행주에서 일회용 티슈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데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위에서 설명한 헤이그라운드의 서비스들은 이 ‘한 자리’를 포기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우리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동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환경을 위해 하지 않으면 좋을 행동을 하나 하나 언급하다 보니 결국 우리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아니냐며 함께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발을 디딘 이상, 할 수 있는 선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이그라운드에서도 완벽한 분리 배출은 여전히 어렵고, 피치 못하게 일회용 소모품을 사용할 때도 있으며, 냉난방기를 틀지 않고 동절기와 하절기를 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지기를 고민한다.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작은 시도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보다는 분명 나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어쩔 수 없다며 자조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어찌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찾은 것. 그것이 공간을 운영하는 내가 일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