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탄소 중립의 길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지난달 18일,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제2차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안’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안’을 심의, 의결했다. 2차 회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의 2018년 대비 26.3% 감축에서 40% 감축으로 상향하는 것이었다.
당장 해외에 있는 탄소 중립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 단체의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 정부의 과감한 결정에 기쁘고, 응원한다는 메시지들이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한국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아주 복잡한 반응들을 듣고 있던 나는 선뜻 ‘나도 즐겁다’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칼럼을 통해 반복해서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탄소 중립은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가 공격적으로 탄소를 배출해왔던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변화를 겪어야만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차피 고통스러울 것이라면 최대한 자원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때그때 임시 처방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의 탄소 중립을 위해 가장 뜨거운 화두인 수소 관련 정책들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으로 전기분해를 통해 추출한 ‘그린수소’를 사용해야만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6.6%에 불과하다. 또한 국토 면적이 좁고, 평지가 적으며, 인구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특성상 재생에너지 시설을 추가로 확충할 여지가 많지 않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비율이 최상위권인 국가들은 대부분 지형 조건의 영향으로 수력발전 비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노르웨이 93.4%, 브라질 64.4% 등).
그렇다면 한국에서 현재 기조대로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과 전력수급이 다소간 불안정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의 산업 구조에서 기타 선진국 대비 제조업 비율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탄소 중립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제조업 비율이 평균 16.4%인 데 비해 한국의 제조업 비율은 28.4%이며, 그나마도 전력 소비가 큰 철강,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이어서 급격한 에너지 전환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감소와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여 탄소 중립 전환에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2023년부터 EU에서 시범시행 예정이고 미국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인 탄소국경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최대 8조10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고, 미국 정부는 추가적으로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교역국과의 무역협정 조건으로 설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세계 무역 규모 7위인 무역 대국인데, 대부분의 수출품은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품목들이다. 그리고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최하위이며, 재생에너지를 위한 지형 조건은 최악인 편이다. 어떻게 보면 전 국가적인 정책 보조, 즉 저렴한 산업 전력 요금과 선진국에 비해 느슨한 환경 규제 등으로 역량을 집중해 키워온 산업들이 정부 탄소 중립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런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지속가능성 영역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필사적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2차 전지 산업에 모두가 뛰어드는 것도, 수소 추출과 수소연료 발전, 수소차 등 수소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여태까지 느슨한 환경 규제와 저렴한 화석연료로 많은 혜택을 누려왔음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명 우리가 얻었던 뭔가는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하는 것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급등하는 휘발유값에 대응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사실상의 화석연료 지원)를 발표하는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해당 칼럼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2021.11.02)에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