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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에세이

유년기의 끝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2021년 12월 07일
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창립자)

영국의 SF 작가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가 1953년 출판한 ‘유년기의 끝’이라는 책이 있다. SF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갑작스러운 외계인 ‘오버로드’의 출현으로 급속도로 진화하는 인류 문명과 그 끝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70년 전에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 풍요에 따른 정신과 문화의 권태, 그에 대응하기 위한 예술, 철학 공동체의 노력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작품들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부분은 결국 인류 문명의 종말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혹시 책을 안 본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안전하게 표현하자면, 이 작품에서 인류가 맞이하는 운명은 어떤 이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종말일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에서 표현하는 영적 부활에 가까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설 제목에 쓴 ‘유년기’란 말 그대로, 어떤 의미로든 인류는 한 단계를 넘어갔다는 점이다.

현실의 인류는 지금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게감으로 ‘한 시대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72년 지구의 미래를 연구하는 기관인 ‘로마클럽’이 MIT에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예측하는 프로젝트를 의뢰했는데, 인류가 자연에 존재하는 비재생 가용 자원을 과잉 개발하고 낭비한 끝에 21세기 중반에 정점을 찍고 쇠락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최근 국제 회계 컨설팅 업체 KPMG 연구진이 50년 전 로마클럽의 분석에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검증한 결과, 당시의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구체적으로는 2040년경 급격한 쇠퇴가 시작될 것으로 드러났다.

인류 문명의 급격한 쇠퇴가 곧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회 안정성, 복지 체계, 성장하는 산업, 우상향하는 주가 등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인류의 생존이 급급한 상황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KPMG 의 연구를 주도한 가야 헤링턴(Gaya Herrington)은 예일환경대학원의 ‘산업생태학저널’ 6월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인류가 지금과 같이 행동하면서(business as usual) 자원 남용, 과소비, 환경 파괴를 자행한다면 2100년까지 인구가 현재의 3분의 1 가까이로 줄어들고 산업, 식량 생산, 삶의 질 전반에 걸친 붕괴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이런 종말론적 방향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면서는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을 겪지 않는가. 여태껏 부모가 주던 공짜 밥과 집에서 벗어나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세금도 내고 열심히 저축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류 문명도 최근 ESG 붐처럼 환경 오염과 자원 고갈 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에 전폭 투자할 경우 아슬아슬하게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으로도 인류 문명이 계속해서 발전해 언젠가 지구라는 행성을 넘어 우주 문명으로 발전하길 원한다면 단순히 기술 투자뿐 아니라 사회적 우선순위도 조정하는 ‘안정 세계’ 시나리오로 나아가야 한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필수적인 산업 성장에 자원을 집중하고, 보건 및 교육을 강화하는 등 우리 문명을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 ‘최적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논란 많은 새로운 보고서의 저자 가야 헤링턴도 얘기했듯이, 이 예측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1970년대에는 자원 고갈이, 1990년에는 인구 폭발이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면, 이제 인류의 새로운 두려움은 환경 파괴와 지구온난화”라며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인류 문명이 실제로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예정된 파국을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류는 긴 역사를 걸쳐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한다’는 미덕을 강조해 오면서도 동시에 그 미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존재임을 증명해왔다. 감사하게도 더나은미래에서 1년 동안 지면을 내준 덕에 칼럼을 써온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인류가 철없는 ‘유년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21세기를 마지막으로 지구에서 퇴장하는 종족이 될지, 아니면 그걸 넘어 ‘성숙한 문명’으로 거듭나 지구와 오래도록 공존하는 종족이 될지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해당 칼럼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2021.12.07)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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