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스파의 나일론, 이지앤모어의 월경컵, 비투비의 성수동, 그때 그형
성수동이야기
‘성수동이야기’는 쫌아는기자들과 루트임팩트 콜라보 콘텐츠입니다. 성수동을 구성하는 임팩트 지향 조직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쫌아는기자들은 조선일보에서 주 3회 발행하는 스타트업 유료 레터입니다. 가입은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8656 클릭하세요.]
투자자는 칭송만큼이나, 욕도 참 많이 먹는 자리입니다.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투자자는 엄마보다 든든한 우군일 수도, 때론 황당했던 군대 고참보다도 질린 연이기도 합니다. 벤처캐피털의 한 대표는 “어쩔 수 없는 악역이다”라고도 하더군요.
“애는 잘 커요?” “(인터뷰) 맥주 마시면서 하실래요” “하필이면 차를 가져와서” “저흰 코로나 때문에 사무실 셧다운요” “오히려 맘 편해요” 한명씩 도착하면서 떠들썩해진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의 회의실. 3일 저녁 성수동에 4명이 모였습니다.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 소풍벤처스 한상엽 대표. 거창하게 말하자면 성수동 임팩트 클러스터 조성자들. 쫌아는기자들의 표현으론 “창업가들에게 상대적으로 가장 욕을 적게 먹을 것 같은 투자자, 또는 한번쯤 만나고 싶은, 만나면 등을 토닥토닥해줄 것 같은 투자자”입니다. 그들의 투자 이야기입니다.
임팩트스퀘어의 도현명 “한줄짜리 메시지를 만드는 작업, 2달 걸린 넷스파”
“임팩트스퀘어의 도현명입니다. 2010년 창업했어요. 소셜벤처 엑셀러라이팅하고 있고요. 특이점은 대기업 협력 모델을 많이 보고 있어요. 다행히 대기업들이 ESG한다고 사회적 가치를 내재한 비즈니스 기획을 많이 하는데, 거기에 협력자로서 소셜 벤처를 제안하는 작업을 해요.”
임팩트스퀘어가 기억하는 스타트업은?
“넷스파라는 곳요. 그물할때 넷에다가 스파할때 그 스파예요. 어망, 어구에서 나일론을 재생하는 회사고요. 재작년 처음 만났어요. 당시 대부분의 지원 사업에 탈락하고, 대부분의 IR에서 실패한 상태였어요. 분명 좋은 회사인데도요. 그 이유는 만나면 알 수 있었어요. 창업가가 너무 진지한 데다가 완벽한 기술자여서 설명할 때 좀더 자기 관점에서 말하려는 성향이 강해요. 물론 아예 (지원사업이나 IR이) 하나도 안됐다는 건 아니지만 가진 역량 대비 별로 성과가 분명치 않았다는거죠. 우리가 보기엔 충분히 좋은 회사인데 왜 이렇게 안 되는가라는.”
“같이 비전 정돈하는 작업을 했어요. 우연히 굉장히 잘 맞아떨어졌어요. 재작년 12월인가 저희가 시드투자했는데 1년도 채안돼 프리A와 시리즈A까지 갔어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어망, 어구에서 나일론을 재생하는 유일한 자동 공정을 갖고 있는 회사가 됐습니다. 액셀러레이팅이란게 마법일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짧은 기간에 수십배의 밸류에이션 평가 성장을 만들 수 있겠어요. 단지 발굴하고 같이 세공하는 작업이죠. 그래서 주의깊게 봅니다. 넷스파는 창업팀이 자신들의 사업을 뭐라고 설명해야 되는지를 몰랐어요. 본인 스스로가 본인 BM(비즈니스모델) 자체를 설명 못하는거죠.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 용어로 설명해요. 특히 엔지니어 기반의 회사들이 그런 실수들을 많이 해요. 그걸 시장의 관점에서, 사회적 관점에서 재정의해요. 좀더 명료하게요.”
엑셀러레이터는 마법을 부릴 줄 모른다?
“예. 맞아요. 넷스파는 처음엔 전세계를 곧바로 뒤흔들, 그런 사업을 말했는데, 그걸 좁히고 좁히고 명료하게 만든게 ‘어망, 어구에서 나일론만 재생’이란 겁니다. 2개월 걸렸어요. 한 줄로 만들 수 있는 메시지요. 엑셀러레이터는 없는 가치를 만드는 마법사가 아니예요. 존재하는 원석을 어떻게 가공해 반지로 할지, 목걸이로 만들지, 그리고 누구한테 팔지, 이름은 뭐라고 붙일지, 그런 작업을 돕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떤 창업가는 스스로 멋있게 깎아가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스스로 깎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죠.”
◇소풍벤처스 한상엽 대표 “텀블벅, 이지앤모어… 뼈아픈 조언의 순간들”
“소풍벤처스에서 일하는 한상엽입니다. 소풍벤처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엑셀러레이터예요. 2008년 이재웅 대표님이 설립했고요. 원래는 자기 자본만 활용해 투자하다가 재작년부터 회사를 스핀오프했어요. 한 100여 회사 투자했어요.”
소풍다운 투자를 꼽는다면요?
“동구밭이예요.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수제 비누를 만들어요. 소풍은 2016년에 투자했어요. 제가 투자업을 시작한뒤 첫번째 투자이기도 해요.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40여 분 고용하고 매출 100억 넘었어요.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건에도 비누 납품해요. 글로벌 수출도 해요. 국내에선 고급 수제 비누를 월단위로 거의 10만 개 가까이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고요. 고급 수제 비누는 작다면 작은 시장이면, 참 대단하죠. 국내 1위입니다. 첫 투자 결정했을때는 이렇게 잘 될지 몰랐어요. 그땐 BM(비즈니스모델)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단지 창업가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취지와 의지가 워낙 강력해서 그 의지를 보고 투자결정했어요. 창업자와는 투자할때 피봇 하기로 약속했죠. 비누냐 수경 재배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비누를 택했죠. 이유는 초기 비용이 덜 드니까, 비누부터 해보자고 했어요.”
“사업을 정말 잘해서 2016년 이후로는 투자를 받은 적이 없어요. 이익이 나니까요. 매출은 매년 2배씩 성장했고 올해도 성장세는 유지될 것 같고요. 동구밭이 의미있는 이유요? 물론 장애인 의무 고용제와 같은 정부 제도를 잘 활용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단 동구밭은 시장에서 제품력으로 인정받은 회사거든요. 품질이 엄청나게 뛰어난데 납기일도 잘 맞추는데다 또 대량 생산 가능한 시스템까지 갖췄죠. 직장인으로서 발달장애인의 강점은 반복 작업을 잘해요. 균질한 작업요. 올해 상반기에 투자 라운드 진행하는데 밸류는 아주 높게 나올 겁니다. 동구밭은 심지어 배당도 했어요. 이익이 많이 나서요. 사실 저희도 스타트업이 배당이란게 맞나, 갑론을박했어요. 배당한 스타트업은 처음 봐서요. 배당으로 투자금 회수한 특이한 케이스죠. 갑론을박 끝에 배당받고는 그 돈은 성동구 자활기금으로 기부했어요. 이재웅 대표님의 뜻이었죠.”
소풍에서 미디어를 빼놓을 순 없죠.
“미디어에 투자한 전통이 컸죠. 이재웅 대표님이랑 강정수 대표님이 했던 전통요. 퍼블리나 스티비 등에 투자했죠. 뉴미디어에 관심가진 배경은 명확해요. 임팩트를 얘기할때 결국 소비자 내지는 시민의 의식이나 행동을 바꾸는 훌륭한 매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레거시 미디어는 레거시대로 갈 것이고 뉴미디어는 뉴미디어대로 가야된다고 봅니다. 소풍의 색깔입니다. 퍼블리는 시리즈B 라운드도 잘 마무리했고 소풍은 일부 매각했습니다. 투자 원금을 넘는 이익 실현을 했죠.”
“앞으로 소풍의 방향을 얘기하는 포트폴리오사는 리하베스트입니다. 소풍의 지향점과 맞닿아있는 곳입니다. 리하베스트는 음식 부산물을 활용해 음식 원재료를 만듭니다. 푸드 업사이클링요. 오비맥주랑 보리 부산물을 재가공해 보리 원재료 내지는 에너지바나 그레놀라 같은 식품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소풍이 올해부터 전사적으로 집중할 영역은 기후입니다. 기후라고 해도 워낙 방대하니까, 모든 영역을 커버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래서 기후와 연결된다는 전제를 깔고 농식품, 순환경제, 신재생에너지 세가지 축을 보고 있어요. 예컨대 글로벌 단위에서 보면 탄소 배출의 3분의 1이 농식품 영역에서 배출됩니다. 전체 음식물의 3분의 1은 또 폐기됩니다. 이 이슈를 풀고 싶습니다. 그러면 탄소 문제도 해결하고 기후 문제의 해법 단초도 마련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장 기회도 있습니다.”
“기후 문제 해결에 제일 중요한 건 기술입니다. 근데 기술이 추동하는 변화가 시민의식 변화까지 와야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풍이 투자한 퍼블리와 같은 뉴미디어가 역할을 하는거죠. 예컨대 뉴닉 같은 곳에선 기후 문제를 많이 다룹니다. 뉴미디어들이 사회적 가치나 기호 이슈들에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고요.”
창업가에게 잘못된 조언하고 후회한 경험은요
“뼈 아픈 케이스 몇 개 있죠. 텀블벅요. 작년에 아이디어스에 매각했습니다. 지난달엔 아이디어스 대표님이 텀블벅 대표를 겸직하기로 했고, 락업 기간이 풀린 텀블벅 창업가는 그만뒀죠. (매각) 당시 창업가가 너무 지쳐서, 당장 내일 사업을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었어요. 힘들어하는 상황이 몇 달째 변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팔자는데 동의했죠. 매각가에 궁극적으론 소풍도 동의한 셈이죠. 돌이켜보면 그때 동의 안 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당시엔 대표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마음이 약해져 그랬긴 했지만요.”
“이지앤모어라고 가슴 아픈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월경컵 합법화시킨 스타트업이예요. 직원 5명일 때 식약처의 서류 제출하고 식약처가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맞춘거죠. 그전까지는 월경컵은 해외 직구만 가능했었어요. 이지앤모어 창업팀 대단하죠. 당시 창업자는 커머스하고 싶어 하셨어요. 저희가 반대했어요. 커머스 너무 많으니, 오히려 데이터 드리븐으로 가자고, 월경 데이터를 모아서 맞춤형으로 정보 제공하고 솔루션도 제공하는 형태로 가자고 조언했어요. 몇 년 지난 지금 보면, 왜 결과값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결과적으론 생리대나 월경용품을 생산해 배송하는 다른 회사들이 오히려 규모 있게 성장했어요. 이지앤모어는 많이 휘청했고 현재는 완전 처음부터 리빌딩 중입니다.”
반려동물 스타트업엔 투자 안한다는데 이유가 있어요?
“작년에 소풍의 한 팀당 평균 투자 금액이 1.7억이니까 큰 돈은 아니죠. 작아서 그런가, 투자 결정할 때 내부 토론이 쎈 경우가 많아요. 토론 속에서 결론을 내는데, 소풍은 방침상 반려동물에는 투자 안 해요. 이유는 전에 반려동물 사료를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내부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거든요. 동물권보다 인권이 훨씬 중요하다는 반론이 있었어요. 인권과 관련된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마당에 동물권까지 커버를 하는 게 맞냐, 다른쪽에서는 동물 반려동물은 이제 가족의 문제다, 단순한 동물로 볼 수도 없다, 동물권도 중요하다고 논쟁이 붙은 거에요. 둘 다 맞죠. 틀린 얘기도 아니고. 너무 아규가 심해서 회사 방침상 이제 반려동물 하지 말자, 이것 말고도 우리가 논의해야 될 주제들도 워낙 많고 투자할 수 있는 영역도 많으니까라고 결론내렸죠.”
치열한 논쟁의 다른 사례는요?
“여성들을 위한 성지식 플랫폼, 아루라고 하는 서비스인데요. 참고로 저는 찬성 입장이기는 했어요. 뭐냐면 여성들로 하여금 야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여성들을 위한 콘텐츠인 거예요. 여성들한테 성 지식도 갖다주고 성인용품도 여성들 관점에서 제공하고요. 한쪽 주장은 국내 성관련 플랫폼 대다수가 남성 위주고, 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성차별의 시작이다란거고, 반대 쪽에서는 이런 플랫폼이 잘 되는게 여성의 주체성이라든가 여성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대우나 격차를 줄이는 데 진짜 기여하는 게 맞냐, 그걸 입증할 데이터가 있느냐는 거죠. 우선순위라면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든가, 육아 문제를 해결한다든지 이런 방식이 훨씬 더 맞는게 아니냐는거죠.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어요.”
SM, 무신사 등 큰 기업의 등장은 성수동 문화를 바꿀까요.
“성수동은 진짜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크래프톤, SM, 무신사 같이 큰 기업들이 많이 오고 있는데 저는 그 기업들이 이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는거라고 보거든요. 이 지역을 점령하겠다, 여기를 바꾸겠다가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나 문화를 좋아하고 이것이 자신들이 지향할 문화에 가깝다 생각해 온거라고 봐요. 성수동은 테헤란로와 달리 비영리 기관들이 많아요. 영리, 비영리가 중요하지 않고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영리만 보고 움직이는 문화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을 거에요.
임대료가 비싸져도 헤이그라운드와 심오피스와 같은 공간들이 굳건히 유지를 하고 있어서 이런 앵커 플레이어들이 구심점 역할을 해주고 있죠. 든든합니다. 전 세계에 이렇게 민간 자본으로 이런 밸리는 만든 경우가 잘 없잖아요. 그래서 정부 정책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영향력도 매우 적죠. 심지어 루트임팩트 주도로 여기 기업들이 모여서 어린이집도 만들었어요.”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 “포 프로핏 포 넌 프로핏(for profit for non-profit)”
“크레비스 파트너스의 김재현입니다. 소셜 벤처라는 장르를 개척해온 몇몇 플레이어 중 하나고요. 2004년 법인을 설립했으니 18년 정도 됐습니다. 후배 기업가들한테 투자하다보니 임팩트 투자라는 장르까지 왔어요. 다행인건 투자했던 후배 창업자에게서 일부 회수된 것도 있고 그들이 재출자해 운영하는 펀드도 최근 결성했어요. 이 생태계에서 산업과 금융의 선순환 만드는 도전을 하고 있어요.”
크레비스를 정의내린다면요.
“크레비스의 뿌리인 도너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포 프로핏 포 넌 프로핏(for profit for non-profit)입니다. 비영리를 대상으로 돈 벌 수 있으면 사회 문제 많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비영리가 수혜자가 아니라, 비영리가 고객이 되도록 만들면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비영리 펀드레이징을 관리하는 솔루션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200~300개 비영리 고객들이 한 2조 원 정도의 기부금을 투명성있게 관리하고 출금하는, 요즘 용어로는 일종의 핀테크입니다. 당시(2007년, 2008년을 지칭)엔 핀테크라는 단어도 없었고, 그렇게 시작한게 크레비스파트너스입니다. 그때 그걸 함께 만든 형이 있었고, 당시 동시대의 산물이 더블유카지노이기도 해요.”
그때 그 형 이름을 물어봐도 돼요?
“저희팀은 당시에 소셜벤처하면서 워낙 힘든 여정 중이었어요. 그때 그 형이 잘 만들어준 (도너스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에 저희는 외부 투자금없이 성장할 수 있었고, 작년 기준으로 매출이 160억원 정도가 됩니다. 바로 그 기술이 범용적으론 더블유게임즈라는 조금 사행적인 게임으로까지 활용되는 걸 보면서 과학과 기술이 정말 좋은 목적으로 잘 활용될 수도 있고, (저는 카지노를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좀더 엔터테인먼트 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는데, 그 기술을 제공한 사람은 동일인이었습니다. 더블유카지노는 거래소에 상장된 매우 큰 성공 사례 중 하나니까요. 소셜벤처 초창기땐 이런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없었을때인데 먼저 찾아와서 ‘뭐든 같이 하고 싶다’고 제안했던 분들입니다. 그때 그 형은 당시 CTO 맡아준 최명진, 현재는 플레이독소프트의 대표입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나오셨죠. 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의 박종원이란 친구도 있었습니다.” (@인터뷰때 김 대표는 꼭 “명진이형, 종원아 고마워!”라고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임팩트 투자를 ‘목적이 있는 투자’라고 말합니다. 선한 투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목적이란건, 악한 사람에게도, 선한 사람에게도 모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은행들이 임팩트에 출자한다고 했을때, 그 목적이, 그러니까 은행이 진짜 원하는건 임팩트 창출이었을까 아니면 방패였을까요. 많은 곳들이 방패가 필요할 수 있겠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방패를 제공한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하냐 악하냐보단, 목적이 모두 있었다, 목표는 구체적으로 서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목적은 좀 서로 달랐을 수 있지만요.”
테라로사도 임팩트인가요?
“테라로사는 강릉에서 시작했고 강릉에는 300~400개 정도 되는 커피 로스터리가 만들어졌어요. 원래는 스페셜티 커피엔 큰 관심 없었어요. 5년 전쯤에 경남, 전남에 사회적 기업을 만나서 어떤 회사가 되고싶냐고 물었는데 3~4곳이 똑같이 테라로사 같은 기업이라고 답하는 거예요. 이후 테라로사와 르완다 프로젝트를 같이 했고 투자까지 이어졌어요. 임팩트란 뭘까요. 예를 들면 파타고니아도 그냥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점점 (임팩트가)선명해졌고, 지금은 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죠. 물론 어떤 회사는 사업계획서부터 임팩트 창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곳은 중소기업이고 지방에 위치한데다 그런 멋진 지식이나 개념도 없이, 조금씩 역사를 만들며 앞으로 나갑니다. 임팩트 투자라는 영역도 좀더 넓게 봤음 좋겠다는게 크레비스의 투자 성향입니다. 르완다에 출장 가보면, 그곳의 임팩트 투자의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5성 호텔입니다. 르완다는 워낙 유엔군까지 학살한 처참한 땅이다보니, 뭔가 하나는 중립적인 5성 호텔을 지을 필요가 있던거죠. 또하나는 커피죠. 개발도상국에 일거리를 준거죠. 사실 월드뱅크, IFC 같은 국제기구와 USAID 같은 원조기관들, 그리고 스타벅스가 어마어마한 돈을 뿌렸습니다. 조단위 돈을요. 선진국에선 호텔이나 커피는 그냥 비즈니스지만, 개도국에 직접 가보면, 왜 임팩트인지 눈에 보입니다.”
◇루트임팩트 허재형 “모두의숲과 성수동 바이브”
“루트임팩트 허재형입니다. 저희는 비영리 단체이고 투자는 진행하지 않는데요, 대신 임팩트 생태계를 만들면서 비영리 스타트업을 포함한 소셜벤처 창업가와 동료 구성원들을 지원합니다. 헤이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고요.”
헤이그라운드만의, 헤이그라운드니까, 헤이그라운드다운 사례, 하나만 꼽아주세요.
“헤이그라운드 멤버 중에 비투비라는 곳이 있어요. 사단법인이고 미혼모와 미혼부의 자립을 돕는 비영리 단체예요. 루트임팩트가 직접적으로 돕지는 않았지만(투자하지 않았다는 뜻), 루트임팩트가 만들어온, 특히 이곳 성수동의 커뮤니티와 함께 한 곳입니다. 미혼모 미혼부 문제를 돕는 많은 사회복지단체들도 있고 정부의 지원 사업도 많지만, 비투비는 좀더 앞단의 문제를 주목해 구조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해요. 강에 비유하면 상류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대표적으로 품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요. 사실은 여러 정부나 민간의 지원이 있어도, 미혼모, 미혼부 분들이 이런 정보와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상당히 낮아요. 품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줘요. 일자리라든지, 주거 안정, 아니면 생계비 지원 등 정보를 모으는거죠. 품이 존재하니까, 지원단체들은 지원 하기가 수월해졌고 또 더 많은 지원금이나 노력들을 해요. 선순환이죠.”
“서로 돕는 문화가 임팩트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이 비투비입니다. 비투비의 김윤지 대표님은 사실 처음엔 풀타임이 아니라 ,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 주변의 다른 분들이 김 대표의 뜻을 알고는 리서치를 돕거나 , 플랫폼 개발에 재능 기부하고 또 수기로 엑셀 입력하는 자원 봉사하기도 했죠 . 커뮤니티에서 정말 십시일반으로요 . 비투비가 헤이 그라운드에 입주하곤 , 협업 모델도 했고요 . 그로잉맘이라는 스타트업은 미혼모 미혼부 가정에 콘텐츠를 제공했어요 . 헤이 그라운드의 다른 입주 스타트업도 조금씩 돕고요 . 루트 임팩트가 마련한 청년 교육 프로그램에 미혼모 분들이 참여해 디지털 스킬을 배우는 방식도 있었고요 . 보석 같은 비영리 스타트업들도 많아요 .”
7~8년전, 왜 하필 성수동으로 오셨나요?
“풍수지리를 보지는 않았고요.(웃음) 임팩트스퀘어랑 2013 년쯤에 삼성동 사무실을 나눠쓰다 이사하기로 했어요. 직 원들이 2 인 1 조로 서울 시내를 보러 다녔죠 . 조건은 2 가지 였는데 저렴하면서 모두가 올 수 있게 지리적으로 열려있는 곳이었어요 . 둘 다 만족시키는 동네를 찾기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 후보지를 추려봤는데 , 옥수 약수 대학로 문래동 성수동이 있었어요 . 대학로는 이미 문화예술 색채가 잘 자리잡은 곳이었고 옥수약수는 주거지 느낌이 강했죠 . 일반적인 스타트업과 VC 가 있는 강남, 그리고 전통적인 중심가인 을지로 , 광화문 양쪽 접근성이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다닐만한 거리는 성수동이었죠 .”
“성수동엔 당시 공장이나 물류창고들이 즐비했어요. 어차피 공장 등은 교외로 이전할 수 밖에 없는 흐름이잖아요 . 사실 이게 빠지면 성수동은 자칫 슬럼화가 될 가능성이 있었어요 . 당시에는요. 그런데 성수동에 우리가 다 같이 모이면 미국의 브루클린처럼 개발이 되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실제로 요즘 성수동이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고요 .”
땅값 많이 올랐는데, 그럼 성공한 이사였네요.
“많은 분들이 (루트임팩트가 헤이그라운드의) 건물주로 오해하시는데 저희도 세입자에요.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헤이그라운드도 책임 임차 방식이고 다른 성수동 코워킹 스페이스도 비슷할 거에요. 저는 그래도 성수동만의 바이브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지켜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임팩트 지향조직 13개사가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모두의숲’ 이라는 어린이집을 만들기도 했어요. 대기업이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스타트업들이 모여 만들었죠. 유형이든 무형이든 이런 인프라는 여러 회사가 모여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어린이집은 정말 지역적으로 모여있기 때문에 가능한거예요. 그런데 또 중심을 잘 잡아주면 회사 법인이 성수동에 소재하지 않아도 디지털로 잘 연결되고 소통되니까 성수동을 중심으로 레이어를 이루면서 커뮤니티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