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 루트임팩트의 자매사이자 미국 뉴욕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대표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뉴욕과 서울은 위도 약 2도 차이가 나므로, 기후적으로 유사한 조건인 편이다. 경험상 “서울은 날씨 어때?” 안부 인사에 늘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작년부터 뉴욕의 여름은 덜 덥고 더 습해진데 반해, 서울의 여름은 더 덥고 더더 습해진 것이 이제 꽤 차이가 나는 듯하다.
올해도 뉴욕 여름은 무덥지 않아서, 미안하게도 서울의 무더위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날씨 뉴스레터 Currently – A weather service for the climate emergency가 중국의 신장 위구르가 연일 50도를 넘긴다고 알려줬을 때 적잖이 놀랐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세비야는 7월 내내 40도를 넘고, 8월에는 45도가 넘는 날이 많아지는 등 믿을 수 없는 온도와 사투를 벌이는 전 세계 도시를 보며 올해부터 지구상 인류가 ‘끓는 물속 개구리’의 시기로 들어선 건 아닐지 걱정이 든다.
불타는 마우이 (Lahaina, Maui, HI)
지난 8월 8일 발생한 하와이 마우이 섬의 불은, 100명 이상 사망, 1,000명 이상 실종이라는 지난 세기 미국 최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자연재해이다. 재난 원인 중 하나는, 행정 미숙이다. 화재 현장의 라하이나 주민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경보시스템이 화재 당일 오전조차 작동하지 않았고, 전선과 태풍이 작은 불을 화마로 키워, 경황없이 현장을 탈출하던 주민들은 물 혹은 불에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원인은 8월 13일 자 뉴욕 타임즈의 기사 <침입종 식물은 어떻게 마우이의 화재를 더 키웠을까(How Invasive Plants Caused the Maui Fires to Rage)>에서 지적한 침입종 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와이를 대표하던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이 1990년대 들어 서서히 사라졌다. 농장 자리에는 토종이 아닌 침입종 식물인 기니아/몰라시스/버펄 잔디 등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비토착 잔디(Nonnative grass)를 가축사료용으로 심었다. 현재 하와이 토지의 사분의 일을 침입종이 차지한다. 이들은 워낙 빨리 자란다. 게다가 하와이의 비와 가뭄이 반복되는 날씨는, 비가 내리면 잔디가 하루 6인치까지 자라고, 또 건기에는 바싹 마른다. 따라서 불이 나면 바싹 마른 잔디가 불을 재빠르게 번지고 커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산불(wildfire)이 자연 자원과 나아가 하와이 주민의 삶에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들, 출처: Pacific Fire Exchange의 리소스 센터의 세미나>
안타까운 점은, 이미 마우이의 지식층, 활동가, 과학자, 전문가 등에 의해 2019년, 불로 인한 피해를 경고했다는 것이다. 불이 난 라하이나(Lahaina)가 속한 웨스트 마우이는 화재가능성이 90%로, 10% 미만의 타 마우이 지역과 비교 불가하게 위험한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영어를 못하는 이들이 많고 자차가 없는 가정이 많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 주인공도 스쿠터를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Changing Climate and Wildfire in Hawai‘i: Current Observations and Future Projections,
2022년 9월 발간, 출처: Pacific Fire Exchange>
2022년 9월 발간된 Climate Change Series <Changing Climate and Wildfire in Hawai‘i: Current Observations and Future Projections> 연구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권에서 하와이 기후가 예외일 수는 없으며, 이로 인한 산불(wildfire)을 예측하고 있다.
위의 표에서 보듯, 길고 짧은 비와 가뭄이 반복되는 2X2 조합 중, 좌상단에 위치한 긴 비(12개월)와 짧은 가뭄(3개월)을 분석한 경우가 산불에 대한 위험을 가장 크게 경고한다. 아기가 엎드린 모양의 작은 섬이 마우이인데, 아이 얼굴 부분 고위험군 노란색 표시 지역이 바로 이번에 재해가 발생한 라하이나(Lahaina)이다. 2019년 하와이의 한 화재전문가(Clay Trauernicht)는 마우이 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당장 침입종 잔디를 처리하면, 불에 기름을 붓는 상황을 면할 수 있다 (The fuels — all that grass — is the one thing that we can directly change to reduce fire risk),”고 이야기한 바 있다. 지난 3년간 이 경고를 귀담아 들었다면 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까?
물에 잠긴 도시들
이 글을 마무리하던 8월 19일 토요일 아침, Currently에서 특별판의 뉴스레터가 도착했다. 허리케인 힐러리가 샌디에고 지역을 비롯한 남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 일요일/월요일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라고 한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사막 지역 그것도 정확히 건기인 지금, 캘리포니아와 네바다를 말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 오는 80년 만의 열대 저기압성 사이클론 허리케인이다. 남부 캘리포니아 평균 일 년, 데쓰밸리 등 일부 지역 이삼 년 치의 큰 비가 내릴 것을 예측하고 한다. 모쪼록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란다.
<(왼쪽)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의 Rising Tide: Visualizing the Human Costs of the Climate Crisis 전시 발표회 중 일부 사진 /
(오른쪽)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겪는, 호주 북동부 오세아니아 지역 섬나라 Kiribati의 도시 South Tarawa의 Temaiku.
© Kadir van Lohuizen / NOOR>
<IPCC의 해수면 상승 리포트 중 1900-2100 해수면 상승에 대해 기존 관행대로(왼쪽)일 때와 여러 정책이 개입한 시나리오(오른쪽)를 비교>
유엔 시스템 내의 IPCC 보고서 중 한 챕터는, 글로벌 평균 해수면은 상승을 과학적으로 확신하며, 이에 따라 해안 지역의 생태계 변화와 경제, 농업, 도시환경에 주는 임팩트를 분석한다. 그런가하면 뮤지엄 오브 더 시티 오브 뉴욕에서 <조류상승: 기후 위기가 초래하는 인적 비용 보이게 하기(Rising Tide: Visualizing the Human Costs of the Climate Crisis)> 전을 본 적이 있다. 네덜란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카디어 (Kadir van Lohuizen)가 그린랜드, 방글라데시, 키리바시, 피지, 암스테르담, 마이애미, 뉴욕 등을 기록한 사진과 비디오 작품이다.
<전시 중 비디오 작품. 키리바시와 맨해튼 및 뉴욕시 주변 지역이 해수면 상승에 얼마나 취약한지,
지역 경제 격차에 따른 기후 위기 임팩트의 차이와 함께 보여준다. (사진 촬영: 장선문)>
오세아니아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 언어로 땅과 몸은 같은 단어 te aba라고 한다. 지구의 몸인 땅이 물에 잠겨 사라져 가고 있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진은 없지만, 오션뷰 마이애미 부촌에는 럭셔리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다. 사라질 지구의 땅도, 사라질 내 몸도 관심 밖이다. 방글라데시는 일본 회사가 들어가서 해안에 고층건물을 세운다. 사라질 땅도, 몸도 상관하지 않는데, 게다가 타국의 땅이나 타국민에 대해서는 더더욱 잔인하다.
내가 이 전시에서 조금 더 놀랐던 것은, 빈부의 격차가 기후위기에 미치는 임팩트였다. 뉴욕은 허리케인 샌디로 11년 전 큰 피해를 입고, 아직도 브루클린 해안 지역 등은 복구 중이다. 당시에도 맨해튼은 상대적으로 피해 정도가 덜 했는데, 이 전시에서 타 지역에 비해 맨해튼은 해안가에 충분한 대비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빈부 격차를 반영한 기후 위기 대비 계획이 도시 및 행정지역 단위에서 절실하다.
지구 곳곳의 원주민 부족으로부터 구하는 답
올해 5월 말, 노르웨이 혹은 지구 최북단 트롬소 섬 출신의 원주민 싸미(Sámi)족 작가인 Joar Nango의 최근 비디오 및 설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다. 싸미족은 북유럽 및 일부 중앙아시아의 원주민이다. 이 부족은 노르웨이의 매서운 기후조건을 견디며 세대를 이어 생존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Joar Nango 작가는 작은 트럭에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줌 미팅을 통해 다른 싸미족 변호사/가수, 도시계획가, 교수, 정책연구자 등을 인터뷰하여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싸미족은 요이크(Yoik 혹은 Joik)라는 전통 노래를 갖고 있다. 본 작품에 싸미 족 전통모자를 쓰고 등장한 요이크 가수이자 변호사인 분이 지적하는 도시 계획에 있어 비용 책정, 행정 전문성 등의 구체적인 고민도 많이 공감했지만, 특히 아래의 마지막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 Joar Nango의 작품 중, 요이크 가수와 작가의 인터뷰 (사진 촬영: 장선문) >
“소음의 방향을 바꾸어서, 소음을 당신 작업의 일부로 만들고, 오히려 추진의 원동력으로 삼으면 어떨까? 이런 방식이 요이크 방식으로 생각하기이다. 요이크 방식으로 생각할 때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and then to turn that noise around and let that noise be a part of what you’re doing and giving you the energy to go forward… and that applies … what I used to call it: The Joik Way of Thinking, and in the joik way of thinking, the most important question is … What do we do now?)”
불타는 마우이, 물에 잠긴 도시 그리고 북유럽 원주민 싸미 족의 생존 방식을 들여다보았다. IPCC 보고서에서 내내 경고하고 있는 기후 위기를 효율적 정책 집행을 통해, 그리고 원주민의 생존의 지혜를 통해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는 나의 관심 혹은 직관이기도 하지만, IPCC 최근 보고서 Sixth Assessment Report의 18 챕터 중 18.4.3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본 챕터는 원주민의 지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며 터득한 이해, 기술, 철학이라고 명시하며 다양한 예를 들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의 섬나라와 초원의 원주민 부족에게는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대도시 내 소외/낙후 지역 커뮤니티에게는 형평성 있게 기존 사회와 어우러지는 방식을 배워서 기후위기를 함께 극복해 보면 어떨까? 원주민과 지역 커뮤니티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단위에서 살아남고자 찾아낸 솔루션을 기후위기에 적용해본다면? 기존 개발 방식과는 거꾸로 국가와 지구 단위에서 오히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보다 지혜롭게 예측하여 불확실성을 낮출 기후 위기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루트임팩트 자매사로서 2018년 미국에서 출발했다. 미국 뉴욕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성 및 BIPOC(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 주로 백인 인종을 제외한 유색 인종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로 구성된 포용적이고 공정한 지역 경제를 조성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3월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오픈했으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활동소식은 웹사이트 및 블로그, 뉴스레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필자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대표 (Communitas America Execu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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