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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생태계 인터뷰

“MZ 세대가 통일문제에 관심없다고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2023년 08월 24일
소셜임팩트뉴스 정재훈 기자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⑤

[인터뷰] 황선영 히아트 대표
군 복무 시절,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등 크고 작은 남북한 충돌 마주해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소모적 비용 해소하고 싶어 통일 문제 관심
통일도 국제개발협력의 일환..세계적인 무브먼트 일으켜 복잡한 실타래 풀고파

황선영 히아트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통일은 우리 세대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분단을 겪거나, 한 때 운동 좀 했다는 ‘학생운동권’ 출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8년생. 스스로를 MZ세대의 끝자락이라 말한 황선영 대표의 이야기다. 

‘시대적 소명’이라니.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기자가 놀란 내색을 드러내자 황선영 대표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작금의 우리 사회가 선배 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해요. 일제에 맞서 독립을 이뤄내셨고, 6.25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나라를 지키셨으며, 독재에 저항해 민주주의에 헌신하셨죠. 생각해보면 시대마다 아픔이 있었고 그것은 동시에 그 시대를 사는 세대들에게는 과제가 됐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배들은 그 과제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보다 나은 세상을 우리 후배들에게 물려주셨죠. 저는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적 소명이 왜 한반도 통일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세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하는 문제가 ‘됐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어릴 적 천진난만하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던 세대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나이가 됐는데, 마침 통일이 여전히 미완의 문제로 남아 있던 거죠.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정도는 풀어야 할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 있다고나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후배 세대에게 이 문제를 넘겨주고 싶지는 않아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8일. 한반도 통일 문제라면, 무더위 보다 더 뜨거운 황선영 히아트 대표를 만났다. 스스로 ‘말썽도 많이 부린’ 사고뭉치라고 고백한 청년이 한반도 통일에 집중하게 된 계기와 그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황선영 대표와의 일문일답. 

Q. 히아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부탁드린다. 
스토리에 기반한 세계시민예술교육을 통해 한반도 통일 이슈와 국제개발협력 문제를 ‘소프트’하게 풀어나가는 단체다. 

Q. 일단, 왜 예술교육인가.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히아트의 관점을 설명해야 한다. 히아트는 ‘통일’ 문제도 국제개발협력의 일환으로 본다. 한반도 입장에서는 당연히 당사자 문제지만, 한반도 이외의 국가에서보면 ‘북한 문제’도 결국 ‘인도적 지원’이나 ‘개발협력’의 문제 아닌가. 

사실 우리가 국제개발협력이라고 하면, 온 세계가 함께 나서서 협력하지 않나. 가령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이나 기근으로 인한 재난에 직면하면 각국에서 십시일반 마음을 보탠다. 

히아트는 한반도 통일도 그런 세계적인 무브먼트(운동)로 추진되길 바란다. 

근데 그러려면 언어가 가장 큰 문제더라. ‘언어소통 걱정없이 누구나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예술교육’을 떠올리게 됐다. 음악과 그림은 통역이 필요없다. 그만큼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반도 통일’과 ‘국제개발협력’의 필요성을 전파하기 용이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예술’이 가지는 힘이 꽤 크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예전에 라오스에서 북한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실 신기하기도 하지만, 막상 가면 마음 한 켠에서는 긴장도 된다. 식사 마지막 무렵이었다. 종업원분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무대가 어느 정도 고조될 때, 종업원이 관객석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함께 올라가셨는데,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비로서 즐기게 됐다. 서로 간의 벽을 허물게 됐다고나 할까? 나는 예술이 가진 힘을 믿는다. 

Q. 예술’교육’이면 가르치는 대상이 있을 것 아닌가? 누구를 가르치는 건가? 
탈북 2세를 포함한 탈북 청소년들과 개발도상국 아이들이다. 히아트에서는 이들을 ‘세계시민’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탈북자’ 그리고 ‘개발도상국’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가 시혜를 베풀거나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나. 히아트는 그런 시각에 정면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세계시민이라 함은 ‘세계문제에 대해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해결의지를 지녔다’는 말을 담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과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국제개발협력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예술 교육으로 풀어볼 생각이다. 

함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탈북 청소년들을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동남아시아 라오스의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탄자니아와 라오스 어린이들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 알게 된다. 지금 당장은 이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이 아이들이  또 다른 시대의 주인공이 될 때 즈음에는 지금 뿌린 싹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라오스에서 진행한 히아트의 미술교육/제공=히아트

Q. 효과가 있나? 
물론이다. 아이들 모두, 자신들의 세상을 위해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탄자니아와 라오스의 어린이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한 후, 여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개도국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다. 한 탈북 청소년은 “선생님, 제가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요”라고 고백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친구들은 아예 음악교사와 미술교사로 탄자니아와 라오스를 방문하기도 한다. 히아트가 올해로 10년이 되다보니, 처음에 만난 탈북 청소년들 중에 성인이 된 친구들이 생긴 거다. 

탄자니아와 라오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친구들에게 한반도 통일 문제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주마(Juma)라는 탄자니아 친구가 있다. 지금은 탄자니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 친구가 히아트 교육 후에 인터뷰를 했는데 “히아트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알게 됐고 통일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됐다”며 자신도 훗날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로 우리 친구들이 나중에 세계 무대에서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 목소리를 내 주고, 이런 친구들이 많아진다면 히아트가 꿈꾸는 세계적인 무브먼트도 조금씩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전은실(왼쪽) 선생님과 안수민 선생님. 전은실 선생님은 14년 여명학교(탈북민학교)에서 처음 만난 학생이다. 4년 뒤인 2018년, 선생님 자격으로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됐다. 안수민 선생님도 여명학교 출신 선생님이다. 라오스와 탄지나아 프로젝트를 모두 함께 했다고 한다/제공=히아트

Q. 한반도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반도 통일 전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건 군대에서 시작됐다. 

나는 2010년 1월 군번이다. 군 시절, 크고 작은 남북한 간의 갈등이 있었다. 천안함이 피격됐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졌다. 당연히 군생활이 힘들었다. 마음 한켠으로는 “왜 하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이런 일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우리는 언제나 긴장상태였고 갈등이 있었다. 내가 군대 오기 전에는 연평해전이 있었고, 군대를 제대한 뒤에는 목함지뢰 사건이 있었다. 시간을 앞뒤로 더 늘리면 크고 작은, 무수히 많은 갈등과 충돌이 있었다. ‘내 군생활 시절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존재해왔던 위험이었고 갈등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북한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휴가 중에도 나가면 북한의 실상이 담긴 영상과 도서 자료들을 찾아봤을 정도니. 

그 때 분단에 따른 긴장과 갈등, 그리고 여타의 경제・사회적인 비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2013년에 히아트를 만들었다. 

Q. 도와주는 사람은 많았나.
참 운이 좋았다. 처음 히아트를 만들려고 이러저리 뛰고 있을 때 지금 우리 단체의 이사를 맡고 계신 이장묵 이사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 이 분과의 인연이 참 신기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드럼을 치고 있었는데, 가까이 오셔서 “나도 드럼을 조금 배우고 싶은데, 혹시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기꺼이 시간을 내 가르쳐드렸다. 그렇게 드럼 과외 선생과 제자로 관게를 맺어가고 있을 때, 내가 히아트를 만들게 됐고 그걸 이사님이 아셨다. 이사님께서 ‘돕고 싶다’며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다. 경제적으로 엄청 부유한 분은 아니시지만, 필요할 때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놓을 준비가 된 분이었다. 덕분에 단체를 만들고, 지금 유지하는 데에도 매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Q. 여전히 임의단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기가 매우 어렵지 않나. 
그렇다. 우리나라가 비영리 생태계에 대한 지원의 파이가 크지 않다. 그런데 그 크지 않은 파이에 접근하려면 갖춰야 하는 조건(상시 구성원 수 100명 이상, 개인회비 수입 비율 등)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우리처럼 ‘스타트업’에 준하는 조직들에게는 꽤나 큰 장벽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루트임팩트와 브라이언임팩트의 비영리멤버십에 고마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영리스타트업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니까. 사무실 입주부터 단체 운영, 네트워크 확산 등 사업의 전방위에 걸쳐 도움을 주고 있다. 

Q. 비영리멤버십은 어떻게 알게 됐나. 
원래 입주사였다. 그래서 비영리멤버십 제도가 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럼 입주의 계기는?)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의 인터뷰를 봤다. 단체를 운영하면서 이래저래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허재형 대표의 인터뷰를 접했다. 당시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장의 활동가들이 느끼고 아쉬워하는 부분에 대해 너무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저분이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한번 믿어볼만 하겠다 싶어서 루트임팩트를 찾아나섰고, 다행히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하게 됐다. 

Q. 훌륭한 이사님도 만나고, 비영리멤버십 지원도 받고. 나름대로 도움을 주는 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로서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 
26살때부터 지금까지 히아트를 운영해왔는데, 사실 히아트에서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지 않는다. 히아트가 그렇게 월급을 줄 만큼 풍족한 단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한 돈은 내가 직접 벌면서 히아트를 운영해오고 있다. 그래서 힘들 때도 있다. 주변 경조사 소식들리면 ‘돈 걱정’ 할 때도 있었으니.

그래도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10년을 버텨오니 이제는 남들도 진정성에 대해 인정해 주는 것 같다.

Q. 그런 희생과 각오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실 다소 낯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건 타고나야 하는건가? 아니면 학습의 영역인가?

황선영 히아트 대표의 라오스 예술교육 활동 모습/제공=히아트

타고 나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웃음). 나도 학창시절에 말썽을 꽤나 부렸으니까. 

나는 오히려 방황의 시간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부분이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한번쯤 하지 않나? 나도 그랬다. 근데 생각을 하다보니까,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 

삐끗하면 한반도 이북 땅에 떨어져서 나 또한 모진 고난을 겪고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감사하고.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겼다면, 독재와 전쟁,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절을 겪었을텐데 그렇지 않고 안락하고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하고. 

그렇게 받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조금은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Q. 나흘 뒤에 스위스로 유학을 떠난다고 들었다. 향후 계획과 히아트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달라. 
석사과정이다. 스위스 제네바 소재, 국제개발대학원(IHEID)에서 평화와 갈등관리를 공부할 생각이다. 많이들 부러워 하시는데, 사실 내 입장에선 부담도 매우 크다. 원래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는데다가 입국 후 6개월 동안은 비자문제로 일 조차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던 공부고 평소에 갈증을 느꼈던 분야라 마음을 다 잡는 중에 있다(웃음). 

히아트는 계속된다. 내 대표임기도 아직 남았다. 본사는 당연히 서울(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을 유지하겠지만, 내가 스위스로 이동하면서 그 무대가 자연스럽게 확장한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 히아트에서 했던 일들을 유럽에서 해보고 싶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세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과제인 통일 문제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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