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출신, 10년차 비영리 IT 활동가 박용입니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⑦
[인터뷰] 박용 구구컬리지 이사장
엑셀 부터 인공지능, 챗 GPT 등 IT교육을 비영리로 진행
‘나만 아니면 돼’ 대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비전과 가치에 동의한다면 비영리단체 디지털 전환도 무료로 돕고파”
2022년 판매량 기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이 갤럭시를 개발하는 부서가 바로 삼성전자의 무선사업부(現 MX사업부)다. 갤럭시의 세계시장 전성기를 이끈 삼성전자의 핵심.
1982년생인 박용 구구컬리지 이사장은 국내 명문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학부)과 휴대폰 공학(대학원)을 전공한 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업무 적성도 잘 맞았고 대우도 좋았다. 하지만 입사 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박용 이사장은 삼성전자 대신, 비영리단체에 서 있다. 정보격차를 해소하겠다며 구구컬리지를 설립한 것이다. 박용 이사장은 IT 교육 솔루션과 강의를 진행하며 10년차 비영리 활동가로 변신했다. 회사에 남았더라면 지금쯤 글로벌 대기업의 ‘책임’으로 활약하고 있을 것을 뒤로 하고.
처음부터 비영리 활동가로 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삼성전자를 나온 것은 그저 ‘창업’을 하고 싶어서였지 다른 뜻은 없었다. 박용 이사장은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구상했고 당시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친구와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아무것도 다 하기 싫었다”는 박용 이사장. 그 때, 우연치 않게 만난 봉사활동이 그를 10년차 비영리 활동가로 이끌었다. 박용 이사장은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되레 내게 위로가 돼 줬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에서 한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에게 엑셀을 가르쳤어요. 사실, 엑셀은 제겐 ‘그냥’ 프로그램에 불과해요.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 게 없는 그런 것.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냥’ 엑셀이 아니더라고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더라고요. 내가 가진 기술과 역량이 누군가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 또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죠.”
(엑셀이 그 정도로 대단한 기술인가요?)
“하루 먹고 하루 살아야 하는 삶에서는 엑셀이 ‘그 정도’ 위력을 발휘하더라고요. 그 때 그 때 닥친 일을 해결하는 삶에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할 여력도 시간도 없잖아요. 근데 엑셀을 배워서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면 자기한테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할 수 있는 업무가 다양해지는 건 너무 당연하고요.”
“저 말고도 할 사람 많다면, 내려놓을 수 있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구구컬리지가 시작됐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구구컬리지를 시작했던 2014년은 마침 전국적으로 ‘코딩 붐’이 일 때 였다. 2014년 함께 창업했던 친구와 10명짜리 강의를 열었는데 무려 100명이 지원했다고.
넘치는 인기에 수강인원을 늘릴까도 고민했지만, “한 학생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 아래 소규모 인원 위주로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10년 동안 60번 이상의 강의를 했다. 엑셀로 시작했던 IT 강의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인공지능(AI)과 딥러닝, Chat GPT 등으로 다양해졌다.
내친김에 구구컬리지는 조금 더 욕심을 냈다. IT 강의만 할 것이 아니라 IT를 기반으로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을 늘려보자는 ‘도전적인 시도’였다. 기존에 학교와 학원 말고는 다른 선택권이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MAT라는 검정고시 학습사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MAT 프로젝트는 200개 이상의 검정고시 기출문제를 분석해 개발했다. 문제풀이 후 예상점수 및 부족한 부분을 알려줘 ‘맞춤형 학습방법’을 제공한다. 박용 이사장은 “과목마다 또는 학생마다 적합한 학습 방식이 다 다르다. 어떤 주제는 혼자 독학해서 공부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면서 “MAT는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적합한 과목에 대해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IT 교육에 ‘자원순환’을 결합해 볼 예정이다. 중고 PC를 다시 쓸만한 컴퓨터로 재활용하는 교육과정이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중고 PC들 중 쓸만한 부품들은 따로 빼 조립형 PC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단순한 봉사활동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다채로워졌다”고 말하자, 박용 이사장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시작할 당시나 지금이나 제가 활동을 유지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해요. ‘내가 아니어도 이 교육을 제공해줄 사람이 있는가’ 여부죠. 사실 엑셀 교육은 이제 지방자치단체나 학교에서 많이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 일들은 조금 내려놓기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제가 아니면 다른 친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는 제가 놓을 수가 없네요.(하하)”
“그럼 도대체 돈은 언제 버는 것이냐”고 묻자 이번에도 박용 이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저 개발자잖아요. 불러주는 곳 많고 프로젝트다 강의다 해서 돈 받고 진행하는 곳 꽤 많아요. 먹고 사는 데 문제 없습니다.(하하)”
“IT 능력자 ‘무료’로 사용하고 ‘디지털 전환’ 앞당기세요”
지난해 7월, 구구컬리지는 루트임팩트와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의 ‘비영리멤버십’ 공고를 확인하고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 들어왔다. 입주공간 제공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박용 이사장이 주목한 것은 ‘헤이그라운드’ 안에 있는 비영리단체들과의 협업이었다. 사회를 바꾸고 싶은 혁신가들과 함께 일할 생각에 많이 설레였다고. 덕분에 작년 입주 1년차지만 이미 두곳의 단체와 협업에 나섰고 성과도 확인했다. 주제는 디지털 전환이다.
“확실히 디지털 전환을 하고 난 단체들은 업무생산성이 향상되더라고요. 이유가 어디있나 보니, ‘정보 공유가 쉬워졌다’는 점에 있었어요. 우리가 작업했던 내용들이 언제든지 검색되고, 또 동시에 같이 작업하는 것이 쉬워지니까 소통이 훨씬 빨라지고 원활해지는 거죠. 프로젝트를 만들때도 금방금방 만들어지는 게 보인다니까요.”
이 과정에서 구구컬리지와 박용 이사장은 따로 비용을 받지 않는다. 따로 프리랜서로 나가서 일을 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버는 박용 이사장이지만, 비영리단체와의 협업에서는 ‘비전과 가치에 동의하는지 여부’가 우선순위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를 요청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보통 요청하실 때에는 ‘이 상태로 만들어주세요’하고 외주 주듯이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만큼 이 사업은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비전이 있는지 동의가 돼야 해요. 저희와 협업을 원하시면 최대한 빨리 컨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