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미국, 세 개의 칼날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 루트임팩트의 자매사이자 미국 뉴욕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대표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두 달간 루트임팩트와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모두가 참 바빴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 11기를 론칭, 누적 200여 명의 지역향 사업가를 둔 커뮤니티가 되어 가고 있다. 내셔널 블랙 MBA는 ESG 컨퍼런스를 열어 다양한 인종의 프로페셔널이 함께 헤이그라운드 뉴욕에 모여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또한 (칼럼 하단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달에는 커뮤니타스 10기 창업가가 참가한 ‘주거와 테크 (Housing Tech) 컨퍼런스’에서 기본 주거권의 부재와 차별이 ‘세개의 칼날’ 로서 파장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편 루트임팩트는 9월 한 주 동안 크리에이티브x성수의 컨퍼런스 필드를 주최하며 유의미하게 확대해 가는 성수동 중심의 민관 이해관계자와 함께 다양한 주제로 지속가능성과 지역 개발을 이야기했다. 그 일주일 간의 축제에 초대받은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팀은 15시간 떨어진 곳에서, 다른 모델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제해결을 고민하는 자매 조직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인종, 포용하는 커뮤니티
9월 23일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열린 컨퍼런스는 기업, 학계, 개별 사례 등 다각도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다양한 인종, 포용하는 커뮤니티’라는 제목으로 지난 5년,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지으며 직접 겪은 하이퍼로컬 커뮤니티의 사례를 공유했다.
<지난 23일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발표 자료>
본 세션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서울과 뉴욕을 모두 겪은 필자 입장에서는, 양쪽 문제가 확연히 달라 보였고, 그러므로 보여지는 솔루션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케이스 발표는 통상 성공 사례를 공유하여 배울 점을 전달하던데,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조직 최적화라는 미명하에 끊임없이 바꾸고 또 바꾸고 있는 현재진행형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사례가 주말 오후 시간을 투자한 컨퍼런스 참가자에게 필요한 정보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뉴욕시의 ‘하이퍼로컬’ 커뮤니티의 문제를 서울시의 ‘하이퍼로컬’인 성수동에서 듣는 기분이 어떨까? 양쪽 모두 메인스트림이 아니지만, 메인스트림에 영향을 줘야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양쪽의 목소리가 같이 힘을 내어 시너지가 나길 바랐다. 뿌리 깊은 인종 소외든, 세대 간 균등 기회 박탈이든, 지역 간 자원 분배 문제이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겪으며 지낸 당사자를 지역과 문제 차원에서 들여다 보고, 기업 및 학계에서 그 숨겨진 혁신성을 알아보고 동참해 주길 바란 컨퍼런스였기 때문이다.
커뮤니타스의 프로그램은 민관학계에서 우리의 숨겨진 혁신성을 조금씩 알아봐 주는 파트너와 함께 만든다. 지난 4-5년간 꾸준히 200명의 교육, 보건, 금융 등을 위해 일하는 흑인/여성 중심 지역 창업가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지역 창업가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지원을 지속한 덕에 꽤 소속감이 높은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커뮤니타스와 함께 하는 뉴욕주를 중심으로 한 관 중심 인큐베이터는 주로 소재, 제조, 농경 및 기후에 집중한다. 뉴욕시로 내려오면 관보다는 민간 중심으로 협업하고 있다. 특히 로빈후드재단의 블루릿지랩, 에드윈굴드 재단, 데이빗프라이즈 등 우리와 가까이 협업하는 몇몇 민간 재단은 우리와 유사하게 흑인/여성 중심 창업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모두 필란트로피 성격이 강하다. 지난 2-3년 간 지역 창업가를 통해 바텀업 협업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두세 기관과 2024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만들어 지역 창업가 지원을 전략적으로 체계화할 계획을 함께 만들고 있다. 또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과 포용적 기업가 정신(Inclusive Entrepreneurship) 수업을 신설하여 두 학기째 운영 중이고, 더불어 소외 낙후 지역 커뮤니티 창업가 연구를 시작했다. 2024년에는 첫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도록
필자가 커뮤니타스의 3분기 파트너 레터에도 적었듯이, 2020년 공식적으로 커뮤니타스 살림을 맡으며 다각도로 고민했던 것은, 양 자매 조직 간 유의미한 연결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이걸 하는 거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팬데믹, 블랙라이브스매터(Black lives matter), 아시안혐오범죄 등을 겪으면서 인종 및 지역 간 격차가 아픈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다양성과 포용성의 목소리는 그저 순진무구하게, 힘없게 들릴 때가 많았다. 이걸 왜 하는 거지? 의 질문은 이걸 할 수 있는 건가? 라는 자조 섞인 질문으로 확대돼 갔다.
다행히 9월 23일 성수동 컨퍼런스에서, 특히 ‘다양한 조건, 포용하는 일터 :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도록’이라는 세션을 들으면서 답을 조금은 찾았다는 느낌이 든다. 루트임팩트나 커뮤니타스 아메리카가 지향하는 사회적 혁신이라는 것은 사람 사는 이야기 같아서 깔끔하게 재단된 솔루션 제시는 어렵다. 모호한 구역이 넓을수록 솔루션을 조금씩 찾아볼 수 있는 업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들기도 한다.
무의 이사장 홍윤희 님과 재단법인 동천의 변호사 김진영 님, 장애인 교사 조합을 만드신 신명 중학교 선생님 김헌용 님, 피플라의 CEO 조은영 님이 참여했던 해당 세션은 지난 4-5년간 꼬리에 꼬리를 물던 내 의심과 질문에 힌트를 준 시간이었다.
각자의 다양성을 지닌 패널들은 현재 몸 담고 있는 영역에서 ‘최초’로 알려져 있지만 더 나아가 ‘유일’한 사례로 남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보다 많은 이들의 다양성이 존중받고 포용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제도와 규제 등 시스템에 영향을 주면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생생한 경험담이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어졌지만, 해당 분야에서 최초가 되기까지 과정을 상상해 보자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우리는 네트워크, 자본, 파이프라인 등의 창업 자원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지역 창업가들이 최초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지만, 더불어 유일함으로 남지 않도록 시스템의 변화를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다짐한 부분이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지역 창업가의 커뮤니티를 조성에 타 민관 기관 대비 노력을 더 쏟는 이유는 최초가 또 혼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자각 때문이기도 한다.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게, 최초가 혼자가 되지 않게 만드는 노력은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여 지금은 모호할지 몰라도, 나아가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지 않을까?
하나의 문제가 세 개의 칼날을 갖게 되기 전에
뉴욕으로 돌아와서 10월은 뉴욕주 엑셀러레이터 회의들과 커뮤니타스 벤처스 및 헤이그라운드 프로그램 진행으로 커뮤니타스 팀이 모두 바쁘게 보내고 있다.
<10월 19일, 커뮤니타스 벤처스 10기 Unlock NYC가 참가한 Housing Tech 회의>
지난주엔 뉴욕시 주거 문제를 데이터를 통해서 풀고 있는 지역 커뮤니티 중심 스타트업이 모인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에서 열린 <주거와 테크: 혁신과 애드보커시 (Housing Tech: Opportunities for Innovation and Advocacy>이다. 참가자 중 하나는 커뮤니타스 벤처스 10기 수상자 중 하나인 Unlock NYC로, 주거 지원 체계에 뿌리 박힌 차별을 데이터로 풀고 있다. 키워드는 데이터와 차별로 ‘주거’라는 사회문제에 내재된 문제를 데이터 및 AI로 드러내고, 주거 연관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스타트업의 솔루션을 배울 기회였다.
페어 하우징 클리닉(Fair Housing Clinic)을 운영했고, 노숙 문제 등을 통해 뉴욕 주거 문제에 1980년대부터의 법률가 커리어를 집중하신 컬럼비아 로스쿨의 매리 줄락 교수는 키노트 스피치에서 세 개의 칼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거에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세 개의 칼날을 품고 다닌다. 하나는 건물주에게,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그리고 개인의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묻지마 범죄로, 뉴욕에서는 특정인종에 대한 혐오로 가슴 아픈 사고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무고하게 피해를 입는 개인과 그 가족을 보면, 과연 문제의 진단과 분석 또 해결의 시작은 어디가 되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필자는 출근길 세 개의 미국을 만난다. 글로벌 학생들이 많은 경영대학원,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할렘의 어느 동네, 그리고 지역 혁신가 생태계가 차츰 형성되고 있는 헤이그라운드 뉴욕이 위치한 지역이다. 줌인을 하면 각자 다른 세 개의 미국이 보이고, 줌아웃을 하면 세 개의 미국의 각기 다른 문제들이 사실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2024년부터 커뮤니타스는 다른 도시의 커뮤니티를 포함하여, 그간 쌓아온 사례 데이터와 연구를 심화할 예정이다. 또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겠지만, 세 개의 미국을 반영하여 그 칼날을 조금 무디게 하고, 그런 배움이 한국의 성수동과 또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루트임팩트 자매사로서 2018년 미국에서 출발했다. 미국 뉴욕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성 및 BIPOC(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 주로 백인 인종을 제외한 유색 인종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로 구성된 포용적이고 공정한 지역 경제를 조성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3월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오픈했으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활동소식은 웹사이트 및 블로그, 뉴스레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필자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대표 (Communitas America Executive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