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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생태계 인터뷰

“농인과 난청인을 만난다면, 당황하지 말고 ‘핸드폰’을 켜세요”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2023년 11월 23일
소셜임팩트뉴스 정재훈 기자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⑨

[인터뷰]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농·난청인 대다수, 음성언어로 소통 가능..수어 몰라도 소통할 수 있어
“청각 장애인이라는 용어 대신 농·난청인 사용..장애 아닌 잠재력 주목하고파”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핸드폰 켜고 번역기 찾으시잖아요.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하하”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수화 언어(手話 言語, 이하 수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기자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다. 

“청각 장애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요. 수어를 제1 모국어로 사용하는 농인(聾人)과 한국어를 제1모국어로 사용하는 난청인(難聽人)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농인과 난청인들은 모두 ‘말(한국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핸드폰을 켜시고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시면 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44만명의 청각 장애인들 중 ‘말’로 의사소통하는 사람의 비율은 84.2%로 가장 높다. 그 다음은 입모양(구화)으로 5.9%였으며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은 3.0%였다. 실제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이보다 적은 2.8%였다. 박원진 이사 말처럼 대부분의 농인과 난청인들은 한국어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있었다. 

(대문사진)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의 박원진 상임이사/사진=정재훈 기자

14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만난 박원진 상임이사도 난청인이지만 기자와 ‘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몇번의 되묻는 과정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사실 기자는 비장애인들과 소통을 할 때에도 몇번을 다시 묻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애의 정도가 심한 농인과 난청인들에게는 반드시 보조수단, 즉 문자통역이 필요하다. 모두가 박원진 상임이사처럼 음성언어(소리)로 원활히  의사소통을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은 바로 이들 농인과 난청인들에게 ‘문자통역’ 서비스를 제공. 사회참여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 시작됐다. 

“근데 기자님, 우리 용어부터 정리하고 가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박원진 상임이사가 기자에게 “용어 정리”를 제안했다. 

“에이유디에서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용어 대신, 농인과 난청인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장애를 부정하고 감추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장애’라는 단어가 먼저 등장하면, 아무래도 그 사람이 가진 결함 또는 못하는 것을 먼저 드러나기 마련이잖아요. 그 사이 그 사람이 가진 강점과 잠재력은 저 뒤로 밀려나고요. 저희는 그게 많이 아쉬웠어요. 그리고 저희는 그걸 극복하고 싶어요.”

“듣고보니, 에이유디의 노력은 비장애인들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 같다”고 말하자, 박원진 상임이사는 이렇게 화답했다. 

“맞아요. 에이유디는 Auditory Universal Design이라는 영어의 약자에요. 한국어로 풀면 ‘청각의 유니버설 디자인’인 거죠.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게 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설계’를 의미하잖아요. 비록 저희가 농인과 난청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저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비장애인분들도 많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요.”

“빠르고 정확하게 문자로 통역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대중화하는 것..그게 바로 에이유디의 사명이죠”

박원진 상임이사가 에이유디의 문자통역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쉐어타이핑’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정재훈 기자

사회적협동조합인 에이유디의 조합원은 약 240명. 이 중 문자통역사들은 60여명이다. 문자통역사들은 한글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자들 중 가장 빠르게 동시에 가장 정확하게 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사람들로 선발했다. 한 시간에 9만 9000원이면 문자통역사가 대형 콘퍼런스와 학술 세미나(이하 기관), 심지어는 채용 면접현장(기관 및 개인)까지 출동해 농·난청인들의 소통을 돕는다. 특히 단체의 모태가 된 온라인 문자통역서비스 ‘쉐어타이핑’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손쉽게 문자통역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에이유디가 등장하기 전에는 문자통역이 이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다. 가격은 한시간에 20만원, 두 시간에 1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았고, 그마저도 문자통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속기사들이 아니었다. 속기사들로 대체하면 된다는 생각때문이었을까? 수어 통역은 필요한 경우 공공에서 지원을 해주기도 했지만, 문자통역은 정말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박원진 상임이사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해야할 일도 많지만, 적정가격에 문자통역 서비스를 공급, 문자통역 대중화에 나섰다는 점에서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2021년 12월 31일 기준, 5290개 기관에 1만 3697시간의 문자통역 서비스를 공급했다. 

“사실 농・난청인에게는 소리가 돈이에요. 보청기 사는 것, 인공와우 사는 것. 보조금 주긴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저희의 등장이 농・난청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요.”

“한 시간에 9만 9000원을 지출 하기 부담스러워 하는 농・난청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박원진 이사는 “서울의 경우에는 서울시와 협력해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서울문자통역서비스사업을 하고 있어요. 한 사람당 최대 25시간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전국에 광역자치단체가 17개인데, 그 중에 서울시만 해드리고 있다는 점이죠. 저희에게 또 우리 사회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전국적으로 문자통역 확대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죠.”

“헬렌켈러 말고 생각나는 농・난청인 있나요? 에이유디가 한번 판을 깔아보려고요”

2023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사진/제공=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상임이사는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문자통역 서비스 확대를 넘어 제2의 헬렌켈러를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꿈이다. 능력있는 농・난청인들이 자신들의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다른 장애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장애를 극복하고 사업적으로, 정치적으로나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잖아요. 근데 농・난청인들 중에서는 그런 분들을 상대적으로 찾기가 어려워요. 헬렌켈러말고 생각나는 농・난청인이 없달까요? 그래서 에이유디가 판을 한번 깔아보려고 합니다.”

“그 판이 무엇인지” 묻자, 박원진 상임이사는 ‘소통이 흐르는 밤’을 소개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소통이 흐르는 밤’은 농・난청인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인사를 나누며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다가 농・난청인들을 위한 강의가 추가했고, 내친김에 농・난청인들이 연단에서서 본인들의 경험담을 나누며 발전했다. 지금은 테드(TED)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처럼 에이유디의 대표 컨퍼런스로 발전했다. 농・난청인들이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무대가 된 셈이다. 

올해 여름부터는 ‘에이유디 펠로우십’도 시작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혁신을 창출한 사람들을 ‘펠로우’로 선발해 지원해주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소셜벤처 등 혁신생태계에서 무장애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특수교사로서 교육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는 장애인 공교육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운동가들 모두가 지원 대상이다. 

“저도 공부를 하다가 ‘농・난청인들이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렵다’ 생각해서 ‘쉐어타이핑’에 나선거거든요. 지금 어디선가 예전의 저처럼 농・난청인들을 위해 혁신의 아이디어를 짜고 프로젝트를 꾸며보려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요. 제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듯 저와 에이유디로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많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대신 직원의 성장 돕는 비영리멤버십, 참 고마워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직원들 단체사진/사진=정재훈 기자

(루트임팩트×브라이언임팩트의 비영리멤버십에 선정됐다.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 들어온 것은 언제인가?)
올해 2월에 입주했다. 

(지금까지 많은 비영리 조직들을 인터뷰하면, 비영리멤버십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저렴한 공간 비용을 꼽는다. 에이유디도 마찬가지 인가?)
그렇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공간에서 사무도 보고 컨퍼런스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인프라가 정말 다 잘 갖춰져 있지 않나? 사무실 구하는 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밖에서 행사장 하나 섭외하는 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근데 그걸 이 한 공간에서 모두 다 해결하고 있으니, 매우 만족한다. 그리고 단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하나 더 고마운 지점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우리 직원들 챙겨주는 것. 비영리멤버십에 참여하면 참여 기관 활동가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계나 인사, 임팩트 분야와 관련해 다양한 스터디 모임과 강연들을 제공한다. 
보통 그런 건 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우리처럼 작은 비영리조직들은 그런 것들을 챙겨줄 여력이 많지 않다. 그 비어있는 공백을 루트임팩트와 비영리멤버십이 메워주고 있는 거다. 우리 활동가들과 직원들도 매우 만족하고 고마워하는 부분이지만, 운영자 입장에서도 꼭,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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