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일: Givers and Takers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 루트임팩트의 자매사이자 미국 뉴욕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대표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선물 같은 일: Givers and Takers
지난달 레슬리 로코 (Lesley Lokko, 가나 출신 건축가로 뉴욕 시립 대학의 건축학교 학장 역임)가 큐레이팅한 전시회를 방문했다. ‘미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이라는 주제로 기후 변화와 소득 양극화로 인해 도시와 자연환경, 사회적인 조건, 경제적 기반 등 점점 불공정하게 희소해져만 가는 자원을 조명한 전시였다.
전시의 마지막 방에서 제임스 볼드윈의 책, <The Fire Next Time>에 등장하는 인용구를 발견했다.
“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부분은 지키고자 한다. …. 자신을 내놓지 않고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 –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스스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It is rare indeed that people give. Most people guard and keep; (…) One can give nothing whatever without giving oneself — that is to say, risking oneself. If one cannot risk oneself, then one is simply incapable of giving.”
민·관·학의 중심에서,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주는 조직(Giver)인가, 받는 조직(Taker)인가
올해를 되돌아본다. 헤이그라운드를 열고, 12월 14일부로 194명이 된 알럼나이 및 멤버의 사업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반복되는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지적해야 했고, 벽 보고 얘기하는 듯한 갑갑함도 느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쓰레기 처리를 (여전히) 고민해야 했고(5월 호 칼럼 참조), 살짝 금 간 에어컨 배관 누수로 무너진 천장 아래에서 여름을 버텨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딛고 지역 창업가를 위한 자원을 마련하려는 일관된 노력은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를 민·관·학의 중심에 두며 2024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래의 ‘스마일’ 그림이 바로 우리의 자리이자 역할이다. 또한 올해는 뉴욕시 창업 생태계의 다양한 파트너들과 2024년 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덕분일까. 알럼나이들은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해준다. CBS Morning Show는 12월에만 연달아 두 알럼나이의 인터뷰를 다루었다. 세 권의 책 저자이기도 한 ‘레이지앤릿’(Lazy &Lit)은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보여주었고, 주거 차별을 다루는 ‘언락 뉴욕시’(Unlock NYC)는 체계적으로 뉴욕시 주거 문제를 강조했다. 흑인 창업자의 인지도 제고를 위해, 2016년부터 180개가량의 팟캐스트를 지속해 온 알럼나이는 하바드 경영 대학원에서 광고를 주기로 했다. 또 다른 알럼나이는 테크스타즈(Techstars) 프로그램에 붙어서 처음으로 억대 투자를 받는다고 전한다. 둘 다 11기에서 가르치고 멘토를 하였다. 투자 소식에 함께 기뻐한 우리 변호사는 이 알럼나이가 투자받기 가장 좋은 형태로 회사 법인격을 변경하도록 법무적인 도움을 무료로 주었다. (물론 전화해서 울고 불고 불평을 쏟아내는 알럼나이도 적지 않다.)
제임스 볼드윈의 말: 주는 자와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 Giver and Risk-taker
조심스럽지만 자신 있게, 우리의 커뮤니티에서 리스크를 감당하며 오히려 주는 자(Giver)는 바로 로컬 커뮤니티에서 교육환경, 보건환경, 금융소외 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 총 11기수의 194명 커뮤니타스 벤처스 알럼나이 지역 창업가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 1. 10기 우승벤처인 캠퍼스러쉬(CampusLush)의 창업자 맥(Mac Exume)과 공동진행한 커뮤니타스 벤처스(Communitas Ventures) 11기 데모데이
가장 최근 기수인 11기 데모데이가 지난 14일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스무 명 모두가 발표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라 시간을 내어 참석해 준 분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기우였다. 발표는 서로 비슷한 아이디어 하나 없이 4분씩 밀도 있게 진행되었고 경청하고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 세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필자 또한 뉴욕시 여러 데모데이에 참석하고 있지만 한 기수에 스무 명이나 되는 창업가가 이렇게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곳은 흔치 않다고 자부한다.
1등을 한 팀은 이례적으로 두 팀이다. ‘MVP 스위머즈’(MVP Swimmers)는 보다 포용적 환경을 조성하여 새로 수영을 배우는 유색인종 인구의 진입장벽을 낮추어 익사율을 줄이고자 하는 미션이 있다. (2014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흑인 청소년 수영장 익사율은 백인보다 5배나 높다고 한다. 어릴 때 수영을 제대로 못 한 이유가 크다.) 활기찬 씨앗 ’바이브런트 씨즈’(Vibrant Seeds)는 브롱스에 모바일 농장을 조성하여 식품 안전성 및 건강 보건을 증진하는 사업이다. (브롱스에 위치한 헌츠포인트는 뉴욕 식자재의 60% 이상을 공급하지만 오히려 브롱스 지역은 식품 접근성이 떨어져 식품 사막으로 구분되며 다양한 건강, 보건 문제를 야기한다.) 덧붙여 커뮤니티 임팩트 상을 받은 ‘더플라이클럽’(The F.L.Y. Club)은 차터스쿨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조기금융교육을 브롱스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이 세 군데만 들어도 벌써 시너지가 느껴지지 않는지?
희소한 자원과 힘을 겨루는 창업가의 공통점
자연환경에서 사회적 조건에서 그리고 경제적 기반에서 희소한 자원을 가진 그룹은 창업을 하는 데 있어 출발선이 매우 뒤처져있다.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세 그룹을 관찰한 결과 긍정적인 공통점 역시 존재한다. 당장 무엇이 필요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보다 현실적으로 고민한다는 점이다. 8월호 칼럼 <기후위기,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도 적었지만 자연환경의 척박함에서 살아왔던 북유럽의 원주민 싸미 족은 그러한 부분에 잘 훈련돼 있다.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 시급한 질문 앞에, 대부분의 스타트업 피치대회는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와 같은 ‘필요성’(Necessity) 창업이 가진 한계가 보이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회’ 중심(Opportunity) 창업자처럼 피치를 하고 투자를 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의 관점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조적인 확장(Scale Up)이 필요하다. 로컬 커뮤니티에 특히 문화적으로 그 땅을 디디고 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깊이 파고드는 것(Scale Deep) 역시 중요하다. 숫자가 중요한 사업들이 있다, 그럴 때는 규모 확장(Scale Out)을 준비하는 것이다.
(출처: https://www.undp.org/uganda/blog/lessons-uganda-scaling-scaling-out-scaling-deep)
11기를 마치며 열한 번을 거친 데모데이가 지금 형태를 갖춘 것에 만족하지만, 이 창업 생태계 전반에 나 스스로 품는 의문을 고백해야겠다. 뭔가 진짜 같지 않은, 혹은 가짜인데 진짜 같아 보이는 묘한(Uncanny) 느낌이 그것이다. 이 느낌은 10억대 이상의 투자를 받는 데모데이에 가면 오히려 더 심해진다. 현실과 무대의 차이가 극명히 보인다. 그러나, 창업의 의도가 필요 기반(necessity)이든 기회 중심(opportunity)이든 무관하게 서로가 가짜가 되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혹은 감시해 주는 시스템이 바로 커뮤니티인 것 같다. 게다가 지역적 커뮤니티까지 겹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조금 더 진짜가 되는 것이다.
이 커뮤니티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는 사람’이 되는 창업가와 같이 일하는 기분, 그래서 진짜가 되는 기분은 꽤 괜찮다. 그들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받으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이 되도록 진심으로 노력하면서 말이다. 2023년 분기별로 파트너에게 보낸 편지, 1분기에는 <Heyground Harlem: Where Culture and Economy Meet>, 2분기 <The Meaning of Friends and Family>, 3분기 <Communitas: Sunny Days are Here>와 4분기 레터 <Entrepreneurship Thrives in Community>를 다시 읽어보니 커뮤니티 기반 지역 창업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집중한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에는 지난 11월 <Just Above Midtown: 영리한 비영리로, 낯선 땅에 자리 잡기>에 적었듯이, 창업가와 파트너 그리고 데이터 중심의 조직으로 지속변경해 갈 예정이다. 여러모로 큰 선물 같은 12월이다. 앞으로도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루트임팩트 자매사로서 2018년 미국에서 출발했다. 미국 뉴욕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성 및 BIPOC(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 주로 백인 인종을 제외한 유색 인종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로 구성된 포용적이고 공정한 지역 경제를 조성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3월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오픈했으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활동소식은 웹사이트 및 블로그, 뉴스레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필자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대표 (Communitas America Executive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