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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생태계 인터뷰

“제 인생의 반을 함께 한 유스보이스, 좋았던 느낌 그대로 이 시대 청소년들과 나눌래요.”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2024년 02월 02일
소셜임팩트뉴스 정진영 기자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⑭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

“제 인생의 절반을 유스보이스와 함께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으니 벌써 21년이 지났네요. 유스보이스의 첫 느낌은 청소년들에게 ‘안전한 환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예나 지금이나) ‘공부 잘 하니’, ‘꿈이 뭐니’와 같은 소리를 주로 듣는데요. 유스보이스에서는 ‘요즘 고민이 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며 나를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귀를 기울여줬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유스보이스 행사를 열심히 따라다니다가, 인턴 활동을 하다가, 정식 직원이 됐다가, 대표까지 맡았네요. 제가 좋았던 그 느낌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나누고 싶어요.”

‘청소년의 나다움을 지지하는 매니지먼트’를 슬로건으로 유스보이스(YouthVoice)를 이끄는 김재순 대표. 웃을때는 여전히 앳된 얼굴이지만 유스보이스와 함께 한 세월이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유스보이스는 지난 2002년 다음세대재단이 시작한 청소년 대상 미디어 창작지원 사업이다. 20년 가까이 다음세대재단이라는 든든한 우산 아래에서 활발하게 운영하다가 2020년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2003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 고등학생이었던 김재순 대표는 영상 촬영에 관심 많던 친구와 함께 다음세대재단 유스보이스의 ‘사전 제작 지원’ 사업에 참여했다. 영상, 그림, 웹콘텐츠 등 만들고 싶은 미디어가 있는 청소년들에게 제작비를 주고 1년 동안 지원하는 사업이다.

김재순 대표는 지원금이나 교육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유스보이스에서 만난 어른들(담당자, 멘토 등)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주고 사소한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더욱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서, 유스보이스가 다음세대재단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깊이 있게 고민했던 부분은 저 스스로 유스보이스 참가자였던 청소년 당시에 느꼈던 좋은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단어나 키워드로 어떻게 잘 설명해낼지 였어요.”

기존에 유스보이스가 많이 활용하던 표현은 ‘청소년의 목소리’ 였다.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과거 유스보이스에서 좋았던 기억을 곱씹어봤다. ‘내가 그때 나의 목소리를 냈던게 뭐지? 왜 내가 그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 하며 고민을 하다가 정리한 키워드가 ‘나다움’ 이다.

“사회가 많이 변했지만 청소년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좋은 프로그램과 공간도 많이 생기는데 왜 청소년들은 이렇게 힘들어하고 삶의 만족도가 낮을까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대부분의 교육이나 활동이 청소년의 역량을 높이는데 주력합니다. 청소년들이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만큼은 온전히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려고 해요.”

나다움에 이어 도출한 단어는 ‘매니지먼트’. 아티스트를 키우는 기획사는 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오랜 시간 역량을 쌓도록 지원한다. 청소년들의 나다움도 한 번에 발현되지는 않기 때문에 유스보이스가 지켜보고 응원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철학을 담았다. ‘청소년의 나다움을 지지하는 매니지먼트’ 라는 슬로건이 탄생한 배경이다.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가 향후 계획을 말하고 있다. / 사진=조태현 작가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가 TMI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웃고 있다. / 사진=조태현 작가

버스 타고 무작정 종점까지 가면 돈을 준다고?

유스보이스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여러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창작을 해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제작 지원 프로그램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을 ‘의도적으로’ 부여한다. 대표 사업의 이름이 TMI(Time for My Inside, 나의 내면을 위한 시간) 프로젝트인 이유가 있다.

TMI 프로젝트는 독특하게 시작한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50개의 ‘발견 미션’이 등장하고 무작위로 참가자들에게 미션이 배정된다. ‘대중교통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 ‘일몰을 1시간 동안 바라보기’ 등 어찌 보면 엉뚱한 미션들이 많다. 청소년들이 과연 이런 미션을 수행할까?

“당연히 하죠. 미션을 수행한 만큼 시급으로 계산해서 창작지원금을 주거든요. 동일 금액이 아니라 누군가는 미션을 2개 해서 10만 원을 받고 누군가는 미션을 5개 해서 25만 원을 받습니다. 제가 오리엔테이션 때 얘기해요. 혹시 여러분들이 일몰을 멍하게 바라보면 부모님이 ‘왜 딴짓하고 있어? 그러면 돈이 나오냐?’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럴땐 자신 있게 ‘돈이 나와요!’ 라고 말하라고. 실제로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평소 같으면 해보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미션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수행하고, 이를 수행하는데 들이는 시간 동안 만큼은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획득한 창작지원금으로 청소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사업이 끝나면 제작한 작품을 전시하며 다른 참가자들, 멘토들과 생각을 나눈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정해진 장소와 커리큘럼에 따라 사업이 진행됐다면 저희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흐름으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경험했던 ‘사전 제작 지원’ 사업이 그래서 좋았거든요. 대신 어떻게 하면 자유로우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행을 할지 기획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세대재단에서 독립한 직후 유스보이스는 지원사업에서 많이 탈락했다. 청소년들에게 시간과 돈을 준다고 하니까 지원하는 측에서 처음에는 크게 관심 갖고 보지 않았다고 한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0명과 18명 정도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그쳤지만 참여한 청소년들의 반응은 너무 좋았다. 통상적인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드러냈다. 성과를 잘 정리하고 강조한 결과, 2023년에는 각종 지원사업에도 되고 학교에서도 먼저 연락이 와서 8개 지역 100여 명의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스보이스 구성원들이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 사진=조태현 작가
유스보이스 구성원들이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 사진=조태현 작가

학교 밖 청소년의 변화, 선생님의 눈물

오랜 세월,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을 거쳐간 청소년들이 많다 보니 다양한 에피소드가 쌓인다. 때로는 감동, 때로는 안타까움, 때로는 감사함… 모두 소중한 기억이다.

지난 2022년 고등학교 2학년 초에 자퇴를 하고 두 달 정도 후에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교 밖 청소년이 있었다. 자퇴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진 고민이나 심리적으로 어려웠던 부분, 그리고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 책을 TMI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만들었다.

“유스보이스가 본인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해보고 하고 싶은 얘기들을 마음껏 써내려가는데 다들 응원을 해주는 경험을 해본 거예요. 너무 고마웠대요. 그런데 이를 자랑하고 싶어서 옛 학교의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그 시간에 대학 갈 공부를 해야지’라는 반응을 들었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학업’이라는 중요한 미션에 집중하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반면, 지난해 1월 전시회에서 이 학생의 에세이 결과물을 보고 감동을 받아 유스보이스와 깊은 인연을 맺은 괴산 지역의 선생님도 있다.

“마침, 그때 이 학생이 직접 도슨트(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를 했어요. 관람하러 온 선생님이 현장에서 책을 보면서 대화를 하다보니 본인 학교 학생 몇 명이 떠오른거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 이후에 학교에서 나오면 선생님이 해줄게 크게 없는 그 친구들이 어른거리면서 버스 타고 내려가는 길에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한달 여 후, 그 선생님이 사업비를 마련했다며 자신의 학교에 와서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을 제공해줄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당연히 한다고 했죠. 작년 4월부터 10월까지 괴산의 학교에서 18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선생님은 소극적이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발견 미션도 열심히 하고 발표 자료도 만드는걸 보니 너무 기뻤다. 친구들 역시 “저 친구 웃는거 처음 봤다”며 즐거워했다.

그 학생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정리할 때도 집에 가지 않고 도왔다. “정리하면서 저희와 대화하는 순간들이 좋았나 봐요. 제가 그 느낌을 알거든요. 약간 고립되어 있는 느낌. 그런 학생의 마음가짐이 저희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명확하게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가 프로그램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조태현 작가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가 프로그램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조태현 작가

체계화를 통한 규모의 확장, 그리고 연결성 강화가 목표

다음세대재단에서 독립한 지 4년차.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김재순 대표는 “‘나다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TMI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유스보이스 사업의 정체성을 잡아나간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김 대표 개인적으로도 다음세대재단의 직원으로 유스보이스 일을 할 때 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체계화를 통해 운영 규모를 키우는게 목표다. 2021년과 2022년에 소규모의 청소년들을 만나다가 2023년에 갑자기 100여 명을 만나면서 그때그때 변수가 생겼을 때 일을 쳐내듯이 진행하고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의 에너지가 다소 고갈됐던게 아쉬웠다.

김 대표는 “이제 TMI 프로젝트도 3년의 경험이 쌓였으니 대표 사업부터 하나씩 체계화해나가겠다”며 “기존에 50명도 힘들게 만났다면 올해부터는 우리의 미션을 잃지 않으면서도 500명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체계를 갖춰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결성 강화는 또 다른 꿈이다. 다음세대재단 시절까지 포함하면 유스보이스의 역사는 22년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유스보이스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연령대가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게 퍼져있다.

“그동안 만났던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본인들이 유스보이스에서 찾았던 나다움의 경험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그런 사회적 연결망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플랫폼이라는걸 떠올리면 아직 거창한 목표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꼭 하고 싶어요.”

실제로 그동안 유스보이스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사회에 나온 후에 유스보이스 교육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김 대표는 “현재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에 필요시 참여를 요청하는 교육자 풀이 30여 명 있는데 그중에 유스보이스 출신이 10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당장 김재순 대표도 유스보이스 참여자 출신이고, 오래 전 유스보이스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 현재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만큼 적절한 판이 깔리면 청소년들의 삶을 고민하는 좋은 어른들의 울타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에 프렌토(friend+mento, 친구와 멘토의 합성어)라는 유스보이스의 대외 활동을 5년 정도 운영했던 경험이 있어요. 어른들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영향력도 필요하고 청소년 또래들끼리 받는 힘도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쪽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스보이스가 꿈꾸는 사회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청소년기부터 차별 없이 누구나 나다울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라며 “나답다는 건 결국 다양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다양한 삶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다.

유스보이스 TMI 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 단체사진 / 제공=유스보이스
유스보이스 TMI 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 단체사진 / 제공=유스보이스
[미니 문답]
Q. 유스보이스가 비영리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다움이라는건 순간적인 활동으로 만들어갈 수 없고 꾸준히 그들의 삶을 들여다봐주는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지원은 학교와 공공영역에서는 받기가 힘듭니다. 학교 밖 센터들도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든 1회성 사업들이 많죠.
유스보이스는 비영리이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 한 명 한 명 좀더 오랜시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리사업이나 공공영역의 접근법과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Q. 헤이그라운드 비영리 멤버십은 유스보이스가 비영리 정신을 지키며 활동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나요.
일을 하는 공간은 제 보금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보금자리는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많은, 더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헤이그라운드는 보금자리입니다. 단순히 공간만 제공해주는게 아닙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분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는 힘을 느낄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저희 내부적으로도 서로 응원하지만 주변에서 지지해주면 더 힘이 납니다. 
비영리 활동가들과 단체도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끊임 없이 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비영리 멤버십이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도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유스보이스 구성원들이 ​​​​​​​야외에서 포즈를 취했다. / 사진=조태현 작가
유스보이스 구성원들이 야외에서 포즈를 취했다. / 사진=조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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