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판도”가 던진 질문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미국 유타주에는 ‘판도(Pando)’ 라는 거대한 나무 군락이 있습니다. 5만개에 달하는 나무들이 땅 밑에서는 모두 하나의 뿌리로 이어져 있는 거대한 생태계인데요, ‘판도’라는 뜻은 라틴어로 뻗어나가는/확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번 임팩트 인사이트에서는 ‘판도’ 를 떠올리며 임팩트 생태계와 커뮤니티를 이야기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대표의 칼럼을 전합니다. 지역의 문제를 경험하고 이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려는 250명의 알럼나이 창업가와 함께 헤이그라운드 뉴욕이 안전하고 든든한 커뮤니티의 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역 사회의 치유와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향한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이야기를 지금 읽어보세요. |
2024년이 저물어간다. 12월 11일에 마무리되는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이번 창업가 기수는 뉴욕시 빈곤 지역 문제에 집중했다. ‘음식 공정(Food Justice)’ 라는 테마 아래, 브롱스 파머스 마켓부터 식료품 저장 및 접근, 영양 교육, 디지털 푸드 컨텐츠, 지속가능한 식자재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여서 협업과 성장을 도모했다. 이번에는 커뮤니티/생태계라는 넓은 개념 대신, 뾰족한 사회문제에 집중했다.
이는 상반기를 마무리하면서 뉴욕의 지원 파트너 조직들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그러한 마음은 지난 커뮤니타스의 뉴스레터 “PANDO: The Liminality of Our Ecosystem(판도, 생태계의 경계에서)”에 담겨있다. ‘판도(Pando)’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스펜 나무 숲으로, 약 5만개의 개별 줄기가 하나의 뿌리를 형성하는 106 에이커(약 428,966m2)에 이르는 거대 생태계다.
커뮤니타스 얼럼나이 창업가도 어느덧 250명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조직들이 판도처럼 연결되어 있다. 헤이그라운드 뉴욕은 생태계 파트너와 얼럼나이 창업가가 협업하는 공간이다. 에드윈 굴드 재단이나 인근 대학인 CUNY가 리더십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또 다른 생태계 파트너와 연결이 이루어지고,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씨티즌스 커미티 팀과 매일같이 지역 문제와 파트너 정보 등을 공유하는 한편, 루프탑에서 가구를 조립하고 피맥을 하며 뉴욕의 가을을 만끽하기도 한다.
뿌리와 트라우마: 커뮤니티의 고통을 이해하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창업가들의 80%는 흑인, 블랙 아프리칸으로, 이들의 주거와 사업, 고객은 대부분 뉴욕시 중간 가계소득의 절반 이하인 지역에 기반을 둔다. 우리의 모델은 창업가들이 지역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며,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덧붙여 (1) 직접 겪은 경험에 바탕하여, (2) 해당 문제에 혁신 아이디어를 내고, (3) 이를 성공시켜서, 해당(4)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일종의 4차 방정식 모델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래프가 순방향인지 역방향인지 기울기는 얼마나 될지 스스로 평가하고 끊임없이 모델 수정을 해야 한다. 대학이나 재단 지원을 받는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과 우리는 시작과 끝에 커뮤니티가 있다는 차이가 있다.
2024년은 창업 생태계의 뿌리부터 다양한 인종의 뿌리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일을 해도 새로운 것이 나오던 해였다. 공부를 해도해도, 일을 하고 또 해도 또 새로운 것이 나오던 해였다. 어린 시절, 알렉스 헤일리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쿤타 킨테의 ‘뿌리(Roots)’를 처음 접했고, 작년에는 그 뿌리에 기반한 오페라 ‘오마르(Omar)’를 관람했다. 찰스턴, 오스틴, 보스턴, 뉴올리언스, 애틀랜타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지역의 역사를 몸소 느꼈고, 할렘과 브롱스의 전시와 관련 글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제임스 볼드윈의 글을 거의 모두 읽으며 그의 문체와 통찰에 감탄했고,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저스트 머시(Just Mercy)*와 클로드 스틸의 비발디로 휘파람(Whistling Vivaldi) 같은 작품을 접하며 분노와 의문을 반복했다. 몽고메리의 로자 파크와 마틴 루터 킹이 이끈 버스 보이콧 사건도 내가 주목한 역사적 순간 중 하나였다. 헤더 맥기의 The Sum of Us는 인종차별이 사회 전반에 끼친 경제적 비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사례를 다루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올해 여름에는 조직 및 커뮤니티 운영과 관련된 미국 연방정부와 뉴욕시 인권법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우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가 비록 작은 조직이지만, 얼럼나이 커뮤니티를 강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책들을 더욱 견고히 다졌다.
여름이 끝나가던 9월 마지막 주말, 뉴욕시 몇몇 재단의 약 50명이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출장 회의 차 모였다. 앨라배마 주는 전미에서 사형이 가장 많다고 한다. 우리가 출장을 갔던 9월 마지막 주간에도 다섯 건의 사형 선고가 있었다. 몽고메리는 저스트 머시 (Just Mercy)의 작가이자 공익 변호사인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평등 정의 이니셔티브’(Equal Justice Initiative)가 지은 ‘레거시 사이트(Legacy Site)’가 세 곳이 있다. 박물관, 조각공원 그리고 추모공원이다. 블랙 아프리칸 노예 1200만명이 아틀랜틱 해를 건너 버지니아로 들어오는 배를 탔고,결국 미국으로 들어온 숫자는 900만 가량이다. 레거시 박물관은 노예제도 뿐 아니라, 테러/린칭, 격리, 감금을 겪으며 16세기부터 현재에 걸친 인종의 뿌리, 그 트라우마를 카테고리를 나누어 상세한 기록으로 풀어낸다.
추모공원에는 4,000명이 넘는 린치 피해자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특정 커뮤니티의 아픔과 취약성을 보여준다.
문득 특히 미국 공립교육에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다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 자신을 포함한 출장 동료들조차 본 레거시, 특히 린치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무지 혹은 무관심이 커뮤니티의 뿌리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작은 자극에도 커다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조지아주 메이컨(Macon)의 해리엇 튜브먼 박물관에서 만난 이야기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퓰리처상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우일연 작가의 <노예 주인 남편 아내 Master Slave Husband Wife>책에서 노예 부부 탈출의 시작점이었던 곳이 조지아주 메이컨이기도 하다) 노예 해방 이후 첫 교육자, 첫 군인, 첫 의사가 된 흑인들의 이야기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동시에 세기를 넘어 이어지는 특정 인종의 트라우마와 트리거의 깊이를 다시금 실감하게 했다.
세기에 걸친 특정 집단의 트라우마는 모두가 얽혀 있는 판도, 즉 뿌리를 취약하게 만든다. 취약해진 뿌리는 쉽게 흔들려, 작은 트리거에도 예민해진다. 이는 판도를 뒤집는 사회적 비용이 될 수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및 상하의원 선거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트라우마와 트리거, 그리고 눈앞의 경제적 빈곤이 어떤 선택과 믿음을 만드는지 볼 수 있다.
몽고메리에서 만난 뉴욕의 여러 재단들과 선거 후에 만나 커뮤니티 문제와 전략적 액션 플랜을 논의했다. 특히 연방정부 및 지역 정부와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선거 결과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의 차이와 공통점을 관찰하며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을 이긴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헤이그라운드 뉴욕이 커뮤니티의 트라우마, 트리거, 그리고 레거시를 안전하게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간이 된다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경제적 기여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커뮤니타스”라는 이름처럼 생태계의 경계에서 포지셔닝을 강화하며 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소수 즉 다양성’의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소수마저도 이 판도의 ‘뿌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헤이그라운드와 같은 공간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최근 치러진 미국의 대선 이후 “어떻게 될까? 영향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특히 ESG나 DEI를 내세운 조직들은 어젠다가 하루아침에 바뀔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그건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진정성을 갖고 그 불확실성에 대비한 이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눈 앞의 기회를 좇는다면, 4년 뒤에 우리는 그 선택을 다시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2024년은 경제, 환경, 사회, 인류의 가치관 등에 걸쳐 구체적이고 중요한 질문이 던져진 해다. 지금 우리가 가진 답이 오답이 되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할 때다.
임팩트 생태계 소식을 내 메일함에서 간편하게 받아보고 싶다면?
💌 매거진 루트임팩트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