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 당신의 삶은 몇 단계입니까?
2025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2025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DAY 3
다가온 ‘100세 시대’. 길어진 수명은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과 막막함을 안겨줍니다. 삶의 길이가 달라지면서 어린 시절 열심히 배워 직장에 들어가고, 한평생 일하다 은퇴 후 조용한 노년을 맞이하는 삶의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이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 ‘2025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올해 컨퍼런스는 ‘시대공명 : 길어지는 삶, 달라진 질문들’을 주제로, 100세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생애 설계와 돌봄의 형태를 모색하는 행사로 채워졌는데요. 첫 날에는 트루에이징이 주관한 컨퍼런스 <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 당신의 삶은 몇 단계입니까?>가 개최되었습니다. 새로운 나이 듦의 해법을 모색한 현장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2025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는 ‘시대공명 : 길어지는 삶, 달라진 질문들’이라는 주제로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는 성동구 문화창조축제 2025 크리에이티브x성수의 일환으로 개최되었습니다.
| [2025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DAY 1 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 일시: 2025.9.17(수) 14:00-17:00 장소 :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B1 브릭스 타임라인: – [오프닝]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다 – [기조강연 1] 김희경 ‘나이듦은 질문이다’ – [기조강연 2] 권민 ‘두 번째 나를 만드는 법’ – [세션 1] 삶의 지도 다시 그리기 (10X10 라이프 매트릭스 실습) – [세션 2] 교육과 관계의 재구성 – [세션 3] 미래를 위한 사회적 실험 |
[오프닝]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다


이번 컨퍼런스는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참여자들은 입장과 동시에 자신의 ‘나이’를 밝혀야 했는데요. 나이대별 추천 도서와 글귀가 담긴 책갈피를 증정하기 위한 깜짝 이벤트였죠. 이는 나이를 숫자로만 여기는 대신, 지금 내가 서 있는 삶의 단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생각해보게 하는 뜻밖의 첫인사였습니다. 행사장 한편에는 ‘교육-일-은퇴’라는 낡은 3단계 삶의 모델과의 작별을 위한 묘비도 세워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참여자들은 그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는 작은 퍼포먼스를 통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거의 삶의 방식에 보내는 작별 인사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의 환영사가 ‘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이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는 “100세,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시대, 마냥 좋으신가요?”라는 솔직한 질문을 던지며 이번 컨퍼런스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는 고령화를 저출생과 연결된 사회·경제적 ‘문제’로 보거나, ‘실버 산업’이라는 산업적 ‘기회’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 이것은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인생’이자 ‘라이프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변화는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이 된다고 믿어요. 오늘 컨퍼런스가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관점을 전환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
[기조 강연 1] 나이듦은 ‘질문’이다 – 김희경 논픽션 작가
첫 번째 기조 강연자로 무대에 선 주인공은 『이상한 정상가족』, 『에이징 솔로』의 저자이자 전 여성부 차관을 지낸 김희경 논픽션 작가였습니다. 김희경 작가는 길어진 삶 앞에서 삶의 지도도 바뀌어야한다며, 과거의 3단계 생애 모델을 ‘방이 일렬로 늘어선 집’에 비유했습니다. 교육의 방, 일의 방, 은퇴의 방을 순서대로 지나가는 선형적인 구조인 것이죠. 하지만 이제 삶이라는 집의 구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수명이 늘면서 ‘제 2의 성년기’라고 부르는 30%가 더 생겼는데요. 이 공간을 건축물의 넓은 개방 공간인 ‘아트리움(Atrium)’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집 면적의 30%를 차지하는 거대한 아트리움이 생긴다면, 그 공간은 단지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집의 다른 모든 방에 영향을 끼치고, 그 방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까지 바꾸게 될 겁니다.”
*아트리움: 고대 로마의 주택에서 실내에 설치된 중앙의 넓은 마당. (출처: 세계미술용어사전)
이 ‘아트리움’은 우리 사회에 어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질까요? 김희경 작가는 가족, 건강, 교육 영역을 짚었습니다.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는 부모-자식 등의 세대 간 자원이 대물림 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가족 양극화도 심화됩니다. 이는 가장 취약한 아이들의 삶과 건강으로 직결되죠. 이러한 시대에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타고난 가정 환경에 따라 평생 건강이 좌우될 수 있는 ‘건강수명의 격차’를 해소하는 일입니다.
교육 문제 역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김희경 작가는 ‘교육(Education)’과 ‘학습(Learning)’을 분리해야한다고 말하면서, 20대에 끝나는 정형화된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언제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평생에 걸친 ‘학습’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결론적으로 100세 시대에 삶은 상승과 하강, 수많은 진입과 출구가 있는 ‘다단계 삶의 모델’로 바뀝니다. 이 새로운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의 단계가 끝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의 등장이기도 한데요. 김희경 작가는 과도기를 스스로 건너갈 자원이 있는 사람만 장수의 혜택을 누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인류학자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의 말로 진정한 변화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남겨두어야 해요. 환경이 달라질 때 살아남기 위해, 또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변화란 내재적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거죠.” – 인류학자 Mary Catherine Bateson (Composing a further life)
첫 번째 기조 강연 후에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두 번째 환영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까지 거론되는 만큼, 행정의 영역에서도 달라진 삶의 패러다임에 맞춘 새로운 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가 이 고민에 대한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기조 강연 2] ‘두 번째 나’를 만드는 법 – 권민 엔텔러키 브랜드 편집장
환영사 후에는 권민 엔텔러키 브랜드 편집장의 두 번째 기조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막막한 질문 앞에서 그는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하면 삶이 명료해진다는 역발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권민 편집장은 이 질문의 전환이 복잡했던 삶의 의사결정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주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와 함께 청중들에게 “나이, 이름, 학력, 경력, 직장 같은 것들을 모두 빼고 자신을 소개해 보세요.”라면서 ‘유령 사지(Phantom Limb)’라는 개념을 꺼내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손가락이 잘려나갔는데도, 뇌는 여전히 그곳의 통증을 느낍니다. 그것을 ‘유령 사지’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학력, 경력, 직함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유령 사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잘려나간 과거의 정체성에 여전히 통증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명함에 빼곡히 적힌 ‘前(전)’ 직함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국내 직장인의 평균 퇴직 연령이 49.5세인 시대. 그는 직장에서 퇴직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유령 사지’의 고통, 즉 정체성의 공백에 시달리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령 사지’를 극복하고, 수많은 변수로 가득 찬 100년 인생의 지도를 그려나가야 할까요? 권민 편집장은 그 해법으로 ‘미래의 내가 되어 현재를 살아보는 것’, 즉 ‘시간 여행자’가 될 것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2035년의 ‘자기다움 학교장’입니다. 그 미래의 학교장이 지금 여기에 와서 강의를 하고 있는 셈이죠. 저는 항상 지금을 살지 않고, 2035년의 내가 되어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래야만 내가 그릴 선이 보입니다. 2035년의 학교장이 되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는 거죠.”
[세션 1] 삶의 지도 다시 그리기 (10X10 라이프 매트릭스 실습)
기조 강연이 남긴 질문들을 품은 채, 참가자들은 ‘10×10 라이프 매트릭스’ 도구로 자기 삶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워크숍 시간을 가졌습니다.
| 10×10 라이프 매트릭스 인생을 10단계의 생애 주기로 나누고, 각 단계를 10개의 웰니스 영역(신체, 지성, 정서, 재정, 사회, 환경, 디지털, 커리어, 영성, 성)으로 살펴보는 도구. 각 영역별 만족도를 평가하고, 이를 통해 삶의 균형과 개선 방향을 찾는데 활용할 수 있다. |
100여 명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애주기에 따른 여러 영역에 대한 만족도를 만족(초록), 보통(노랑), 좌절(빨강)을 의미하는 세 가지 색깔의 스티커로 한 칸 한 칸 채워나갔는데요. 수십 년 삶의 희로애락이 작은 사각형들 위에서 다채로운 색깔로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인의 기록은 곧 공동의 이야기로 확장되었습니다. 행사장에 마련된 대형 보드 매트릭스에도 스티커를 붙이면서, 다양한 개인의 삶이 한데 어우러지는 거대한 삶의 지도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번 행사에서는 20대 ‘초기 성인기’의 커리어 영역에 유독 좌절을 의미하는 빨간 스티커가 많았던 반면, 중년기로 갈수록 만족을 뜻하는 초록 스티커가 늘어나는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이를 통해 삶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션 2] 교육과 관계의 재구성
길어진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배우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두 번째 세션은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넘어 새로운 배움을 탐색하고,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이어진 패널토크는 트루에이징 이혜영 대표의 진행 아래 고승원 개발자, 김범준 소장, 김희경 작가가 함께했는데요. 고승원 개발자는 『솔로프리너(Solopreneur)의 시대』를 펴낸 작가이자,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테이*’로 키운 아빠이기도 합니다. 변화성장연구소 김범준 소장은 청소년 진로 교육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면서, 교육과 관계가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체감한 당사자입니다. 고승원 개발자, 김범준 소장, 김희경 작가가 함께한 패널 토크는 100세 시대에 필요한 교육과 관계의 가치를 논의하는 자리였어요.
*고승원 개발자님은 의도적으로 ‘홈스쿨링’ 대신 ‘홈스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홈스쿨링이라 하면 학교 교육 과정을 집에서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승원님은 아이가 해보고 싶은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삶의 의미를 강조한 ‘홈스테이’라는 단어로 설명했어요.

먼저 현재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해 우려가 화두에 올랐습니다. 고승원 작가는 미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고용하고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태도 교육임을 강조했습니다. 김범준 소장 역시 청소년 진로 교육 현장에서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이미 ‘나는 늦은 것 같다’고 말하는 학생”을 만나며 교육 시스템이 부여하는 무력감을 지적했습니다.
패널들은 이러한 교육과 성장에서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어요. 잘못을 짚어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한 명의 존재, 따뜻한 관계성의 유지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죠. 나아가, 길어진 삶 속에서 다양한 세대가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령차별(Ageism)’을 극복해야한다는 이야기도 강조되었습니다.
패널 토크는 교육과 관계가 더 이상 하나의 주체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 가정, 학교, 지역사회, 그리고 처음 만나는 어른까지. 모든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맺는 관계가 지지로 이뤄져야함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세션 3] 미래를 위한 사회적 실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다음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세 번째 세션의 주제는 바로 ‘미래를 위한 사회적 실험’이었어요. 앞서 기조 강연을 맡았던 연사들과 패널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100세 시대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과 상상을 이야기했습니다.
패널들은 먼저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만 부재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권민 편집장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역설적으로 “내가 나를 아는 지식”이 부재함을, 김희경 작가는 “결혼 외의 친밀한 관계를 지원하는 제도”와 “긍정적 노년의 롤모델”이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김범준 소장은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며 학교에 “마음 건강과 자기 돌봄을 위한 정규 교과목”이 필요함을, 고승원 개발자는 여러차례 관계의 단절을 겪게 될 100세 시대에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들은 어디서나 구할 수가 있는 시대예요. 그런데 정작 내가 나를 아는 지식과, 그걸 질문할 수 있는 관계가 없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죽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한 번도 질문 받지 않잖아요.” – 권민 편집장
“생활동반자법을 성소수자만의 문제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상호 돌봄 관계를 인정하고 국가 재정 부담도 줄이는 제도로 재논의해야 해요. 사회에 긍정적으로 참여하며 본보기가 되는 긍정적인 노인 역할 모델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 김희경 작가
“자기 돌봄’이나 ‘마음 챙김’, ‘친구와 화해하는 법’과 같은 내용을 정규 교과목으로 배운다면, 번아웃과 같은 삶의 위기를 맞았을 때 스스로 더 지혜롭고 건강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김범준 소장
“100세 시대에는 부모, 친구, 자녀, 배우자 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여러 차례 끊어질 수 있습니다. 부모를 잃은 사람에게 부모 역할을,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자식 역할을, 친구를 잃은 사람에게 친구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고승원 작가
결국 ‘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 컨퍼런스는 ‘교육-일-은퇴’라는 낡은 지도를 찢고, 예측 불가능의 긴 삶을 항해할 새 지도를 그리는 여정이었습니다. 기조 강연으로 새로운 관점의 밝히고, 워크숍과 패널 토크를 통해 새로운 항해로를 모색한 이 여정은 말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야할 때라고 말이죠. 그러나 이 지도는 결코 혼자 완성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교육의 틀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전환을 이끌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길어진 삶을 함께 담대하게 항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