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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칼럼

평가가 낯선 조직이 성장의 언어를 찾기까지:환경운동연합이 찾은 ‘기여’의 언어 

CP1 프로젝트

2026년 05월 22일
Root Impact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는 비영리 조직에게 ‘성과’란 과연 무엇일까요? 매일같이 쏟아지는 현안 속에서 사업을 무사히 치러내기, 더 많은 회원 수 확보를 넘어, 수많은 비영리 조직들이 진정으로 일구고 싶은 변화는 무엇일까요?

비영리 조직의 활동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이 ‘성과 관리’는 영리 기업에나 걸맞은 언어라며 멀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직의 성과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을 때,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성장이 맞닿아 있지 않을 때, 활동가는 쉽게 소진되고 조직은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루트임팩트 CP1(Climate Philanthropy 1)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기후 비영리 조직이 더 단단한 토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CP1 프로젝트 여정의 두 번째 주인공은 환경운동연합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환경 네트워크 조직은 어떻게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성장의 언어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환경운동연합의 변화 한 눈에 보기

활동의 나열이 ‘성과’가 되지 못할 때 

환경운동연합에 평가 체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반기별 사업평가 워크숍을 통해 각 팀의 목표 달성도를 꾸준히 공유해왔습니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풀리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평가서에는 활동 내역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지만,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사업 평가와 개인 평가가 사실상 같은 내용으로 중복되었고, 구성원 개인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 기록의 부담, 학습의 공백: 평가서 작성에 품이 많이 들었지만, 정작 조직이 그 과정에서 축적하는 학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사업 평가는 활동 나열 중심으로 성과의 인과관계와 가치 판단이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 혼재된 평가 구조: 사업 평가와 개인 평가가 비슷한 내용으로 중복되며, 개인의 기여가 아닌 사업 결과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 성과 개념의 부재: 성과에 대한 개념이 불명확하고, ‘무엇이 일을 잘하는 것인가’에 대한 공통 기준이 없었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하는 일이 임팩트 관점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 성장은 개인의 몫이 되는 한계: 구성원들은 역량 개발과 성장에 대한 갈증이 컸지만, 리더십은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보거나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쏟아붓는 에너지에 비해 ‘나도, 조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따라오지 않을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활동가의 동력입니다. 말하자면,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장기전에서 사람이 지속가능하게 일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환경운동연합이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과제였던 셈이죠.

평가를 도입하자니,  더 큰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개인 성과 평가 체계만 만들면 되는 것일까요?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 성과 평가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환경운동연합 구성원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흘렀습니다. 연대와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비영리 조직에게, ‘누군가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개념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팀장이 팀원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부담, 보상과 연동될지 모른다는 우려. 필요는 알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공통된 그림이 없었습니다.

비단 환경운동연합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가치 중심으로 움직이는 비영리 조직일수록, ‘평가’라는 언어가 주는 경직과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기 마련니까요. CP1 프로젝트가 제도 설계에 앞서, 조직 내부의 충분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먼저 고민한 이유입니다. 

성과를 ‘문제 해결의 과정’이자 ‘학습’으로 재정의하다 

CP1 프로젝트는 전문가 자문을 통해, 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성과란 무엇인가?”

환경운동연합의 자문을 담당한 서동재 컨설턴트는 성과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습니다. 성과를 단순히 통제나 보상의 수단이 아닌 1.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 방안(솔루션) 및 문제 해결 과정에서 창출된 가치이자 2.  조직 학습의 도구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죠.

새로운 성과 평가는 무엇이 다른가? 새로운 성과 평가의 네 가지 차원

  1. 문제 상황: 해결하려 했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2. 시도된 대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했는가?
  3. 이해관계자의 변화: 대상자들의 인식이나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나?
  4. 긍정적인 임팩트: 궁극적으로 조직이 만들고자 하는 변화에 어떤 기여를 했나?

‘평가’가 아닌 ‘기여 리뷰’로, 언어를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

인식 전환을 위해 용어의 변화도 이뤄졌습니다. ‘사업 평가’는 ‘사업 계획 리뷰’로, ‘개인 평가’는 ‘개인 기여 리뷰’로. 평가라는 단어에 스민 판단과 보상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회고’, ‘학습’, ‘기여의 확인’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심은 것이죠. 언어가 바뀌자 인식도 자연히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언어로 성과 평가를 재정의하면서, 구성원 내 저항감도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평가의 목적이 활동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소중한 과정을 인정하고 함께 학습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활동가를 성장시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가치 평가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선영 시민행동팀장

이와 함께 사업 평가와 개인 평가를 명확히 분리하는 구조를 시도했습니다. 사업 계획 리뷰는 전략과 방향 점검에, 개인 기여 리뷰는 개인이 어떤 솔루션을 제시하고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따로 들여다보는 것에 각각 초점을 맞췄습니다. 뭉뚱그려 다루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목적에 맞는 구조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이 몸으로 체화되려면, 직접 부딪혀보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평가 양식으로 성과 평가를 직접 써보는 실습도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성과를 바라보고 작성하자, 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이, 내가 해온 일의 의미가 구체적인 언어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죠.

“성과 평가를 통해 팀 내 전략, 목표, 방향, 진행 등을 다 볼 수 있다는 이점을 알게 됐습니다.” — 김효주 운영팀장

“그동안의 평가는 활동, 결과 중심의 평면적인 서술 구조였음을 확인했고, 사업평가와 개인평가가 혼재되어 전략과 성과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방식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ㅡ 김은숙 회원더하기팀장

5회차에 걸친 자문 회의 및 실습 끝에, 조직장들은 인사 관리가 통제가 아닌 ‘코칭’이자 ‘성장 지원’임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성원들은 성과 평가를 기여 확인과 학습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직, 이렇게 달라졌어요 

추상적이었던 성과의 개념이 구체적인 ‘문제 해결’의 언어로 바뀌자,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분이 선명해졌습니다. 자문이 끝난 지금, 환경운동연합 안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 성과에 대한 인식 전환: “우리가 측정하고 있던 성과가 결과물에 불과했다는 것에 놀랐다”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과를 활동 실적이나 수치 달성의 문제로만 보던 시각에서, 조직이 풀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기여로 바라보는 관점이 싹텄습니다.
  • 평가 목적에 대한 공감대 형성: 평가를 보상이나 통제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서, 일하는 과정을 회고하고 더 잘하는 방법을 찾는 학습의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 조직장의 인사 관리 역할 재정립: 팀원의 기여를 확인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조직장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려는 의지가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개인 기여 리뷰 실행 기반 마련: 기여 리뷰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표준 양식이 갖춰졌고, 조직장들은 직접 써보는 실습을 마쳤습니다. 2026년 상반기부터 시범 적용을 시작으로, 향후에는 사업 계획과 연결해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성과 관리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정립하며, 팀원들의 업무와 성과를 명확히 지원하고 관리하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ㅡ나선영 시민행동팀장

“사무총장과 팀장 논의를 통해 상반기 평가 때 개인 기여 리뷰를 활용해, 팀장과 팀원이 소통하며 하반기 사업 계획을 함께 점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 김효주 운영팀장

물론 갈 길은 멉니다. 개인 기여 리뷰가 보상과 연동되는 문제, 구성원 전체로 확산하는 과정, 그리고 개인의 성과 관리가 조직 차원의 전략 목표와 정렬되는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과를 바라보는 달라진 관점, 이를 위해 함께 재학습한 언어. 이는 환경운동연합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중요한 전환일 것입니다.

환경운동연합 사례에서 얻는 핵심 인사이트

1. ‘성과 관리’는 비영리 조직에도 필요: 기후 위기 대응에서 비영리 조직이 지속가능하게 싸우려면, 구성원이 자신의 기여를 확인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과 관리는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더 오래, 더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토대입니다.
2. 성과 평가는 심판이 아닌 ‘학습’:  비영리 조직의 성과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얼마나 유효했는지를 점검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성과 평가가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고성과 창출 방식을 함께 익히는 도구가 될 때, 조직은 비로소 성장합니다. 
3. 인식의 변화는 ‘언어’와 ‘실습’에서부터: 새로운 제도가 조직에 뿌리내리려면, 그 전에 두 가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성원이 함께 쓸 수 있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직접 써보는 경험입니다.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성과를 직접 써보는 순간, 추상적인 개념은 비로소 구체적인 감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4. 기후 운동은 결국 ‘사람’이 하는 장기전: 기후 위기 대응은 호흡이 긴 싸움입니다. 활동가 개인이 자신의 성과를 임팩트 관점에서 확인하고 성장을 체감할 수 있을 때, 조직의 지속가능성도 확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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