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따라 자신을 찾아가는 곳
[헤이리슨] Member Inside
해당 콘텐츠는 헤이그라운드 멤버들을 위한 뉴스레터 ‘헤이리슨’에 격주로 연재되는 인터뷰입니다. 헤이리슨은 헤이그라운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의 이야기를 담아 직장 밖 동료와의 연결감,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커리어 인사이트 등을 담은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C Program 디렉터 김정민님 (min@c-program.org) 입니다.
현대자동차 마케팅전략팀과 국내광고팀, AWS (Amazon Web Services)에서 디지털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다 C Program에 합류했습니다.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을 총괄하며, 12~19세를 위한 새로운 공간, 스토리 라이브러리를 준비 중입니다. 그림책과 아이들을 사랑하며, 언젠가 <The Good Egg> 같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민님을 만나러 온 이 공간 이름이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입니다. 공간 소개 좀 해주세요.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은 12-19세면 누구나 와서 공간과 공간의 재료, 도구들을 활용하여 자기 작업을 자유롭게 펼치며 자신을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작업실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공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10대 초중반 학생들이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영유아들이 주로 노는 놀이터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죠. 어쩌면 그 시기가 한창 고유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시기일 수 있는데, 건강한 자극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야기’라는 컨셉을 떠올리게 됐죠.
왜 ‘이야기’인가요?
저는 이야기가 곧 각자의 취향이고 호기심이고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흔히들 다른 사람이 만든 이야기를 소비하는 경험을 주로 하게 되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존중받는 경험은 잘 하지 못하죠. 아이들의 이야기를 존중해주는 어른과 공간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가 앞으로 아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나가는데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스토리스튜디오에서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리고, 읽고, 보고, 쓰고… 이야기와 관련된 모든 동사를 자유롭게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이 곳을 ‘제 3의 공간’이라고도 부르더군요.
제 1의 공간인 집, 제 2의 공간인 학교를 제외한 다른 공간들은 모두 제 3의 공간으로 봐요. 학교를 포함해 대부분의 공간들이 ‘짜여진 경험’을 제공하죠. 공간마다 ‘이 공간은 이렇게 경험해야 해’라는 가이드가 있잖아요. 저희는 ‘덜 짜여진(Less structured),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스스로 어떤 경험을 할 지 주도적으로 맥락을 만들 수 있게끔 환경이 설계된 공간들이요. 그리고 이러한 제 3의 공간에서 그들의 경험, 자기 작업을 존중해주는 제 3의 어른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스토리스튜디오의 프로그램들도 그 바탕 위에서 기획해 가고 있습니다.
스토리스튜디오를 운영하는 C Program 홈페이지에 벤처기부펀드라는, 약간은 생소한 키워드가 나옵니다. 벤처기부펀드라는 것이 어떤 건가요?
전통적인 후원 개념에 벤처투자의 방법론을 접목시킨 방식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돈을 후원하고 끝이 아니라, 후원 대상과 함께 목표를 명확히 맞추고 기간별 마일스톤을 정합니다. 그 마일스톤을 계속해서 달성해야 펀딩이 지속되는 모델이에요. 매우 공고한 파트너십을 이어가게 되고, 함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역량 강화 등을 위한 다양한 서포트를 저희 팀에서 함께 진행합니다.
원래는 흔히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셨죠? C Program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저는 원래 질문도 많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첫 직장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성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죠. 그 갈증이 늘 있어서 휴가를 내거나 하면 항상 미술관에 놀러갔어요. 특히 그곳에서 저마다 예술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더라고요. 미술, 예술엔 정답이 없으니까요. 언젠가 막연히 어린이 미술관장을 하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됐고요. (웃음) 그러다 헬로우뮤지움이라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미술관을 알게 됐는데 C Program이 헬로우뮤지움의 후원사였어요. 그 후로 C Program에 대한 애정을 키워오다가 입사까지 하게 됐죠.
퇴사일을 엄윤미 C Program 대표님 강연날로 맞추기도 했다고요? (웃음)
네, 이미 퇴사는 결심한 상태였는데요. 엄윤미 대표님이 헬로우뮤지움에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보고, 그날로 퇴사일을 협의하고 퇴사한 날 강연에 찾아갔어요. 대표님께 어필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조금은 부담스러우셨을 수도. (웃음)
규모가 큰 조직에서 6년 넘게 일하셨어요. 무엇을 배웠나요?
큰 조직에서는 저의 업무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범위가 명확했어요. 그걸 계속 반복하면서 진하게 배우는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워낙 예산이 큰 프로젝트들이 실행되는 과정 안에서 보며 배우는 것들이 많죠. 여러 파트너들이 함께 만드는 잘 만들어진 보고서들을 보며 설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배웠고요.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하셨죠. 왜 그랬을까요?
저의 생각이나 결정이 좀 더 반영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만큼 과정,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일이요. 아주 큰 예산을 다루지만, 정작 그중 저의 의사가 잘 반영되어 쓸 수 있는 비중은 별로 없었거든요.
지금 일하는 팀에선 좀 다른가요?
처음엔 막상 제가 할 일을 제가 정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는데요. 지금은 오히려 그 부분이 제게 큰 동기부여가 돼 줘요. 구성원 누구든 어떤 일이든, 기획하고 실행하기까지 스스로가 고민하는 만큼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고,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하며 서로 응원해주고 북돋아주는 동료들 덕분에 계속 뭔가 해보고 싶어져요.
첫 회사를 퇴사하고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저에게 나름의 안식휴가를 주려고 했어요. 10년에 한 번 씩 4대 미술 축제가 한 해에 열리는데, 마침 타이밍이 맞아서 떠났죠.
가기 전에는 미술에 대한 지식이나 관점이 성장해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어서 돌아왔어요. (웃음) ‘아,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 뭐가 됐든 그냥 해보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하죠?
그림책은 왜 좋아하시나요?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를 돌아보면 저를 좀 착취하며 살지 않았나 싶어요. 등하굣길에서 내내 공부한다고 텍스트를 욱여 넣었죠. 어느 순간 ‘글’이 너무 싫어지더라고요. (웃음) 그림책 중에서도 내가 모르는 언어로 쓰인 그림책을 좋아해요.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의 그림책방을 들러 그림책을 삽니다. 작가의 의도와 전혀 무방하게, 저만의 방식으로 그 그림들과 그림처럼 보이는 문자들을 해석하는 경험이 좋아요. 어쩌면 스토리스튜디오에서 추구하는 ‘짜여지지 않은 경험’과도 닮아 있겠네요.
동기부여는 주로 어떻게 하세요?
아까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하나씩 구체화하고, 실험하고, 언어화해갈 때 힘이 많이 나고요. 그리고 스토리스튜디오에서 자기작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충전이 정말 많이 돼요. ‘여기는 어떻게 계속 운영이 돼요?’ ‘이렇게 자꾸 뭐 사시다가 문 닫으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을 아이들로부터 들을 때가 있는데요. (웃음)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공간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실감을 하며 동기부여가 많이 됩니다!
2021년 목표가 있다면요?
올해 스토리스튜디오 모델의 일부, 혹은 전부를 세종시, 수원시 도서관에 확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동료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잘 진행하고 싶어요. 그래서 스토리스튜디오와 같은 공간이 더 많이 확산되고, 그곳에서 자기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