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ODA, “한국 외교는 다르다” 보여줄 수 있어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⑫

[인터뷰] 발전대안 피다 한재광 대표 & 김향지 팀장
한국, ‘ODA=기업 해외진출 목적’ 지향 뚜렷
상업적 이익 넘어 보편적 가치 담는다면, 우리만의 외교 전략·공간 확보할 수 있어
ODA, ‘보편적 가치’ 담아 ‘일관된 정책’으로 시민들과 국제사회에 선봬야

“최근 한국의 ODA를 보면, 상업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2024년 예산안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 12일. “올해 정부가 역대 최대규모의 ODA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안다”는 기자의 말에, 20년 국제개발경력의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오히려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말로는 공적개발원조라 불리는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는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OECD에서 지정한 수원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복지 증진을 목표로 제공하는 개도국 및 국제기구 등에 제공하는 물품이나 금전 등의 도움을 의미한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국익’을 고려해 ODA에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한재광 대표는 “특정 기업의 해외진출’만’이 우리의 국익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한 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만큼, 시민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ODA 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ODA 예산 증액 이슈도 그렇습니다. 주요 언론과 ODA 분야 이해관계자들만 주목할 뿐, 한국 사회 일반의 여론은 사실 큰 관심이 없지 않나요? 심지어 어떤 분들은 국내 경제도 어려운데 ‘굳이 해외를 지원해야 되느냐’고 반문하시기도 하고요. 이제라도 시민사회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보다 큰 담론의 ODA 방향과 내용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이를 일관된 정책으로 담아 시민들과 국제사회에 내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재광 대표가 생각하는 한국 ODA의 방향과 그 내용은 무엇이냐”고 묻자, 한 대표는 “지구촌 인류공동체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ODA”라고 말했다. 

“지구촌 갈등이 심화되면서 전쟁이 발발하고, 기후위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요. 문제는 이런 복합적인 형태의 재난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 이에요. 언젠가는 우리도 맞이할 수 있는 위기죠. 단순히 남을 도와야 한다는 수준의 당위에서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ODA’를 주장하는 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사회 합의의 필요성과 가능성 모두 높다고 봐요. 그리고 그렇게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일관된 정책으로 구현된다면, 자국이기주의가 노골화된 지구촌에서 우리만의 외교 전략과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개발’ 프로젝트 몇 개로 빈곤문제 해결 못해..개발을 넘어 ‘발전’을 논의할 때

발전대안 피다(이하 피다)는 2016년 10월, ‘사람을 꽃피우는 발전’을 선보이겠다며 출범했다. 

갑자기 뚝딱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다. 피다는 ‘한국 ODA 감시자 역할’을 자임해온 ODA Watch를 그 전신으로 한다. 국내에 ODA가 막 태동하던 2006년, 정부의 ODA 정책을 감시하기 위해 결성된 ODA Watch는 원조 분절화, 원조 투명성, 빈곤포르노 등을 국제개발 현장의 주요 이슈들을 드러내고 정책 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불거진 최순실의 ODA 이권개입 이슈 역시, 박근혜 정부의 ODA 사업인 ‘코리아에이드’를 꾸준히 지켜본 ODA Watch 노력 덕분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 적지 않은 성과를 보였고 한국 시민사회에 ODA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ODA Watch가 ‘발전대안 피다’로 간판을 갈아끼웠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한재광 대표는 “감시와 견제를 넘어 성찰적 발전과 대안을 제안하고 싶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10년동안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여러 사업들을 살펴봤고 또 문제들을 제기해 왔는데요. 음. 저희는 ‘개발’이 빈곤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한다기보다는 현상에 대한 치료 내지는 표면적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실, 특정 개발 프로젝트 몇 개로 개도국의 빈곤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그래서 저희는 어떤 개발 프로젝트 몇 개의 효과성이나 성과를 지적하는 걸 넘어, 보다 큰 단위에서 또는 더 깊은 곳에서 ‘발전’을 성찰적으로 논의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발전대안 피다’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발전 대안? 결국 한국사회도 함께 바뀌어야 가능”

그렇게 2016년도부터 ▲한국사회에 ‘발전’에 대한 ‘성찰적 논의’를 확산하고, ▲발전권 침해에 대항하며 대안을 모색하며, ▲국내외 발전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주체들과 연대하며,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시민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발전을 다시 보는 건 너무 좋은 의도다. 다만, 이건 한국에서도 잘 안 되는데, 국제개발협력이라고 잘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되묻자, 한재광 대표는 “맞다. 바로 그것이다. 결국 피다가 지향하는 ‘발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도 함께 변해야 한다”면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 합의가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에 피다는 소수의 전문가들만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ODA 현장에 시민들과 함께 참여해, 문제점을 확인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빈곤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학(원)생과 NGO 활동가 등이 피다와 함께 라오스, 네팔, 캄보디아 등에 방문했다. 

‘지방에서 국제협력하기’ 프로젝트는 ODA마저도 ‘서울 공화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개발 담론’을 뒤집어 본 ‘피다스러운’ 도전이다. 피다는 ‘지방에서 국제협력하기’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지구의 빈곤문제와 기후문제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존재함을 알리고, 중앙이 아니더라도 지구촌이 함께 연대하고 함께 문제를 풀 수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활동가들의 노동권을 다루려는 시도도 이같은 도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노동이슈에 관심있는 전·현직 활동가들이 모여 워크숍과 특강 등을 개최하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이슈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안했다.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생태계 조성을 위해 활동가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결국 저희가 주장하는 건 간단합니다. 한국 원조의 철학과 가치는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단순히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수원국(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공여국(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는 것에 도취해선 안 돼요. 국제사회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려면 한국 사회 내부와 지구촌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 모두가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 해야할 일도 많고 가야할 길도 멀지만, 차근차근 ‘피다스러운’ 색깔로 다가가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