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캡슐이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들어가는 ‘공간의 기록’
헤이그라운드 입주사 인터뷰
| 헤이그라운드에는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품고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입주 조직들이 있습니다.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이들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 그리고 헤이그라운드라는 공간이 그 여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번 회차에서 만난 곳은 공간과 도시의 기억을 기록하고 내러티브로 엮어내는 콘텐츠 창작 그룹, 테크캡슐입니다. 테크캡슐의 이다영 님, 박선양 님을 만나 파편화된 기록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지, 그리고 성수동의 변화 한복판에서 헤이그라운드를 ‘단단한 상록수’로 기록하고 있는 이들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 인터뷰는 헤그타운 뉴스레터와 헤이그라운드 웹사이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내가, 미래의 우리에게, 남기는 장소의 가치”
테크캡슐 이다영님, 박선양님
Q. 반가워요, 두 분! 먼저 테크캡슐이 어떤 팀인지, 무엇을 기록하는 곳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다영: 저희는 공간과 도시의 지역적 맥락을 기록하는 콘텐츠 창작 그룹입니다. 시작은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연구실의 대학 실험실 벤처였어요. 초기에는 공간을 3D 스캔 기술로 정밀하게 기록하는 일 위주였다면, 지금은 다큐멘터리 영상 연출, 미디어아트, 도시 기록/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듀서들이 영입되면서 이 기록물들을 어떻게 내러티브로 엮어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건축들이 모여 만든 도시의 기억과 기록이 우리 사회에 더 의미 있게 작용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드는 만 8년 차 조직입니다. 또 저희는 건축/도시 공간을 더 정밀하게 기록하기 위한 기술R&D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공간과 장소를 가장 적합하게 담아 낼 수 있는 내러티브와 테크놀로지를 같이 연구하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Q. 기록에서 ‘내러티브’를 중요하게 여기고, 건축을 넘어 도시와 공간으로 확장해 콘텐츠를 외부로 유통하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있으실까요?
다영: 우리 사회에는 국가기록원이나 서울기록원처럼 기록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훌륭한 기관들이 있고, 그 안에 너무나 소중한 기록물들이 가득해요. 하지만 1차 자료들이 그저 수장고에 갇혀만 있다면 일반 대중들은 그것이 왜 가치 있고 소중한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기록물이 진짜 생명력을 얻고 가치를 갖게 되는 순간은, 파편화된 자료들을 엮어서 ‘해석’하고 하나의 ‘내러티브(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이 알게 했을 때라고 믿어요. 마치 조선왕조실록처럼요. 그래서 저희는 수장되어 있던 기록을 찾고 1차 해석을 거쳐 책이든, 다큐멘터리든, 웹이든 다양한 콘텐츠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합니다. 대중이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넓히는 것이 저희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선양: 실제로 저희가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했던 ‘성북 메모리루프’가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아요. 2024년에 조사한 정릉동과 작년에 작업한 석관동이 그 주인공인데요. 사실 이 동네들은 역사적으로 거창한 사건이 있거나 대단한 위인이 곧바로 떠오르는 지역은 아니에요. 처음엔 저희에게도 쉽지 않은 어려운 미션이었죠. 하지만 샅샅이 조사를 하고 자료를 파고들다 보니, 그 평범해 보이는 동네 안에도 수많은 역사적 순간과 예술인들의 자취, 그리고 서민들의 치열한 생활상이 촘촘히 박혀 있더라고요. 지금의 시점에서 이 자료들을 찾아내고 엮어서 한 권의 책이나 영상이라는 완결된 콘텐츠로 세상에 꺼내놓았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Q. 평범한 동네의 일상에서 역사적 내러티브를 발견해내는 과정이 정말 경이롭네요. 그 보람의 끝에는 어떤 지향점이 있나요?
선양: 저희 작업의 가장 큰 보람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은 저희가 만든 콘텐츠가 그 자체로 완결된 재미를 주면서 동시에 ‘1차 사료로 가는 인덱스’ 역할을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작업할 때 출처와 각주를 최대한 상세하게 많이 달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단편적인 카드 뉴스나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처럼 가공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저희 책을 디딤돌 삼아 “이 이야기의 원자료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까?”라며 진짜 기록의 깊은 공간으로 대중이 직접 걸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모두가 ‘원자료’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 전체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강화되고 도시에 대한 해상도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테크캡슐은 바로 그런 단단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테크캡슐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궁금합니다.
다영: 현재 성수동 곳곳에서 공간 기록 프로젝트를 대규모로 진행 중인 크래프톤의 ‘K-성수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가장 몰입하고 있어요. 성수동에 본사를 짓기 시작한 시점부터의 변화를 담는 작업인데, 공간적 범위도 크지만 2019년부터 2031년까지 내다보는 긴 호흡의 타임라인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덕분에 성수라는 지역을 아주 깊숙하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Q. 성수동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이 동네의 진짜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영: 처음 성수동을 검색했을 땐 인스타그램의 작은 정방형 프레임 속 팝업스토어나 뉴스기사의 부동산 정보만 검색되는, 아주 ‘납작하게 소비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과거 홍대나 을지로처럼 자본의 논리로 도장 깨기 하듯 소모되는 게 애석했죠.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본 성수는 훨씬 입체적인 도시였습니다. 변화의 속도를 완화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건강한 담론들이 동네 곳곳에 공존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작년 크리에이티브 성수 – CT페어에서 영상 작품으로 선보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중심에 헤이그라운드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수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소셜 임팩트를 추구하는 팀들이 이곳에 모여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었잖아요. 자본의 논리나 상업적인 개발에만 치우쳤다면 진작에 끝났을지 모를 이 동네가 고유의 자정작용과 매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헤이그라운드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소셜 임팩트 조직들이 지속가능한 목소리를 내며 지켜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양: 성수는 보통의 도시들이 10~15년에 걸쳐 겪을 변화를 단 3년 만에 압축적으로 겪어내고 있어요. 그래서 “성수는 이렇다”고 한마디로 정의하는 선언을 경계하게 됩니다. 지금의 성수는 함부로 정의 내리기엔 너무나 다양한 층위의 참여자들이 얽혀 있어요. 1년 전과 지금의 관광객 비중이 다르고, 동네를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곳을 개발하려는 주체들도 매번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무어라 정의하기보다 그저 ‘도시의 최전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10년쯤 지난 먼 미래에는 “그때의 성수는 이런 곳이었어”라고 사후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 시점마다 내가 목격한 성수의 단면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뿐이에요. 이 복잡하고 역동적인 최전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수동에서 테크캡슐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테크 캡슐의 시선에서, 헤이그라운드는 성수동 속에서 어떤 관점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요?
다영: 성수는 온갖 자본과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도시에요. 하지만 언젠가 그 물이 빠졌을 때도 우뚝 서 있을 단단한 상록수 같은 존재가 필요한데, 저희에게 헤이그라운드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요즘은 커뮤니티를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반면 헤이그라운드는 성수의 태동기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상업성에 치우치지 않고 진짜 커뮤니티 거점을 실천하며 자리를 지켜왔어요. 주변이 정신없이 바뀌고 수많은 팀이 오가는 와중에도 언제나 중심을 잡아주는 공간과 사람들이 ‘그 자리에 늘 있다는 것’. 떠났던 팀들이 다시 돌아와도 “여전하네”라며 안도할 수 있는 ‘꾸준함과 단단함’이 헤이그라운드를 정의하는 진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Q. 그동안 작업하신 수많은 기록 중, 헤그 멤버들이 꼭 한번 보았으면 하는 테크캡슐의 프로젝트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다영: 작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움직이는 회관』을 꼭 소개하고 싶어요. 지방 소멸의 시대 속에서 폐관된 군산시민문화회관을 다시 열기 위해 뛰어든 민관 협력 기획자, 행정가, 건축가들의 치열한 여정 중 2023년에서 2025년까지의 일들을 담은 작품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인 건축물이 동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어떻게 사용성과 운영 방식을 바꾸어 가는지, 그 치열한 프로젝트 과정을 기록했는데요. 상영회 당시 행정가나 로컬 브랜더분들의 공감과 리뷰가 정말 뜨거웠죠. 그래서 이 콘텐츠는 유튜브처럼 빨리 소모되는 플랫폼보다, 다 함께 모여 호흡하는 ‘공동체 상영’에 가장 어울려요. 혹시 이 기록을 함께 감상하고 싶은 헤그 멤버가 있다면 깜짝 상영회를 열어볼 수도 있을거에요. (웃음)
Q. 테크캡슐은 성산동에 본 오피스가 있고, 헤이그라운드는 두 분의 ‘성수 베이스캠프’로 활용 중이시라고요. 지내보시니 어떤가요?
다영: 본사가 있는 성산동은 성미산 자락 아래라 굉장히 고즈넉하고 조용해요. 반면 성수동은 모든 사건과 관심이 몰리고 폭발하는 현장이죠. 주 2~3회 성수 베이스캠프로 출근할 때마다 느끼는 이 밀도 높은 감각이 저희에게 엄청난 현장성을 부여해 줍니다.
선양: 단독 사무실을 썼다면 일부러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을 매일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게 가장 큰 강점이에요. 저희 바로 옆자리에 성수동에 오래 계셨던 ‘얼라이브노드(구 게토얼라이브)’의 정지선 대표님이 앉아 계시는데, 우연히 인사 나누다 음악이 일어나는 장소에 대한 공감대를 발견하기도 하고 동네의 깊은 ‘암묵지’를 선물 받기도 했습니다. 차갑게 평수를 지불하는 공유오피스가 아니라,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알아가고 친구를 만들어가는 아주 따뜻한 연결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Q. 만약 헤이그라운드를 기록한다면, 테크캡슐은 이곳을 어떤 내러티브로 기록하고 싶으신가요?
선양: 만약 저희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헤이그라운드를 거쳐 간 모든 기업들의 ‘관계 흐름도’를 데이터 시각화로 매핑해보고 싶어요. 여기서 태동해 성장한 스타트업들, 다른 데 있다가 이곳으로 모여든 소셜벤처들의 이동 경로와 뭉쳐진 관계망을 그려보는 거죠. 헤이그라운드는 성수동의 태동기부터 자리를 지키며 얄팍한 브랜딩이 아닌 진짜 커뮤니티 거점을 실천해 온 공간이잖아요. 그 흐름도를 그려내는 것 자체가 사회 혁신과 소셜 임팩트의 거대한 한 챕터를 증명하는 강력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함께 살아가는 헤이그라운드 이웃 멤버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다영: 저희는 성산동 주민이기도 하고, 성수동 주민이기도 한 일종의 ‘경계인’인데요. 공간과 기억을 다루는 팀인 만큼, 저희의 발길이 닿아 소셜 임팩트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와 콘텐츠가 헤이그라운드 안에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멤버 여러분의 비즈니스나 행사, 공간에 대한 아카이빙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문을 두드려 주세요. 서로 잘 협의해서 멋진 기록의 조각들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우리 앞으로 더 다정하게 연결되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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