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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에세이

고기가 사라진 미래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2020년 11월 17일
정경선 루트임팩트 최고상상책임자 겸 HGI 의장

한국 맛집 탐방가들의 포스트에 언젠가부터 빈번하게 등장하는 식당들이 있다. 바로 ‘한우 오마카세’. 고급 스시집처럼 한우의 각종 특수 부위들을 다양한 양념과 곁들여 순서에 맞춰 서빙하는 초고급 고깃집이다. 저녁 한 끼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데도 문전성시인 걸 보면 그야말로 현대판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 할 수 있겠다.

한우 오마카세는 일부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한국인들이 고기를 좋아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기 무한 리필 뷔페들이 호황이고, 아이돌이 곱창을 먹는 장면이 TV를 타면서 한때 전국 곱창집이 사람들로 붐볐다. 바야흐로 ‘고기테리언’ 전성시대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자료에 따르면, 95년 한국인은 1인당 평균 6.72㎏의 소고기와 14.75㎏의 돼지고기, 5.98㎏의 닭고기를 먹었는데, 23년 후인 2018년에는 평균 12.7㎏의 소고기와 27㎏의 돼지고기, 14.1㎏의 닭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거의 두 배에 가깝게 증가한 수치다. 한국인들의 식성은 이미 바뀌었고 앞으로 더 많은 고기를 찾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고기 사랑이 큰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축산업(사료 재배부터 육류 가공까지)의 탄소 배출은 전체 배출의 14.5%에 해당하며, 이는 에너지 섹터 다음으로 막대한 배출량이다. 지금도 남미에서는 소를 키우거나, 소를 먹이기 위한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밀림을 불태우고 있고 이는 기후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

어디 이뿐일까. 더 저렴한 가격에 고기를 먹기 위해서 도입한 공장식 축산은 동물 복지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효율화를 위해 고안한 밀집 사육장. 그로 인해 벌어지는 폐사를 막기 위해 남용되는 항생제는 치명적인 인수 공통 감염병의 우려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이라도 우리가 싸게 즐기고 있는 고기의 불편한 사실을 인식하고, 소비하는 고기만큼 환경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생산 과정부터 소비까지 비용과 가격이 급상승할 것이고, 육류 소비는 자연스럽게 감소할 것이다.

또 하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잠시 잊고 열심히 ‘현재의 고기’를 즐기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기후온난화로 목초지 파괴, 수자원 고갈, 항생제 내성 전염병의 유행으로 자연스럽게 육류 섭취가 제한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먼 미래에 지금처럼 고기를 즐길 수 없을 가능성은 꽤 높다.

단순히 탐미적 이유를 넘어, 고기 섭취는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를 얻어야 하는 인간에게 생존이 걸린 이슈다. 고기가 사라진 미래를 대비하는 다양한 비즈니스에 마윈, 빌 게이츠, 손정의 회장은 물론, 전통적 육류 대기업인 ‘타이슨 푸드’까지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기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대체육 시장은 크게 ‘식물성 단백질’ 제품과 실험실에서 동물 줄기세포를 키워 만드는 ‘배양육’ 제품으로 나뉜다. 전자는 미국의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드’가 대표적 기업인데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대규모로 보급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자원 집약적인 농경에 재료를 의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후자의 사례는 네덜란드의 ‘모사미트’로,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환경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아직도 100g 생산에 60만원이나 들어 시장 진출은 요원한 상태이다.

불판에 덩어리 고기를 구워 먹기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식문화로 볼 때 대체육이 한국 시장에 진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식물성 단백질 고기를 개발하는 ‘지구인컴퍼니’와 ‘디보션푸드’, 배양육을 개발하는 ‘셀미트’ 등 토종 대체육 스타트업들이 최근 속속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환경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남다른 밀레니얼과 Z세대도 대체육에 관심이 높다. 어쩌면 미래의 후손은 환경 파괴를 목도하면서도 대안적 고민 없이 육식을 즐기기에 바빴던 오늘날의 인류를 이야기하며 “참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을 가진 조상이었다”며 고개를 내두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해당 칼럼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2020.11.17)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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