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 ‘건강한’ 비영리 조직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
CP1 프로젝트
CP1 프로젝트 기고 시리즈 01
| [편집자주]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단일 주체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과제입니다. 학계·시민사회·기업·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이 필수적인 가운데, 기후 비영리 조직은 서로 다른 영역을 잇고 공동의 실행을 만들어내는 핵심 연결자로서 기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역할과 책임에 비해 장기적·신뢰 기반의 지원은 충분하지 않으며, 이는 조직의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기후 대응 생태계 전반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루트임팩트의 CP1 프로젝트는 기후 비영리 조직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닌 기후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로 조명하고, 보다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필란트로피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이번 기고 시리즈는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의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지역 현장에서 만들어온 변화의 경험을 전합니다. 이어 김광현 파타고니아코리아 환경팀 팀장이 기업의 책임과 협력의 관점에서 기후 비영리 조직과의 관계를 짚고,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국내 기후 비영리 조직의 성장 사례를 통해 장기적·전략적 지원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살펴봅니다. |
기후 위기 시대, ‘건강한’ 비영리 조직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
거버넌스의 관건이자 사회적 기반이 되는 비영리 조직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기후위기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기술과 투자를 먼저 떠올린다. 태양광, 풍력발전, 전기차, 효율 좋은 설비, 전력망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사회가 실제로 바뀌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과정과 함께 그 과정을 끝까지 챙기는 주체다. 비영리 조직이이 바로 그 역할을 맡는다. 비영리 조직이 건강하게 존재하고 활동할 때 정책과 제도는 종이 위에서 벗어나 삶 속으로 들어온다.
비영리 조직의 힘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시작된다. 시장은 이윤에, 정치는 표와 단기 여론에 민감하다. 그 사이에서 사라지거나 도외시되기 쉬운, 값으로 계산되지 않는 손해와 미래 세대의 이익을 오늘의 의제로 올려주는 주체가 필요하다. 비영리 조직은 폭우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 폭염으로 생명을 잃거나 온열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나 장애인을 포함한 노약자들, 기후위기로 사라지는 숲과 생명들, 기후위기의 심화로 미래가 불안해진 청년들과 미래세대 등 더 취약하고 더 고통 받는 이들의 형편과 목소리에 관심을 둔다. 탄소중립을 향해 사회구조를 전환시켜 가는 과정이 낳는 차별적 영향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과 경제의 활력을 잃어가는 지역들,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과정이나 전환의 편익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될 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 등. 비영리 조직은 이런 목소리를 모아 정책의 언어로 바꾸고, 지금 당장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사회에 묻고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될 때 정책은 첫발을 뗀다.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 인해 제대로 만들기도 쉽지 않지만,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대체로 더 큰 어려움은 그 다음,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도록 하는 데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 부처 사이, 공공과 민간 사이에는 늘 빈틈이 있다. 이때 비영리 조직은 중간에서 이 빈틈을 확인하고 채우고 서로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장의 문제를 모아서 현장 너머로 알리고, 작게라도 대안을 먼저 실험해 보고,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을 다시 제도권에 알려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도록 돕는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일까지 챙기는 주체가 있을 때 사회는 더 빨리, 더 똑똑하게 문제를 고쳐 나갈 수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누군가의 일자리와 생활비, 지역 정체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화석연료와 원전과 같은 대규모 중앙집중형 에너지체제에서 절약과 효율 개선으로 수요를 줄이면서 재생에너지 이용을 늘리는 지역분산형 에너지체제로의 이행 과정에서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각 에너지 체제를 둘러싼 주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다. 비영리 조직은 다양한 집단들 간 소통의 자리를 만들고 공감대를 키우면서 합의의 가능성을 넓히고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그 합의가 이행될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돕는다. 의사 결정 과정 참여자들은 그 과정이 공정하다고 느낄 때 안심하고 참여하게 된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설득은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신뢰는 여러 번의 공정한 과정이 반복되고 대화와 설득이 쌓일 때 만들어진다. 바로 여기에 비영리 조직의의 역할이 있다.
감시와 견제는 공정한 과정을 지켜 내는 안전장치다. 정보공개 청구, 감사 요청, 사실 확인(fact check) 같은 절차를 통해 무엇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올바른 사실이 무엇인지 드러나면, 잘못을 바로잡고 허위 정보를 걸러낼 수 있다. 공개–검증–수정이라는 절차가 작동할 때 사회적 신뢰가 커나가고, 이런 신뢰가 쌓이게 되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변화가 쉽지 않고 그 사회는 가볍게 흔들리지 않는다. 비영리 조직이 이런 절차가 작동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며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고 잘못을 바로 잡아나갈 때, 사회가 바로 설 가능성이 커진다. 비영리 조직의 역량이 사회의 자기수정 능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영리 조직의 ‘건강한 존재’다. 좋은 뜻과 열정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활동가가 생계 걱정 없이 일하며 창의성과 자율성, 책임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단체 안에는 책임 있게 결정하는 이사회와 투명한 회계, 문제를 제기할 통로, 쉼과 학습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열정이 아니라 조직의 힘으로 일해야 오래갈 수 있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업에만 재원이 묶일 경우 단체활동의 여력이 사라진다. 단체의 뿌리를 키우고 튼튼히 할 수 있는 재원이 있어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단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실수를 고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 비영리 조직은 사회적 기반으로 든든히 설 수 있다.
한국의 비영리 조직들은 이제까지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정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활동의 흐름이 자주 막히는 구조적 제약도 분명하다. 단기 사업(project) 중심으로 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단체는 외주 사업 수행기관처럼 일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핵심 인력과 지식 축적, 내부 통제가 약화된다. 정책은 느리게 움직이는데 사업 중심 지원 구조에서는 빠른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습과 수정의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그 결과 숙련된 활동가가 과중한 업무와 역량 소진, 생계의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장을 떠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조직의 기억과 네트워크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여기에 제도적 제약까지 겹쳐지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거버넌스의 참여 창구가 형식에 머물면 비영리 조직이이 현장에서 모은 근거와 합의, 실행 가능한 대안이 정책 설계와 예산 결정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 결과 ‘참여’는 절차로만 소비되고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인력과 재정, 학습이라는 비영리 조직의 내부 기반과 실제로 작동하는 참여 통로가 함께 갖춰질 때에만 현장과 정책의 연결 고리가 든든하게 유지될 수 있다.
기업과 정부, 자선단체는 비영리 조직의 활동 기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두텁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은 비영리 조직과 함께 지역과 고객, 협력사와의 대화를 열어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거버넌스 구조의 참여 창구를 형식이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구조로 만들 수 있다. 자선단체는 단체의 뿌리를 키우는 장기 지원으로 학습과 수정의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세 영역이 만나는 자리가 겹쳐지고 넓어질 때 비영리 조직의 거버넌스 기반은 두터워지고, 그 두께만큼 우리 사회의 전환은 더 빨라지고 더 안전해진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기후위기시대, 기후시민의 기후행동”을 강조해 왔다. 가정과 일터에서 일상 생활 속 실천도 필요하지만, 정치의 언어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을 말하면서 현장의 단체를 꾸준히 뒷받침할 때 법제와 정책, 규범과 문화가 바뀌면서 결국은 열심히 기후행동을 실천하는 소수를 넘어 사회 구성원 전부의 삶이 변화될 수 있다. 비영리 조직의 건강한 존재는 기후 거버넌스의 필수 조건이자, 제도와 신뢰, 참여를 떠받치는 사회적 기반이 된다. 기술과 자본이 길을 내고 정책과 제도가 신호를 바꾸는 동안, 비영리 조직은 사람을 움직여 그 길을 실제로 걷게 만든다. 그 연결이 견고할수록 전환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윤순진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국가적 기후 대응 정책에 앞장서 왔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 문제를 정치경제학 및 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며 학술 활동과 시민사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델라웨어대학교에서 환경·에너지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