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열팔한지구(八熱八寒地球)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대부분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선악을 가르치기 위해 각자의 문화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천국’과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의 모습을 상상했다. 흥미로운 것은 천국의 모습은 문화권별로 차이가 있는 데 비해, 지옥은 대부분 묘사가 겹친다는 것이다. 그곳은 불타거나, 얼어붙어 있는, 고통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고대의 종교인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신음하고 있는 오늘날 지구의 풍경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종말이 다가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2020년은 지구 기온 사상 최고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 지역은 관측을 시작한 이후 2010년까지의 평균기온에 비해 2020년 기온이 2.2도나 높았다. 겨울철 온도가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 북동부 북극권 인접 지역 베르호얀스크는 6월 평균기온이 평소 20도에 불과한 곳이었으나 작년 6월에는 38도를 기록했다. 반면 올해 2월에는 30년 만의 최악의 한파가 미국 중부, 남부를 덮치면서 세계 최강 대국 미국에서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석유 시설의 생산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시기보다 1.1도 이상 증가하면서 열대 폭풍의 빈도와 강도는 올라가고, 제트기류의 약화로 인해 극지방에 갇힌 차가운 공기 덩어리인 극소용돌이(Polar Vortex)가 남하하면서 폭한 사태를 발생, 전 세계적인 폭염과 가뭄, 그로 인한 산불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기후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서, 인류 사회에 실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독일의 비영리 민간기후연구소 저먼워치는 21세기에 들어서 20년간 1만1000건이 넘는 이상기후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가 47만5000명, 피해액은 2조5600억달러(약 282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미 인도와 파키스탄은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고온에 취약한 노인과 당뇨, 심혈관 환자들의 사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다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뜻한 대기에서는 나무와 토양 모두에서 수분이 증발하면서 건조한 상태가 되고, 작은 불길도 순식간에 번져나가게 된다. 2019년 호주에서 시작된 산불은 지금까지 서울 면적의 100배 이상을 태워 4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였고, 캘리포니아에서도 2018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대부분 흡수하는 심해 수온이 한계치에 이르면서 용해된 이산화탄소가 다시 방출되거나 해류에 교란이 발생해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싣기도 했다.
다른 어떤 변화보다도 지구온난화가 무서운 것은, 이미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모든 발전소를 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의 모든 빈 땅에 나무를 심는다고 하더라도, 여태껏 지구에 축적된 열들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세계 각국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더 이상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조금씩 내비치고 있다.
우선 중국 다음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인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 공식 복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국제 협력을 다시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파리행정법원은 이달 초 그린피스프랑스, 옥스팜프랑스 등 4개 환경 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프랑스 정부의 기후 위기 책임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기온 상승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의 미흡함을 지적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또한 2018년을 기점으로 한국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출자하는 대규모 공적 자금이 임팩트 영역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국내 임팩트 투자자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기후변화 문제를 위해 투자되는 재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HGI 또한 이전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진행해왔다. UN 사막화 방지 옵서버로 활동하고 있는 소셜벤처 ‘트리플래닛’, 플라스틱 생분해 소재 기술 기반 R&D 기업 ‘테코플러스’ 등이 그 사례다. 이 기업들은 HGI 투자 이후 꾸준한 매출 성장과 후속 투자 유치를 이뤄냈다. 또 탄소 저감과 같은 사회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 팔열팔한(八熱八寒) 지옥이 되어가는 지구를 목전에 둔 최적의 방법일 것이다.
*해당 칼럼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2021.3.02)에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