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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가족 에세이

‘아이 키우기 좋은 회사’가 아니라 ‘일하기 좋은 회사’입니다

체인지메이커 in 루트임팩트

2021년 05월 14일
루트임팩트 선종헌 매니저

아이를 낳고 3개월 정도 지난, 다시 말해서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을 2019년 여름, 회사에서 P&C (People & Cullture / 루트임팩트에서 채용, 조직문화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 H가 전화를 걸어왔다.

 “저희 강원도로 리트릿 (루트임팩트의 여름휴가) 가려고 하는데 아이 데리고 같이 오실래요?”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땐 아이와 잠시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했고, 병원이라도 가려면 온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를 잊지 않고 챙긴 H 에 대한 고마움, 아이와 함께하는 2박 3일 여행을 떠올리자 몰려오는 피로감, ‘리트릿’이라는 단어와 내 일상의 괴리감, 회사 사람들과 앞으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 어렵겠다는 좌절감이 범벅이 되어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울먹였던 것도 같다. 루트임팩트는 그만큼 결혼과 출산 이후의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루트임팩트는 빠르게 배우는 조직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구성원이었는데, 급여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 K는 아주 섬세하게 육아휴직에 대해 학습하고 정확한 매뉴얼을 만들어주었다. H는 (순진한 호의로 나를 울렸던 그 H) 종종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와 내가 돌아오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진지하게 논의하고 복직 계획을 세워주었다. 의사 결정자 J는 나에게 필요한 근로 형태와 조직 구성을 함께 고민해주었다. 당시 이들은 모두 결혼이나 출산의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잘 모르는 그 세계에 대해 “겸허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그에 맞추어 조직을 변화시킬 의지가 있었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루트임팩트의 좋은 태도다.

가족과 함께 떠난 2019년 루트임팩트 썸머 리트릿 (Summer Retreat)

루트임팩트는 이처럼 빠르게 배울 뿐 아니라, 필요한 변화를 구성원 누구라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실행할 수 있는 조직이다. 루트임팩트의 조직 문화나 제도는 한두 사람에 의해 은혜롭게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에 공감한 이가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필요한 제도를 만든다. 쉽게 말해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겠다고 하면, 팔 수 있다. (물론 어떤 우물인지, 어떻게 팔 계획인지 매우 정교하게 설계해서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하고, 우물을 팔 능력도 지겹게 검증받게 될 것이며, 왜 연못도 수도도 아니고 우물이냐는 질문도 여러 번 듣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루트임팩트는 채용을 할 때 회사의 조직 문화를 설명하기보다는 잠재적 입사자가 가진 조직 문화에 대한 철학이나 필요로 하는 조직 환경에 대한 생각을 듣기를 좋아한다. P&C의 역할은 이러한 자기주도성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목마른 자가 직접 우물을 판 가장 최근 사례는 직장 어린이집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된 동료 D는 육아휴직 중에 돌아와 H와 J를 설득해서 직장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루트임팩트 동료들이 자랑스러운 점이라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두고두고 자랑스럽게 우려먹을 이야기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볼 수 있다.  D와 H는 공식적인 사내 TF를 조직했다. 루트임팩트 리더를 포함한 구성원, 컨소시엄에 참여할 소셜 벤처, 공공기관의 관계 부처, 그리고 후원사를 차례로 설득했다. 수많은 난관은 H와 D가 번갈아가며 가공할 만한 인내력을 발휘해 해결해나갔다. 노력 끝에 2020년 5월, ‘모두의 숲’ 어린이집이 개원했고 루트임팩트의 복리 후생 리스트에 ‘직장 어린이집’이 추가되었다.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키즈라운지

앞으로도 우리는 여러 변화의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가족 구성원과 함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 자녀 교육 때문에 업무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 자녀 외에도 돌봄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이 더 생기는 경우 등. 우리의 삶은 지금도 다방면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사전에 예견하고 준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라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면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고 방법을 함께 모색할 것이다. 무엇보다 구성원 스스로 그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먼저, 조직의 인내력이다. 루트임팩트는 인내를 지녔다. 루트임팩트는 내가 복직 후 초단시간으로 일을 시작하여 생활과 일 사이의 균형을 잡아나가며 업무 시간을 점차 늘려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이처럼 구성원 스스로 성장의 길을 찾아낼 때 까지 기다릴 줄 안다.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여러 번 서로를 설득하고 끊임없이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난할 때도 있지만 존경스럽다. 조직 전반에 걸친 이러한 인내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변화를 주도적으로 시도할 때 심리적인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다.

 또한 겸손한 리더십이 있다. 구성원이 일을 지속하는 데 방해 요인이 있다면 제거해주는 것이 조직 지원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리더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생애 주기별 고민을 모두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 점을 의식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경청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보인다. 게다가, 능력이 상당하다. 리더십이 조직 문화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우리 리더십의 특징은 앞서 말한 구성원 주도의 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 이유가 된다.

‘라이프가 해피하면 워크도 조크든요’ 2019년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에서 소개한 루트임팩트 조직문화

나는 우리 구성원들이 주변에서 우리의 유연한 근무 제도나 지원 제도에 대해 “결혼해서 아기 키우기 좋은 회사”라는 칭찬을 받았다고 전해들을 때면, 딱히 기분이 좋지가 않다.
먼저, 아기 키우기 좋은 회사가 아니라 일하기 좋은 회사다. 우리의 유연함과 다양한 지원은 구성원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들이 일을 가장 잘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에 조성한 환경일 뿐이다.
둘째, 칭찬받아야 할 것은 회사가 아니라 그러한 회사를 만들어낸 그 구성원의 능력이다. 루트임팩트가 그들에게 운이 좋게 주어진 것이 아니란 뜻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성과이다. 그러니 “네, 제가 그렇게 좋은 회사를 만들었네요”라고 꼭 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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