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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가족 에세이

아기와 부모를 살리는 품

매거진 루트임팩트

2021년 05월 12일
루트임팩트

이번 해에는 유난히 마음 아픈 뉴스들도 많고,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이슈들도 끊이지 않는 것 같아요. 혹시 지난 월요일에 진행된 100분 토론 보셨나요? 코로나19로 인한 보육/교육 공백부터 아동학대 사건까지 아동 관련의 근본적인 원인과 함께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구축해야 할 사회 안전망에 대해서 오은영 박사님과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님이 함께 토론을 진행했어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줬던 토론이어서 여러분께도 공유합니다. 유튜브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매거진 루트임팩트, 이번 달 부터는 새로운 형식을 추가하여 여러분을 찾아왔어요. 이 글을 쓴 이가 차린 회사는 어떤 곳인지 아주 간략히 볼 수 있는 브리프를 준비해 보았고요. 다 읽어 보신 후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코너도 만들어 보았어요. 소소한 질문도, 거대한 담론도, 그냥 의견도 모두 좋아요. 번외편으로 체인지메이커의 답변을 담아 매달 마지막 주에 직접 전달해드릴게요!  

이번 편도 ‘세상은 이런 분들이 있어서 망하지 않겠어’ 란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실었어요. 재밌게 읽어봐주세요! 그럼, 시작합니다. 


“띵동~”이른 저녁, 벨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온 걸 알리는 소리다. ‘버려진’ 아기들이 놓이는 베이비박스. 누군가 교회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으면, 벨이 울리고 인터폰 화면이 상자 안의 아기를 비춘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를 돌보는 봉사를 시작하고 실제로 아이가 들어오는 순간을 처음 목격한 건 2014년 어느 가을 저녁이었다. 아기 기저귀를 갈다 갑자기 얼굴에 오줌 세례를 받고, 과학보다 더 어려운 아기들의 각기 다른 분유 양을 맞추려고 쩔쩔매던 와중이었다. 

 2009년 관악구 난곡동의 작은 교회에 만들어진 베이비박스에는 총 1,870명이 넘는 아기들이 들어왔다(2021년 4월 27일 기준). 1년에 150~200명의 아기들이 들어온다고 하니, 곧 2,000명이 넘을 것이다. 2016년, 이 숫자를 줄이고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베이비박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의 이야기

언론은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범죄를 저지른’, ‘무책임한’, 또는 ‘성적으로 문란한’ 부모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 베이비박스까지 오는걸까?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세한 속사정을 알아야 했다. 가장 먼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실제로 베이비박스를 찾았던 부모 천여 명의 상담일지를 분석했다.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듯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불안정한 주거 상태에 처해 있었다. 또한 주변에 도와줄 가족이 없거나, 아기 또는 자신에게 건강 이상이나 장애가 있거나, (비혼)한부모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은 대부분 중첩되어 있었다. 예컨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다가 집단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구순구개열을 가진 아기를 출산한 청소녀’ 또는 ‘아기 아빠의 폭력에 시달려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와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져 베이비박스를 찾은 엄마’처럼 말이다.  

그중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전형적인 가족’, 즉 혼인 관계로 이루어진 이성 양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아니어서였다. 이러한 이유로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았다.흔히들 ‘전형적인 가족’에서 벗어난 관계는 극소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사회에는 비혼-비혼 부모, 비혼-기혼 부모, 기혼-기혼 부모, 비혼 한부모, 이혼 또는 사별로 인한 한부모, 동성 부모 등,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사회가 여기는 ‘전형적인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아기를 키우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혼인으로 이루어진 양부모와 자녀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가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이들을 베이비박스로 이끄는 것이다. 
본인의 심지가 굳으면 사회적 압박쯤이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압박은 아주 현실적으로 ‘전형적이지 않은’ 부/모들을 조여온다. 
재작년 이맘때쯤 임신 5개월차 미성년자 커플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낙태를 요구하는 양가에서 나와 한 달 넘게 찜질방과 24시간 카페에서 지냈고, 주머니에 든 천 원이 전 재산이었다. 이 커플을 당장 어디서 재울지,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지원해야 앞으로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급박하게 머리를 짜냈다.미성년자인 이들을 받아줄 곳은 거의 없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비혼모 시설에라도 갈 수 있었지만 둘은 같이 있기를 원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부/모들을 기꺼이 지원하는 한 비영리 기관조차도 받아주기 어렵다고 답해왔다. 이전에 미성년 부모에게 집을 구해주었다가 미성년 동거를 조장한다고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이유였다. 다행히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기관을 어렵게 찾았지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아이를 키울수록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는 현 시스템

‘사랑이 법’도 또 다른 사례다. ‘사랑이 법’으로 비혼부도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아기 엄마의 행방이나 신원을 전혀 모를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비혼부 가족이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현장에서 3년이 지나도 출생신고를 못한 비혼부의 아이를 만난 적도 있다. 이 아이는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보호망에서 배제된다.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는 아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비혼부의 출생신고를 돕는다고 만들어진 ‘사랑이 법’에 이러한 한계가 생긴 이유는, 이 정책이 ‘전형적인 가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기를 기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사회에서는, 엄마의 행방을 아는데도 싱글 비혼부로 살아가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보다 다양한 상황에 놓인 가족들을 포용하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발표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전제한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했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통보하도록 한 ‘보편적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무적이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 엄마의 인적사항을 모르는 경우뿐만 아니라 ‘엄마가 출생신고를 일방적으로 거부할 경우’에도 비혼부가 출생 확인 신청이 가능하도록 바뀌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원에 ‘출생 확인 신청서를 내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일 뿐 출생 확인 절차가 간단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비혼부들은 신청서를 접수한 뒤 수개월 동안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출산하지 않은 자택 출산의 경우나, 부/모가 바로 가정법원에 갈 여유가 없는 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존재가 배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  

베이비박스가 아닌 당신의 품에서 계속 기를 수 있도록

이처럼 아직도 현실에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체인지메이커들 아닌가.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비투비는 ‘위기임신지원가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페르소나로 삼아, 임신 인지 시점부터 출산 후까지 각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정부/민간 지원을 매핑한 위기임신지원가이드는 어느 부분의 지원이 부족한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비투비는 이 사각지대를 채울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는 한편,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한 부/모를 위해 다양한 사회구성원과 협력해 비투비만의 자원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비투비의 미션에 함께했다. 최근에는 가족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었던 가족을 선정해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품생품사’ 프로젝트를 바라봄 사진관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 선정자는 비혼모 시설에서 갓 퇴소해 돌을 앞둔 아기를 기르고 있는 비혼모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 가족의 돌잔치 사진을 위해 바라봄 외에도 (비투비가 입주하고 있는) 헤이그라운드 이웃인 그로잉맘, 어니스트 플라워에서 필요한 물품을 후원했다. 실로 한 아기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모인 순간이었다.

품생품사 첫번째 아기 손님

아기를 키우고자 하는 모든 부/모가 필요한 지원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 ‘품’(www.puum.me/)을 처음 개발할 때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회 자원을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모으기 위해 60명이 넘는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다양한 상황의 모든 부/모가 존중받으며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할 수 있다. 아니, 함께하자. 우리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마음이,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더 적극적인 일을 하고 싶다면, 당신이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비투비를 후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끝으로, 한 사용자가 비투비에 보내온 ‘품’ 사용 소감을 소개하며 함께 이같은 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안녕하세요, 저는 예비 싱글맘입니다.홀로 양육을 담당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종종 방문해서 글을 읽는데, 경제적인 문제로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 더 나아가서는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경우를 보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던 중 비투비의 ‘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원가입을 진행하며 비혼 가정뿐 아니라 별거 중인 가정도 지원하는 것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실제적인 이혼 가정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굳이 이렇게 연락드리는 이유는 비투비의 사업이 많은 분들께 물질을 떠나서 심적으로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된다는 사실과 감사의 마음을 꼭 한 번은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기업 BRIEF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 비투비는 베이비박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어. 베이비박스는 흔히 ‘버려지는’ 아기가 들어오는 상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거 알아? 비투비가 조사해보니,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간 사람들 중 30%는 나중에 아기를 다시 되찾아갔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아! 최소한 30%는 아기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겠구나! 제 때 도왔으면 애초에 베이비박스에 안 올 수 있었겠구나! 비투비는 그때부터, 아기를 키우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은 누가있어? 너의 차별점은 뭐야? 아기를 살리기 위해 부모를 먼저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들은 전국의 보육원으로 보내지는데, 많은 기관들이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지원해 주셔. 물론 이 일도 너무나 필요한 일이지만, 비투비는 아기를 키우고자 하는 ‘부모’를 먼저 도와서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들의 수를 궁극적으로 줄이려고 해. 지원사업이 많아도 해마다 200명의 아기가 들어오는 이유는 도움의 정보를 찾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야. 비투비는 이를 위해 다양한 상황의 부/모들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모아두고, 유용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을 운영하고 있어.
?체인지메이커들이 어떻게 너를 밀어주면 돼?  
비투비의 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베이비박스가 필요없는 우리나라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면, 비혼모/부, 이혼모/부, 청소년부모 등,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아기를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비투비를 응원하고 싶다면 후원을 통해 시작해봐!

?이 이슈에 대해 궁금하다면 어떤 컨텐츠를 추천해?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은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들인지, 어떻게 해야 베이비박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비투비가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들의 상담일지를 분석해 정리한  ‘베이비박스 보고서‘ 를 읽어보면 도움이 될거야! 그리고, ‘어느 가족’으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베이비박스에 관한 영화 ‘브로커’(가제)를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하고 촬영 중이라고 해. 영화가 개봉하면 같이 챙겨보자!  

기고 비투비 김윤지 대표
편집 정지혜 
기획 루트임팩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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