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도 탄소를 배출한다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나아질 것 같으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19에 영향을 받는 것은 많지만, 그중 특히 수혜를 본 영역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일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거리 두기를 강제당하면서, 인류는 현실에서 하는 많은 것이 디지털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요즘 메타버스(Metaverse)가 폭발적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콘텐츠 영역에서 일하는 지인과, 가상 세계의 성공은 그럴듯한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게 아니라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현실 세계가 망가지는 데 달렸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디지털 전환은 인류에게 필수 불가결한 단계다. 인류 생활의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데이터가 축적되어 그것들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2010년 1분기에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회사 10곳 중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둘만이 디지털 관련 회사였는데, 2021년 1분기 시가총액 상위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를 제외한 9곳이 디지털 관련 회사라는 것이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인터넷 사용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인터넷 인구는 2004년 약 9억명에서 2020년 약 48억명으로 늘었고, 특히 중저소득국에서 빈약한 보건, 교육, 의료 인프라 등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진행하면서 모바일 인터넷 사용량은 더욱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은, 방금 전까지 눈앞에 존재하던 현실을 디지털로 전환한다고 해서 그 물리적 비용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누리던 만큼 더욱 높은 해상도로 생생하고 그럴듯하게, 또한 끊김 없이 디지털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산 처리를 위한 막대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이를 돌릴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러한 에너지 상당 부분이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화석연료를 필요로 한다.
디지털 기술은 2019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7%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운송이나 농업에 비해 미미할 수 있으나, 문제는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 성장으로 2025년에는 배출량의 8%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후로도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자율주행,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요즘 각광받는 신기술은 모두 엄청난 연산 능력과 데이터 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가상 세계가 인류에게 주는 현실적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이런 문제는 업계에서도 자각하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 ITU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ICT 산업은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5% 감축해야 한다고 발표했고, 네트워크 운영사들과 데이터 센터들이 과학적 근거를 기반(SBTi·Science Based Target initiative)으로 한 배출 감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실무적 지원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탄소 발자국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이터 센터를 좀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글로벌 업계 전부가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2014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던 애플은 미국 아이오와와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덴마크의 데이터센터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로젝트 나틱을 통해 해저 데이터센터를 상용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자아가 확립될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한, 어떻게 보면 애초부터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병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세대다. 인류의 디지털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 세대가 살게 될 모습은 영화 ‘매트릭스’, 가상 현실이 몰락한 실제 현실보다 더 중요해지는 ‘레디 플레이어 원’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 칼럼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2021.06.01)에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