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커리어 에세이

커리어 ‘경주’가 아닌 ‘여행’을 떠나세요

체인지메이커 in 루트임팩트

2021년 08월 24일
루트임팩트 박영은 프로그램 디렉터

며칠 전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로컬과 생태에 관한 담론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존재인 그의 인터뷰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던 중 한 대목이 오랫동안 내 시선을 붙잡았다.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몇 년 전 방송의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효리씨가 한 어린 아이에게 툭 던졌던, 그리고 방송을 본 많은 남녀노소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한 마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성장은 성공과 무엇이 다를까?

언젠가부터 커리어에 있어 ‘성장’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주목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갸웃하게 될 때가 있다. ‘성공’이 아닌 ‘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마치 일반적인 주류 사회의 기준과 조금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본질적으로 그렇게까지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성장은 어떠한 ‘방향성’ 을 전제로 한다. 더 커지는 것, 더 많아지는 것, 더 넓어지는 것, 더 능숙하게 되는 것… 그러한 방향은 대부분 사회에서의 ‘숙련’에 대한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성장에 대한 욕망은 보통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고, ‘많이’ 성장하고 싶고,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구체화되는 경우가 많다. 양과 속도에 있어 역시 사회에서의 가치 기준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조금 더 깊은 곳에는 ‘뒤쳐지지 않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잘하고 싶은’ – 즉 타인과의 비교, 경쟁이나 타인으로부터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욕망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서 조바심, 불안함, 혹은 반대로 묘한 자기합리화나 우월감과 같은 감정들이 느껴질 때도 많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장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장을 원한다고 할 때, 그 깊은 곳의 욕망이 직업과 관련된 다른 세속적인 욕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의 동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깊은 곳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성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은, 꼭 성장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모든 인간이 빠르게 많이 계속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커리어를 사다리에 비유하든 정글짐에 비유하든,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어떤 지점까지 도달해야 하는 – 계획 아래 목표를 하나씩 클리어하며 어떤 방향으로 달려가는 ‘Path’ 나 ‘Race’ 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과 인생, 그리고 그 중 하나의 요소로 존재하는 일을 ‘Journey’ (여정)과 ‘Experience’(경험) 으로 바라보고 싶다. 이상은이 노래했듯이 말이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중략)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걸”
– 이상은 <삶은 여행> 노래 가사 중 일부 – 

나에게 맞는 커리어 ‘여행’ 스타일을 찾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행을 할 때에는 우리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성에 따라 경쟁적으로 무엇인가를 더, 더, 더 성취하거나 달성하려고 하기보다 순간 순간 내가 원하는 경험에 보다 집중한다 (사회의 가치가 깊이 내면화되어 어쩌면 여행에서도 성취와 달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제 눈으로 보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보며 행복해하고, 직접 맛보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먹으며 그 순간을 느낀다. 여행의 모습과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하기에, 타인의 여행이 나의 여행에 경쟁이나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시간이 충분치 않아 ‘빨리빨리’ 최대한 훑고 가는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한다면 같은 시간 동안 한 곳에서 머무르며 살아보는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나만의 방향, 나만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다. 어떤 여행이든,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그 여정 – 과정의 기억이 가장 소중하게 남는다. 계획하지 않았던 즉흥적인 시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 겪었던 고생… 어떤 것이든 지나고 돌아보면 소중하며, 다음 여행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참고가 되지만 또 참고가 되지 않는다고 문제될 것도 없다.

일을 생각할 때에도 어깨에 조금은 힘을 빼고, 한 번 밖에 없는 나의 인생과 한 번 밖에 없는 나의 오늘 하루에 얼마나 행복과 평화와 충만함을 주는 ‘경험’ 인지에 집중하면 어떨까. 내가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혹은 내가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이나 도구로써 유의미한 어떤 단계가 아니라 말이다. 

커리어 여행자를 위한 카페 ‘임팩트캠퍼스’

루트임팩트에서 2021년 구글닷오알지와 함께 시작한 임팩트캠퍼스 프로젝트는 그렇게 커리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 같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각자의 여정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선택지를 제공해 유용하면서 든든한 카페말이다.  모두가 한 방향을 보며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기를 바라며 획일화된 자원을 계속 공급하는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을 각자가 원하는 속도로 탐색하고, 각자 필요하고 원하는 여정을 출발하는 – 그 첫 걸음을 떼는 부담을 낮추어주는 것이 구글닷오알지와 루트임팩트가 만들고 싶었던 변화 중 하나이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시작할 용기를 주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출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에 필요한 것을 조금 더 부담없이 챙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 위치한 ‘피어엑스’ (임팩트캠퍼스 캠퍼들이 자유롭게 배움을 얻고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약 7개월의 시간 동안 임팩트캠퍼스를 통해 짧게는 몇 시간의 커리어 멘토링부터 길게는 몇 달 간의 디지털 스킬셋을 배우고 취업까지 목표하는 부트캠프까지. 약 450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또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 짐을 챙기고 준비를 하며 느끼는 피로와 설렘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준비를 하다 여행의 목적지를 바꾸거나 여행의 기간을 조정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듯이, 임팩트캠퍼스에서의 준비 역시 그렇게 나에게 맞는 나의 여행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 더 바란다면, 우리의 하루 하루가 경기나 경주가 아닌 여행임을, 뭔가 쌓아 나가고 이루어내고 지금의 나로부터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무나로 – 그냥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과정의 매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여행의 종착지에서는 결국 전부라는 것을 어느 순간에는 깨달았으면, 또 기억했으면.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