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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에세이

도시에서 우리는 ‘진정한 집’을 만날 수 있을까

체인지메이커 in 루트임팩트

2021년 10월 25일
루트임팩트 김은영 공간 디렉터

사는 집인가? 살아가는 집인가?

수년 전 동네 모퉁이에 있는 버려진 땅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근방에서 제일 작은 집을 지었다. 단독주택에서 자란 나와 다르게 아파트 키드로 자란 남편은 주택살이에서 예견되는 온갖 가꿈 노동에 대한 염려를 갖다 대며 내 생각을 돌려보려고 애썼다. 허나 물러나지 않고, 언뜻 불편해 보일 수 있는 생활 이면에 펼쳐질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를 들이대며 현혹시키고 말았다.

언덕을 한참 올라 숨이 차다 싶으면 불쑥 보이는 몽땅 연필 같은 집은 볼 때마다 반가웠고, 아이들은 친구 다섯 명도 거뜬히 함께 잘 수 있는 넓은 다락방을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장보기도 어렵고, 걸어서 등교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매일의 이야기가 쌓이는 남다른 집이 되었다.   

그런데 때때로 동네에서 마주치는 어르신은 30년 일하며 모은 은퇴자금으로 노후를 위해서 다가구 주택을 고생하며 지었는데, 관리할 건 많고 집값은 강남 30평대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된다며 푸념하시곤 한다. 이렇게 집은 우리의 일상속에서 수시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기도 하고, 대놓고 티내진 못해도 오르는 집값에 미소짓게 하는 요물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집은 살아가는(거주) 터전이면서 동시에 한 가족의 절대적 자산으로서의 사고 파는(매매) 큰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사용과 경험의 가치로서의 집을 향유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소셜섹터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여정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나누고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디웰하우스가 그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집은 여전히 소유의 대상이자 목표물이다.  

타인의 시선과 경제적 관점 이면의 집을 탐구하다. 

나만의 내면의 소리에 주목하고 거주의 형식을 정의하고 찾는 과정은 이제껏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일이었다. 타자의 소리 즉 역세권, 교육 특구, 집값 상승 예상지역, 신도시, 방 3개, 가족 구성원의 상황 등에 나의 거주 방식이 결정되어 왔다. 그러나 ‘거주한다는 것’은 의식주(衣食住) 그리고 업(業), 락(樂), 휴(休) 등 생활 전반의 기반이 되는 터전이다. 

물질적 가치로 쉽게 측정되고 교환될 수 있는 새로 지은 브랜드 아파트로 대변되는 집에 대한 표준화된 소유의 욕구를 넘어, 나의 삶과 가족 그리고 이웃의 기억을 담는 장소로서의 집의 의미 그리고 그러한 여정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때마침 집과 디자인(Design for Home) ‘거주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Home’에 대해 디자인적 관점에서 고찰한 콘텐츠 발굴하는 DDP 오픈 큐레이팅 공모에 선정되었다. 기존에 집을 테마로 하는 많은 전시들이 주로 도시적 문제 속에서 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관점에서으로서 멋지고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집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나는 오롯이 개인의 미시적 역사로서의 과거와 현재의 집에 대한 여정과 삶과 일의 트랙과 연속된 나다운 집에서의 소소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감없이 나눠보고 싶었다.   

곧바로 정형화된 도시적 삶 속에서도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불편해도 자연에 다가가기 위해 기꺼이 계단 많은 산동네를 선택한 1인 가구, 오랜 외국 생활 후 귀국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작은 한옥을 정성껏 지은 신혼 가구 그리고 함께 식사하고 아이를 키우며 관습화 된 가족의 의무를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강요하지 않는 비혈연 공동체 가족 등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자기다운 집을 실현해 가고 있었다. 

기록을 함께 나누는 이들이 퍼소나(persona)의 표본 안에서 공감하고 각자의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세대, 생애주기, 성별, 가족 구성원, 주거 유형을 의도적으로 다양하게 구성해 보았다. 상황은 달랐지만 자기 결정권에 의한 주거 생활의 기준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일과 삶 그리고 집의 모습이 서로 참 많이 닮아있었다. 

삶과 집의 모습이 서로 닮은 남다른 그들을 엿보다.

집의 본질, 나와 공동체.

집의 본질은 무엇일까? 누구와 함께 살아가야 할까? 진정한 집에 대한 질문의 시작에 있어서 떠오른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온기가 있는 가족과 이웃을 원했고,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보다 더 나은 우리 집을 만들어 가고 싶어 했으며, 가족이 아니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야기 가득한 오늘의 행복을 누리는 집 – 박미소, 오늘공동체 유치원 교사
도봉구 도봉동 오늘공동체에 거주하는 박미소 님은 공동체가 삶이자 곧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오늘공동체 아이들을 위한 선생님이 되었고, 지금은 50인이 넘는 비혈연가족과 더불어 “행복한 오늘”을 즐기며 생활하고 있다. #비혈연 가족 공동체 #부족 #여행자의 집 #24시간 공동돌봄 #오늘 공동체

지속 가능한 삶과 집.

탄소배출량은 늘어만 가고 쓰레기는 쌓여만 간다. 미세 플라스틱은 생명체 곳곳을 침투하고 있고, 폭염, 폭우, 침수 등 전례없는 자연재해가 일상이 되고 있는 오늘이다. 지구는 더 이상 탄력회복성을 잃어 치유 불가능할까? 생태적인 환경과 더불어 살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고, 나와 이웃을 위한 동네의 환경을 변모시켜 가는 이들을 통해 한 가닥 희망을 머금어 본다.

자립을 위한 생활기술을 스스로 배우고 나누는 삶 – 정재욱, 생활기술연구가
마포구 성산동 다세대주택 1.5층에 거주하는 정재욱님은 예술가로 시작해서 지금은 스스로 살아가기, 삶의 기술, 뚝딱뚝딱 손으로 만드는 일, 자전거로 달리는 세상, 느리고 불편한 삶, 사라지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비전화기술 연구가 #작은일 활동가 #햇빛식품건조기 #느리고 불편한 삶 #자전거로 달리는 세상

나에게 선물 같은 집으로의 초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에너지를 저감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타인의 시선과 사용 편의적인 관점으로만 살아가게 된다. 결국 물건을 함부로 소비하고 쉽게 버리며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힘들어진다. 여기 자신의 소리에 주목하고 ‘자기다운 집’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서 보이지 않는 집이 주는 가치를 주목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삶과 일 그리고 거주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찾고 한 걸음씩 실현해 가고 있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한옥에서의 일상 – 김기재, 스트라드비젼 People & Culture Head
종로구 누하동 작은 한옥에서 거주하는 김기재님은 함께 재미있게 일하고 성장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좋은 회사를 꿈꾼다. 오랜 외국 생활 후 다시 돌아와서 2020년 서촌에 고즈넉한 한옥을 짓고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한옥 #인왕산 #서촌 #달리기 #즐거운 기억 #보이지 않는 따뜻함

마지막으로, 진정한 집을 만드는 사람들.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 진정한 집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만들어 가는 이들이 있다.  MZ세대들이 ‘적정비용으로 내가 머물고 싶은 도시에서 자기답게 살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을 위해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형주택을 표준화하고 맞춤화하여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혈연 가족’ 아니면 ‘1인 가구’라는 이분법적인 사회적 논의를 넘어, 포용적이고 사회통합적 주거로서 시니어 공동체 주거와 청년들을 위한 지역 교류형 주거를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합심하여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들은 역시 모두들 자신의 삶과 일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생업일체!

‘나’라는 공간에 ‘즐거운 기억’과 ‘보이지 않는 따뜻함’을 채우다. 

집은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하고 벗어나고 싶은 공간 일 수 있다. 또한 나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매개물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가족의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지만 동네의 표정을 일구는 경관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집은 수많은 복합적인 가치를 담고 있음에 틀림없다.  

생활 편의적이고 경제적인 관점 이면의 집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집은 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해요. 이 안에는 나도 있고 가족도 있고 나의 과거 기억, 생활 패턴, 취향 그리고 삶의 철학도 담겨져 있어요.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가장 큰 대상으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과 활동이 나를 그대로 대변해 준다고 느껴요. ‘나’라는 공간에 ‘즐거운 기억’과 ‘보이지 않는 따뜻함’을 채워가고 싶어요.” 라는 어느 퍼소나의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멋지고 세련된 공간을 꿈꾸기 전에 나의 일상을 담는 그릇에 어떤 이야기들을 수북하게 담을 것인가가 먼저다. 나 자신도 우리 가족의 오늘을 충만하게 만드는 안식처를 만들고 가꾸는 것을 넘어, 각자의 진정한 집을 절실히 원하고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방향과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이자 선배로 한 발 더 가까이 성큼 다가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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