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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에세이

코로나19 속 ‘안녕(Hey)한 일터(ground)’를 지키는 일

루트임팩트가 일하는 방식

2022년 03월 22일
루트임팩트 김혜린 매니저

헤이그라운드 매니저의 위기대응 고군분투기

감염병 대유행의 위기로 열심히 해오던 일이 사라졌다. 은은한 좌절감이 몰려왔다. 위기는 당연시 여겨온 일의 본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헤이그라운드는 임팩트 지향 조직을 위한 커뮤니티 오피스다. 멤버가 사회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더 나은 업무 환경을 만든다. 멤버가 헤이그라운드에서 일할 때만큼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길 바랐다. 지난 2년 간 헤이그라운드 팀이 감염병에 대응하며 고군분투한 경험담을 풀어보겠다.


헤이그라운드 문 닫은 날

2020년 2월 21일 금요일, 헤이그라운드 오픈 이래 처음으로 양 지점 모두 셔터를 내렸다. 확진자 수가 적어서 ‘00번 확진자’로 번호를 매기던 때였다. 헤이그라운드와 2.5km가량 떨어진 사근동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팀에서는 공간을 비우고 전 공간을 소독하기로 했다. 입주 멤버에게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팀원들과 사무공간, 회의실, 공용공간을 돌아다니며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오후 8시 즈음 소독 업체가 도착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텅 빈 로비에 앉아 소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금요일 밤 9시에 불 꺼진 헤이그라운드라니. 생경했다.

그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헤이그라운드 팀은 코로나19로부터 팀원과 멤버를 보호하고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웠다.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 뭐죠?

헤이그라운드는 멤버가 서로 연결되고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공간은 우연한 마주침을 의도하여 설계되었고 110여 개의 조직과 1,100여 명의 멤버가 일하고 휴식하는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감염병의 렌즈로 헤이그라운드를 들여다보면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임이 분명했다. 멤버가 헤이그라운드에서 감염되거나,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띵해졌다. 안전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헤이그라운드 팀은 감염 예방과 확산 방지를 목표로 24시간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위기상황을 6단계로 나누고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수립했다. 

  • White: 감염병이 종식되기 전까지 일상적 상황
  • Blue: 멤버 중 코로나 의심자 발생 또는 의심자가 헤이그라운드 방문한 상황
  • Yellow: 멤버 중 확진자 발생 또는 확진자가 헤이그라운드 방문한 상황
  • Orange: 멤버 간 n차 감염되어 2~4명 확진자 발생한 상황
  • Red: 멤버 간 n차 감염되어 5명 이상의 확진자 발생한 상황
  • Black: 헤이그라운드 팀원 중 확진자 발생한 상황

멤버는 본인 또는 동료 구성원이 위험에 처했을 때 긴급 내선 번호와 대표 이메일로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멤버 전용 웹/앱에서는 코로나19 대응 안내 문서를 열람할 수 있다. 안내 문서에는 생활 수칙, 사적 모임 기준, 대관 행사 가이드라인, 회의실 이용 가이드라인, 코로나 의심자 또는 확진자 발생 시 대응 요령, 퇴실 및 정보 공유 가이드라인, 감염 예방 조치를 명시해 두었다.

2020년 하반기, 2021년 상하반기에 전체 멤버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대응 만족도를 물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멤버 중 82.4%가 “현재 수준이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걱정 없이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다.”, “빠른 대처와 간결 명료한 정보전달 덕분에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피드백했다. 

위기상황 시 커뮤니케이션은 상호 신뢰를 쌓는 주춧돌이 된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의 주재료는 2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투명성이다. 덮어놓고 지나가면 화를 못 면한다. 안전과 관련한 이슈라면 더욱이 신속하게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상황을 공개하는 게 옳다. 개인이 위험 정도를 판단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데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지속해서 제공해야 한다. 둘째, 배려하는 태도다. 의도와 상관없이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슈는 불안감, 긴장을 조성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서로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 혐오하는 감정을 쌓지 않도록 표현에 유의한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말은 “멤버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말로. “밀접접촉자”는 “밀접접촉 이력이 있는 동료 구성원”으로 표기한다. 소속회사와 성별을 추측할 수 있는 개인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다정한 마음과 신뢰를 잃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진짜 고군분투는 이제 시작이다 

헤이그라운드 팀원에게는 정해진 역할이 있다. 확진자 소통에 필요한 메시지, 멤버 전체 대상 공지용 이메일과 문자 템플릿도 만들어두었다. 각자가 해야 하는 일을 찾느라 헤매지 않고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이기 위함이다.

  • 비상대응 책임자: 방역당국 협조, 감염확산을 막는 후속조치 결정 등 팀 리드
  • 팀원 A: 확진자, 소속회사와 소통하여 사실관계 확인 및 협조 요청
  • 팀원 B: 상황 발생/종료 시 멤버 전체 대상 이메일과 문자 발송
  • 팀원 C: 파트너사 및 소독업체와 소통하여 공간에 필요한 조치 실행
  • 팀원 D: 상황 발생 시 (비)대면 문의 응대

현장에서는 일사불란한 팀워크가 펼쳐진다. 매뉴얼과 템플릿은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실수를 줄여주고 신속 정확한 소통에 참고서가 된다. 도움이 되지만 일이 쉬워진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상황에서는 매뉴얼에 없는 변수가 끊임없이 튀어 올랐다. 템플릿은 수시로 바꿔야 했고 의사결정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려고 노력할 뿐. 시행착오와 갈등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복잡성과 한계를 수용하면서 깨달은 것들

첫째, 헤이그라운드는 업무 공간이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안전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확진자가 나왔으니 당장 짐을 싸서 귀가하세요! 위험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면 복귀하세요.” 바이러스 치사율이 높을 때 가능한 조치다. 요즘 같은 때 확진자와 밀접접촉 후 음성 판정을 받은 멤버가 당장 내일 중요한 IR로 사무실 출근이 불가피하다면? 의사 결정하는 개인의 안전 민감도에 의존하여 상황을 판단하면 안 된다. 다각도로 위험 상황을 살피되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믿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말 최선인가?) 두려울 때도 있지만 한 번 결정하면 더는 주저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배짱이 필요하다.

둘째, 방역 당국의 지침을 마냥 따르거나 기다리기엔 위험부담이 있다. 3월 16일 일일 확진자 수는 62만 명을 넘어섰고, 3월 21일 기준 35만이다. 방역 당국은 오미크론 대비단계에서 대응 단계로 방역체계를 개편했다. 잠재 위험 상황에 대비하는 데 개인과 공동체의 몫이 커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방역 당국보다 약하거나 강한 조치를 바라지 않는다. 딱 적당한 조치를 바란다. 머리에서 김이 난다. 헤이그라운드 팀은 급증한 확진자 수에 따른 현실적인 상황과 방역 당국의 기조에 맞춰 대비단계 조치를 완화했다. 코로나 종식까지 단계적으로 정책 완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가능한 선에서 필요한 선제 조치가 무엇인지 고민하여 실행하고 있다. 바이러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헤이그라운드 운영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팀이 전문가니까.

셋째, 멤버 1,100여 명 모두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동료들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회의실 권장 수용인원과 이용 크레딧을 절반으로 줄이고, 엘리베이터 탑승 인원 제한 등의 조치로 업무 공간 밀집도를 낮췄다. 동료들과 공간을 돌아다니며 생활 수칙 계도기간을 가진 적도 있다. 계도라고 하나, “생활수칙 어겼으니 이만 퇴장해 주세요.” 할 수는 없는 노릇. 환영받거나 환영받지 않는 행동 양식을 만들고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건 한계가 있다. “이거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헤이그라운드 팀에서 할 수 있는 물리적 조치를 강화했다. 정기 방역은 월 1회에서 주 2회로 늘리고, 공용공간 문고리(손잡이)는 매일 1회 이상 소독한다. 여러 명이 공유하는데 일렬로 배치되어 이동이 불가한 테이블에는 칸막이를 설치했다. 

위기 대응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안전한 일터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현실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고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팀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소진이 심화해갔다. 헤이그라운드 팀이 속한 루트임팩트는 자율 근무가 복지인 조직이지만, 현장 대응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안전과 자율을 조금씩 희생한다. 멤버의 안전과 동료의 안전이 양 끝에 앉은 시소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분이 들 때면 진짜 속이 상한다. 기존의 업무 강도를 유지하면 무게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응 인원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고 1시간 이내 대응 업무를 마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대폭 간소화했다. 템플릿은 Ctrl C + Ctrl V 해도 될 만큼 수정을 거듭했다. 일을 덜어내는 건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덜어내자고 마음 먹으면 꽤 덜어내지더라. 어떤 부담은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좀 덜어주는 게 건강한 팀워크를 만들기도 하더라. 우리가 멤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동료의 정신적, 육체적 소진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계속해서 찾아가야 할 것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헤이그라운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한 지 3년이 되어간다. 평소엔 커뮤니티 이벤트를 기획하고 뉴스레터를 만든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팀원 B이자 비상 대응 책임자로 역할 한다. 

위기 대응은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해온 일과는 다르다. 업무 소요 시간은 짧은데 과정과 결과에 성취감이랄 게 없다. 당연히 재미도 없다. 이 기회에 엄살을 좀 부려보자면, 쉬는 날에는 코로나 악몽을 꾼다. 업무시간이든 아니든 울려대는 전화벨이 무섭다. 출처도 모르고 ‘코로나 터졌나?’, ‘못 본 척 안 받을까.’, ‘주말인데 오늘만 잠수탈까.’ 온갖 내적갈등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일보다 최선을 다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위기 대응은 특별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나와 동료의 일상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일상을 잃지 않은 매일이 내 일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나는 단단히 성장했다. 커뮤니케이션 노하우가 쌓였고 위험상황을 판단하는 시야가 넓어졌다. 형식적인 의사결정에 갇히지 않고 자아를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기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것, 중요하다. 감염되고 나서 회복하고 무사히 일터로 복귀하는 것, 더 중요하다. 이렇게까지 진심이 되어버린 이유는.. 모르겠다. 누구나 아프고, 어느 정도 앓다 보면 회복하기 마련이다. 그저 내 옆에 앉은 동료가 감염을 걱정하느라 일상생활을 충분히 누리지 못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감염된 동료가 다른 동료에게 미쳤을지 모를 영향으로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료가 아프면 무사히 복귀하길 기도하고 응원하면서, 동료가 복귀하면 진심으로 환영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하길 바란다. (감염병도 부디, 나와 동료들의 삶에서 이제 그만 나가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수립하고 탁월하게 팀을 이끌어주신 리더와 위기상황에서도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오늘도 계신 곳에서 모두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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