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일상을 지키는 비즈니스
A Route to Impact
A ROUTE TO IMPACT 08. 알브이핀(마르코로호) X 팬시 디자인 제품 MD
루트임팩트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커리어의 출발선에 있는 사람은 물론, 이미 커리어 여정 한가운데 있는 사람일지라도 매일의 업무 속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A ROUTE TO IMPACT>는 어떠한 경험과 역량, 전문성이 임팩트와 커리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지 소개합니다. 우리의 일이 임팩트를 만들고, 그 임팩트를 통해 우리의 커리어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임팩트 커리어를 통한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
나의 할머니, 우리의 할머니
어린 시절 기억하는 할머니 댁은 언제나 정겨움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손때 묻은 빛바랜 물건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고 단출하지만 예스러움이 깃든 공간에서 할머니는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내어 배불러 하는 손주를 그저 행복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할머니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할머니란 따뜻하고 푸근한, 늘상 내 편이 되어주었던, 그런 분이겠지요.
할머니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할머니는 미소를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 자살예방백서’에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2015년 기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18.8명보다 훨씬 높고 2위 슬로베니아 38.7명과도 큰 격차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전 인구대에서 노령화될수록 자살률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은 10대는 5.8명, 20대 17.6명, 30대 27.5명, 40대 31.5명, 50대 33.4명, 60대 32.9명, 70대 48.9명, 80대 이상 69.8명으로 50대 이후부터 늘기 시작한 숫자는 70대 이후 눈에 띄는 높은 증가 수치를 보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제적 이유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은 32.9%로 15세 이상 인구 전체 고용률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노년이 되어서도 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인 셈이죠. 그럼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은 무너져내리고 있었죠.
이는 노인 빈곤율 지표에도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들의 상대빈곤율, 즉 우리나라 중위소득을 100으로 보았을 때 소득이 50%도 되지 않는 노인들의 빈곤율은 46.7%에 달합니다. 2014년 기준으로 국가 간 비교를 보면 OECD 평균 12.1% 보다 4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더 슬픈 사실은 할머니들은 그중에서도 할아버지보다도 더욱더 빈곤의 사각지대에 내 몰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달 1일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0.3세, 여성은 86.3세로 나타났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평균 6년 이상 더 삶을 영위하고 할아버지 대비 사회생활의 경험이 낮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할머니에게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아 줄 수는 없을까,
소셜벤처 알브이핀의 시작
알브이핀은 바로 이런 사회 문제에서 출발한 기업입니다.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고 싶다’는 의미가 담긴 ‘Real Value Finder’의 약자인 알브이핀은 ‘할머니 감각’으로 재해석한 소셜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르코로호’를 비롯, 수공예 브랜드인 크래프트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알브이핀을 창업한 신봉국 대표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신 대표는 군대 시절 높은 노인 빈곤율을 자랑하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주시는 노인 고령화 비율이 31.3%로 노인 인구가 매우 높은 곳입니다. 통계청에서 집계한 전국 인구의 고령화 비율 15.6%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이지요.
신봉국 대표는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덕에 할머니들이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매듭짓기, 바느질 등 소소하지만 맵시 좋은 손재주를 지닌다는 점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할머니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죠. 마르코로호와 함께 하는 할머니들은 약 스무 명 안팎으로 팔찌와 매듭 악세사리, 마스크 목걸이까지 다양한 수공예품을 제작하고 계십니다. 할머니들께서 제품을 만들면서 얻는 경제적 수입 외에도 한 번이라도 서로 더 얼굴을 보게 되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교류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마르코로호가 창출하는 또 다른 사회적 가치인 것이죠. 즉 마르코로호의 임팩트는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할머니들께 안전한 생활 환경을 제공,
- 할머니들의 사회 참여를 돕고,
- 할머니들의 자존감 회복을 돕습니다
‘예쁜 촌스러움’을 알아보는 레트로 덕후를 위한,
마르코로호 팬시 MD
이러한 마르코로호의 임팩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할머니 감각’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고 그것을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바로 ‘머천다이저(merchandiser)’, 흔히 ‘MD(엠디)’라고 불리는 직무가 그것이지요. MD는 상품 기획 및 진열 등 전반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입니다. 특히 소비재 및 유통업계에서는 MD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최종 고객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MD는 시장 트렌드를 읽고 소비자의 니즈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MD는 시장의 흐름에 맞는 제품을 찾아 나설 수도 있고, 세상에 없다면 직접 기획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거시적으로 트렌드를 읽고 미시적으로 소비자의 세심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마르코로호의 팬시 MD 업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커머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 고객의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 트렌드 리서치를 통해 시장 현황을 파악합니다.
- 팬시 및 디자인 제품을 기획, 디자인하고 생산합니다.
- 제조 공장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생산관리를 진행합니다.
- 고객의 반응을 통해 제품을 개발, 개선합니다.
소셜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하는 마르코로호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성은 ‘예쁜 촌스러움’입니다. 마르코로호가 운영하는 블로그 ‘말코 사랑방’에 따르면 예쁜 촌스러움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오래된 물건이나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멋스러운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해요, 이걸 ‘예쁜 촌스러움’이라고 부르고 있죠.”
예를 들어볼까요? 할머니의 오래된 추억 속에 살아 숨 쉬는 할아버지와의 첫 데이트를 떠올리며, 발 그레한 두 볼을 닮은 ’꾸러미 큐빅 분홍’ 실반지나 겨울이면 손끝이 노랗게 변하도록 먹는 귤색을 담은 ‘롤러장 감귤색’의 귀걸이가 탄생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마르코로호가 지키는 약속이 있다고 하네요. 마르코로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인 할머니들께서 이해하시기 쉬운 표현을 쓰고 배꼽 잡는 농담과 배려가 몸에 밴 할머니들을 따라 재치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죠.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정(情)이 깃든 디자인 제품, 뭔가 특별할 것 같지 않나요?
마르코로호의 팬시 MD가 만들어갈 임팩트
마르코로호의 MD는 할머니의 감각과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교량(bridge)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즉 마르코로호가 추구하는 ‘임팩트’가 실현될 수 있도록 ‘비즈니스’로서 할머니의 일상을 지켜드릴 수 있죠.
정리하면 MD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켜켜이 쌓인 세월에 가려 자칫 촌스러움으로 끝날 수 있는 제품을 ‘예쁜 촌스러움’의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고, 이러한 업무를 통해 할머니의 일상을 되돌려드리고 지켜드린다는 적극적인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쉬이 가시지 않는 ‘레트로’ 트렌드의 정점에서 유행의 최첨단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장점 아닐까요.
디자인의 출발은 ‘공감’에서 출발하듯, 위협받는 할머니의 여생과 그분이 지닌 숨겨진 재주에 공감하는 분 그리고 옛 것을 새롭게 만드는 안목과 감각이 있는 분이 마르코로호와 함께 만들어갈 변화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