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아틀란티스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현대 인류에게 지도란 20세기 중반 이후로 꽤나 안정적이었다. 아주 드물게 새로운 정부와 함께 국가명이 변경되는 사례가 있었지만, 그게 아닌 이상 국경선이나 대륙의 해안선 등은 매년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최근 주요 거점 도시가 낮은 해발고도에 있는 국가,즉 싱가포르·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이 큰 고민에 빠진 것은 이 ‘당연한 일’이 더는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에도 위험한 상황임을 뜻한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으면서, 전체 담수의 75%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해온 자체가 상승하면서 부피가 커져 전 세계적인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NASA와 유럽 인공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평균 2.5mm씩 상승하던 해수면은 2010년대 말에 연평균 3.4mm씩 상승하고 있다. 해빙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것을 고려해보면 앞으로 해수면 상승은 점점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과학 비영리 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이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게재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해수면이 10cm 상승할 때마다 해안 지역에 홍수와 범람이 일어날 확률이 2배씩 상승한다. 현재 추세대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악화하면, 2050년에는 아시아에서만 1억명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이 매년 만성적인 침수 피해를 당하게 된다. 광저우·셴젠이 위치한 주강 삼각지 지역, 베트남 남부,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거점 도시들, 방콕 등이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이러한 침수 피해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공단들과 조선소 등이 해안선에 자리 잡고 있고, 대부분의 공항도 고위험 지역에 있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태풍이 올 때마다 최소한의 피해가 발생하는 경로로 지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해수면 상승은 너무나 거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기업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대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는 이미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을 4조원가량 마련했고, 미국은 아예 국가 안보 위기로 인식하고 미군 육군 공병(US Army Corps of Engineers)에서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중이다. 민간 섹터에서는 그나마 볼보 정도가 계열사인 볼보 엔지니어링을 통해 다양한 방파제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
2050년까지 ‘완전 침수’가 아닌 ‘잦은 범람’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심지어 한국의 경우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머나먼 일처럼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해수면 상승의 정말 무서운 점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수재민을 발생시킬 가능성이다.
대부분의 기후 과학자들은 기후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2020년 이후 점진적으로 빠르게 악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취약 지역에는 2030년부터 실존적인 위협으로 느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이른 시일 안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투입될 수 있는 몇몇 도시를 빼고는 안전하지 않은 곳이 돼버린다. 수천만이 거주하는 지역은 1년에 한 두 달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 될 테고, 그 사람들은 어딘가로 살아남기 위해 이동을 해야 한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유럽의 정치적 안정을 붕괴시켰다고 할 수 있는 시리아 난민 사태의 규모가 200만명가량이었다. 앞으로 한 세대 이후에 기후 변화로 인한 난민들이 발생할 때 과연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해당 칼럼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2021.1.5)에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