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과학, 시민이 구한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③
[인터뷰] (사)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 김찬현 대표, 김래영 사무국장
“오염수 문제, 정치가 답해야 하는 영역에 과학 소환한 꼴”
과학의 정치도구화 막을 수 있는 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시민들이 과학적 사고에 기초해 집단지성 만들어가는 모습 꿈꿔
ESC,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사유로 뿌리내린 과학문화운동 전개할 것”
“정치가 답을 해야 하는 문제에 과학을 끌어들인 꼴이죠.”
김찬현 사단법인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ge, 이하 ESC)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학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하며 이 같이 말했다.
‘오염수 방류가 안전한지에 관해서는 오히려 과학이 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찬현 대표는 “안전하다는 ‘과학적 판단’과 방류 결정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별개의 문제”라며 “과학자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정부는 오염수 방류 결정을 규탄할 수 있다. 결국 최종 결정은 정치가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과거에 환호를 받았던 과학적 판단이 현 시점에 와서 외면 받거나, 과거에 외면 받았던 과학적 판단이 현 시점에 와서 지지를 받는,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해요. 실제로, 수십 년 전에는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과학자들이 절반 정도였으나 지금은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잖아요.”
김찬현 대표는 “과학적 판단에 대한 오류로 그 피해를 감당하는 것은 사회 전체다. 결국 책임은 시민들과 사회 전체가 지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결정하지 못하는, 또는 정치가 결정해줘야 하는 영역이 따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것을 명분으로 정치가 과학적 판단을 경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하자, 김찬현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앞단과 정치라는 뒷단 사이에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사유로 뿌리내린, 튼튼한 과학문화 네트워크가 필요한 거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결국 시민”이라며 “과학이 정치를 무시하지도, 정치가 과학을 잡아먹지도 못하게 시민들이 그 자리를 점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기 위해 ESC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시민들도 과학기술을 주제로 자발적이고 공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있어
ESC 홈페이지에 가면 다음 세 가지 선언을 확인할 수 있다.
1. 우리는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방식과 자유로운 문화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 2. 우리는 과학기술이 권력집단이나 엘리트만의 소유가 아니라 시민의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적 과학기술 활동을 추진한다. 3.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동참한다. |
ESC는 2016년 6월,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사회를 함께 추구한다”며 세상에 등장했다.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과학기술학자, 과학기술정책 연구자, 과학교사, 과학커뮤니케이터, 기업인, 작가, 언론인, 방송인, 디자이너 등 약 550여명이 넘는 시민들은 과학을 문화의 하나로 이해하고, 모든 시민들이 과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폭넓게 교류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김래영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과학을 경제파트에서 다루고 있지만, 우리 단체는 과학을 문화의 한 종류로 인식한다”며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과학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한국에서는 소수의 목소리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이런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의 2020년 일반논평 25호를 소개했다.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에서 2020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과학기술 조항 일부에 관해 ‘일반논평 25호’를 발표했어요. 요약하자면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는 모든 사람이 과학의 진보에 참여하고 그 방향에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다’는 뜻이에요.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과학전문가들만 관련될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과학과 과학지식 보급도 포함된다는 거죠. 따라서 국가는 과학 활동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막지 않고 오히려 촉진시켜야 한다는 게 논평의 주요 내용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정말 과학기술을 놓고 자발적으로 토의하고 집단적 의사결정이 가능한지 묻자 김찬현 대표와 김래영 사무국장은 동시에 “가능하다”며 “ESC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래영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단체 성명서를 발표할 때, 임원진이나 사무국이 아젠다를 정한 경우는 없다”며 “모두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하고 토론을 거쳐 의제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ESC는 단체 공식 성명서를 발표할 경우, 전체 회원 수의 과반이상이 표결에 참여하고 그 중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회원 수가 약 550여명이니, 의제 설정부터 표결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김찬현 대표는 꾸준한 학습과 상시적인 교류를 비결로 꼽았다.
“갑자기 되는 건 거의 없죠. 누적된 학습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ESC는 ▲대중강연 ▲세미나 ▲타운홀 미팅을 통해 회원들을 만나요. 대중강연을 통해 과학적 지식의 기초를 다져주고 세미나에서 특정한 주제를 놓고 발제와 토론, 스터디를 진행하며. 마지막 타운홀 미팅에서 대규모 인원이 다양한 주제를 놓고 집단으로 토의하는 방식이죠. 저는 이런 경험을 누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약 이런 경험을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도 많이 한다면,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담론을 형성한다는 게 마냥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보고요.”
ESC는 이제 단체 밖 시민들과 함께 집단지성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김찬현 대표는 “우리 사회가 사실 분열된 사회지 않나. 본인들이 한번 정한 의견이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며 “바람이 있다면, 그런 분열된 의견들조차 ESC에 들어와서, ESC의 다양한 전문가 그리고 관점과 소통하면서 함께 녹여봤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의 큰 방향이고 목표”라고 밝혔다.
김래영 국장은 “올해부터 ‘프로젝트 50’이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1년 동안(약 50주) 매주 일반 시민들을 만나 과학 이야기를 펼쳐보겠다는 기획”이라며 “아무래도 일반 시민들을 많이 만나는 만큼 단체를 알리고 회원을 늘릴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만, 김 대표가 얘기한 것처럼 단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에필로그] 우리가 비영리로 시작한 이유
Q. 두 분은 원래 무슨 일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김찬현 대표(이하 김): 나는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학부와 대학원(석사)에서 물리를 공부했고 이후 한국에 귀국해서 하이닉스에서 선임연구원으로 4년을 일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1년 정도 과학기술 서적 통번역가로 일을 했고 그러다가 초대 대표이신 윤태웅 고려대 교수님 소개로 이곳에 합류했다.
(하이닉스는 왜 그만둔 건가?)
대표: 사회와 분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도체 하면 산업역군이라고 하는데, 딱 그렇게 기능적으로 분류되는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사회와 조금 더 다양하게 연계하면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김래영 사무국장(이하 국장): 나는 법학을 공부했다.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는데, 학부때부터 박사과정까지 모두 법학을 공부했다. 법학 중에서도 민법을 공부했고 특히 로마법 전공이다. 김찬현 대표가 한번 합류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합류하게 됐다. 전공은 법학이긴 한데, 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Q. 비영리로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대표: 내가 설립 당시 사무국장으로 법인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발기인들이 민주주의와 민주적인 절차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1인 1표 원칙 하에, 사원들의 총의가 단체 운영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우리 단체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Q. 비영리단체 운영은 할 만한가?
국장: 사실 단체 입장에서만 보면 제약 사항이 많다. 하지말라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이게 허가제 보다니까 주무관청의 재량에 의존하는 것도 피곤하고. 단체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 있다. 뭔가 단체가 어떤 성과를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다시한번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대표가 말한 것처럼, 우리 단체는 시민들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명 한명이 총의를 모아 단체를 운영해 나가는 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은 든다.
Q. 주어진 예산이 작아서 운영이 힘들지는 않은가?
국장: 그건 ‘운영의 묘’ 문제인 것 같다. 우리도 사람을 쓰는데, 만약에 일이 너무 많아서 이 사람이 초과근무를 해야 할 것 같다 싶으면 저희는 일을 줄여버린다. 초과비용을 낼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일을 하도록 업무 스케줄을 짠다.
Q. 브라이언임팩트x헤이그라운드 비영리멤버십(이하 비영리멤버십)에 선정됐다. 신청 계기는 무엇인가?
대표: 전에 있던 직장이 헤이그라운드 입주사였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우리가 지원할 때 즈음에는 마침 비영리 조직들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고 했던 시기여서, 국장에게 추천해줬다.
무엇보다 나는 헤이그라운드가 다른 공유오피스들에 비해 비영리조직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네트워킹에 상당히 유리할 거라는 기대도 작용했다.
Q. 만족스러운 점을 말해 달라.
국장: 정말 필요한 지원을 해준다. 현재 입주공간 지원과 ‘임팩트커리어NPO 프로그램’ 이 두 가지를 받고 있다. 입주공간 지원은 당연히 만족스럽다. 이렇게 저렴하게 이용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리고 ‘임팩트커리어NPO 프로그램’ 지원도 받고 있다. 3개월 동안 2명의 인턴을 채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표가 네트워크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 입주하니까 루트임팩트에서 커뮤니티에 초대해줬다. 덕분에 단체들과 오고가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최근 그 중 한 곳과 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서로가 가진 역량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해보자고 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확실히 협업 측면에서도 비영리멤버십이 장점이 있다.
- 인터뷰 : 소셜임팩트뉴스 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