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상황에 노출된 모두가 회복력을 갖춘 주체가 되도록 돕습니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⑳ 더프라미스 김동훈 상임이사
재난일상화 시대, 시민공동체 상호 ‘돌봄’에 집중
재난 취약계층인 노인, 아동, 장애인을 고려한 수요 맞춤형 재난교육 필요해
최근 우리나라도 재난 양상이 다양해지고 강도도 높아졌다. 기후위기도 한 몫한다. 과거에 ‘재난 사례’를 이야기할 땐, 주로 해외 사례를 인용해야했지만 이젠 우리나라 사례만으로도 충분하다. 재난이 일상이 된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재난, 시민인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 재난사회복지전문기관 사단법인인 더프라미스를 찾아가 물었다.
더프라미스는 2007년에 국제구호 협력기구로 출발했다. 그동안은 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해외 가난한 나라에 가서 학교도 짓고, 교육도 하고, 우물을 파거나 보건소를 세워왔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대홍수나 대지진, 또는 감염병과 전쟁과 같은 재난 사례가 국내외로 많아져 요즘은 재난 구호활동에 초점을 두고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은 물론, 그동안 아이티·네팔·모로코지진과 미얀마쿠테타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발생할 때마다 재난 현장을 찾았다. 이처럼 더프라미스는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기후위기, 사회적참사, 감염병, 전쟁 등 재난 상황에 대응하며 특히 시민공동체가 위기에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회복력을 갖추는 일을 돕고 있다.
시민 스스로가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회복력을 갖출 수 있을까? 조직을 이끌고 있는 김동훈 상임이사가 더프라미스를 소개하며 입을 뗐다.
“사단법인 더프라미스는 16년 전 설립한 조직입니다. 더프라미스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NGO특별협의지위’를 획득한 비영리단체예요. ‘이웃을 돕는 이웃을 돕는다’는 슬로건 아래 지난 16년간 코로나19, 동해안 산불, 예천수해 등 국내 재난뿐만 아니라 미얀마, 동티모르, 네팔, 말라위, 부탄 등 20여 개 국가에서 활동했고, 최근에는 재난 구호활동에 집중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동훈 상임이사는 지난 20여 년 동안 24개국에서 국제구호활동을 해 온 재난전문가다. 자신을 ‘재난사회복지사’라 소개한 그는, 이재민의 일상을 최대한 빠르게 회복하는 데 구호활동의 목표를 둔다고 설명했다.
“재난사회복지가 학술적으로 합의된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재난 속에서도 복지는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구호활동의 목표는 재난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마련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재난이 발생했을 때, 외부의 돕는 손길에 기대어 수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나와 내 가족, 내 이웃, 옆 사람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대응책을 미리미리 떠올려보는 연습이 필요하죠. 더프라미스는 재난 상황에 노출된 모두가 회복력을 스스로 갖춘 상호 구제의 주체가 돼야한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최근 더프라미스가 집중하고 있는 재난 구호활동이 더욱 궁금해졌다. 최근 더프라미스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물었다.
“지난 27일, 더프라미스는 제주도 조천체육관에서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구호요원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 ‘노인맞춤형 재난대피소 훈련’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더프라미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UN 산하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가 미국 정부의 해외원조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 인도적지원국(BHA)의 예산을 지원해 진행하게 됐어요. 제주도를 시범지역으로 정하고 더프라미스와 제주특별자치도자원봉사센터, 제주시자원봉사센터, 서귀포시자원봉사센터가 합동으로 기획한 훈련입니다.”
이날 훈련은 제주에 슈퍼 태풍이 찾아와 재난대피소에 이재이주민 60여 명이 갑자기 몰려온 상황에서 출발했다. 훈련 참가자들은 이재이주민 역할과 구호요원 역할로 나눠 역할극을 수행했다. 이재이주민 역할을 맡은 시민들은 시간대별로 각자 수행할 연기 상황이 미션카드에 적혀있었다. 구호요원 역할을 맡은 시민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혼란한 대피소 환경에서 임기응변 능력을 발휘하고 현장 문제를 해결해 보는 실전형 재난대응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특히 노인, 아동, 장애인과 같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재난에 취약한 재난 취약계층 중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우선적으로 노인층을 위한 훈련을 이어갔다. 중간중간에 심정지환자 발생, 여진발생과 같은 새로운 돌발 상황을 부여해 훈련 참가기관과 훈련 참여자들이 스스로 실질적인 재난 대비 역량을 파악하면서 개선점을 찾게했다.
“최근에는 정부 주도의 재난 훈련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요. 저희는 그동안 한국에서는 진행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어요. 이번에 마련한 재난대피소에는 기본적인 구호서비스 외에도 국내에서는 좀 생소한 코너를 준비해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카페 ▲이재이주민마켓 ▲동반아동쉼터 ▲반려동물쉼터와 같이 재난 시 노인이재이주민을 위한 맞춤형 건강, 정보, 돌봄, 커뮤니티 지원 서비스를 선보였지요. 대규모 재난발생 상황에서 지역사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 노인피해자를 돌보는 전문구호서비스 사례를 보여준 셈입니다.”
더프라미스가 설치한 재난대피소는 실내 이재이주민 거주구역, 실내 구호서비스구역, 실외 구호서비스구역으로 구분돼 운영했다. 이밖에 재난급식차, 세탁차, 심리상담 등 기존 재난대피소에서 운영하던 구호서비스 외에도 데이케이센터, 종교지원, 마사지코너, 물리치료, 수액치료, 이동목욕차도 마련해 선보였다.
이처럼 더프라미스의 노인 이재민 대응전략은 특별히 ‘맞춤형 돌봄’의 영역에 집중돼 있었다.
“예전에 화재 현장 대피소에 치매 어르신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가던 며느리가 온 적이 있었어요. 아들은 타 지역에서 근무 중이라 현장에 오지 못했고, 며느리가 치매 어르신을 홀로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근데 이 며느리가 어르신 때문에 발이 묶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이재민 보상 문제 등을 상의하러 관공서에 다녀와야 했고, 어르신 약을 받으러 병원에 들러야 했는데 난감한 상황이었어요. 당시 대피소는 가족 별로 방과 물품을 배정받고, 식사도 방에서 각자 해결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팀 방에 할머니를 모셔다 놓고 일 보고 오시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현장에서 철수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요? 재난 현장의 돌봄이 구호단체의 손길에서 멈추지 않도록, 우리가 방에 따로 계시던 분들을 서로 알도록, 서로가 이웃이 되도록 연결하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관계를 만들어드렸어요. 그분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단단하게 연결이 돼야 집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일상 회복이 수월해져요. 이게 바로 시민공동체가 지닌 일상회복력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은 없죠. 그래서 저희가 일반적인 구호 활동 외에도 재난 현장에도 맞춤형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거예요.”
더프라미스의 구호활동은 늘 사각지대와 틈새를 파고 든다. 김동훈 상임이사는 ‘더프라미스는 보통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대상’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제주에서 진행된 노인맞춤형 훈련에서도 ‘돌봄서비스’는 세밀하게 대상을 나눠 준비해 선보였다.
예를 들어 조부모가정으로 본인이 돌봐야 하는 아동이 있는 노인을 위한 아동쉼터와,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소로 오는 노인들을 위해 반려동물쉼터를 마련했다. 거동이 불편해 자력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한 노인을 위한 에스코트 서비스나 전동휠체어로 생활해 통로가 좁은 대피소 생활이 불편한 이동장애 노인을 위한 서비스도 고려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상임이사는 누구나 언제든지 이재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몸이 기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일상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이재민이 될 수 있어요. 매일 오가는 사무실에 완강기는 어디에 있는지, 소화기는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면 이제라도 진지하게 알아두어야 합니다. 재난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당황하고 실수를 하게 돼 있어요. 저희가 무각본 시뮬레이션 훈련을 기획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갑자기 발생하는 돌발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몸이 기억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셈이죠.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모두가 회복력을 지니고 상호 구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더프라미스가 앞으로도 적극적인 구호활동은 물론, 재난대응교육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더프라미스는 이번 제주 훈련을 바탕으로 ‘재난 약자와 동행하는 재난대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필요 기관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번 시뮬레이션 훈련은 앞으로 국내 다른 지역에서도 활용 가능하도록 한국재난대응시스템 개선에 발판이 될 것이다.
[미니 문답]
Q. 헤이그라운드 비영리 멤버십(이하 헤비멤) 프로그램은 더프라미스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저희는 아직 멤버십 기간이 남아있는데, 헤이그라운드 사무공간을 조금 일찍 떠난 케이스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비멤 덕분에 헤이그라운드 공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프라미스는 작은 조직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미션은 국내 구호활동 조직이나 활동가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며 상호연결을 통한 대응을 이어가기도 하는데, 헤비멤을 통해 연결된 다른 조직과도 여전히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어요.
특히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조직들이 ‘이웃을 돕는 이웃을 돕는다’는 더프라미스의 슬로건에 공감을 많이 해준 덕분에 활동에 힘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